이제 웃음은 ‘공공의 선’이다. 악랄하게 웃기면 웃으면서도 죄책감이 든다. 송은이는 영리하다. 그는 혼자 웃는 대신 함께 웃는 것을 택했다. 기울어가는 코미디업계에서 ‘혼자 살겠다고 바둥대는 대신’ 겁 없이 판 벌이고, 반짝이는 후배들을 불러모았다.
방송국이라는 거대 비행장에서 팟캐스트로, 유튜브로, 웹예능으로 미디어를 가볍게 바꿔 타면서 송은이는 언제든 스스로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를 달았다. 매일 먹는 밥처럼, 모여 사는 친구처럼, 송은이가 계속 웃기고 꿈꿔도 또 재미난 작당모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
쇼란 무엇인가? 이제 쇼는 이벤트나 서커스가 아니라 공감과 성찰이며, 미디어의 형태에 상관없이 소통의 힘이 바로 시청률이다.
기획과 소통의 귀재인 송은이는 현재 TV예능, 웹예능, 유튜브, 팟 캐스트, 음원 등을 만드는 회사인 콘텐츠랩 비보와 매니지먼트 회사인 미디어랩 시소를 이끄는 안정된 CEO다. 셀렙파이브에서 시작한 음악 비즈니스 자회사 ‘비보웨이브’도 순항 중이다.
뉴미디어 예능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송사장’을 만났다.
까불까불 장난기가 배인 눈동자, 놀이공원 마스코트인형처럼 가지런하게 드라이한 붉은 머리, 근엄한 CEO를 연기하는 듯한 무채색의 더블 재킷이 그의 분위기를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
좌우 균형이 완벽한 동그란 안경 너머로 어색함과 수줍음을 통제하면서, 그는 ‘그동안 인터뷰를 피해서 미안하다’고 공손하게 말했다.
‘상찬의 감옥’을 민망해하는 심리는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몇 년 전부터 이토록 알차고 보드라운 카리스마를 지닌 뉴리더의 출현에 나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가 유재석과 한 프레임에 잡힐 때도, 이영자나 김숙, 김신영과 특별한 포맷 안에 있을 때도, 나는 이 사람의 말과 표정이 프로그램 전체에 드리우는 유연한 ‘액체성’에 감탄하곤 했다.
빵빵 예측불허의 웃음 폭탄이 터지는 힘센 버라이어티에서조차, 송은이는 크지 않은 액션으로 ‘누구도 눈여겨보지 못한 웃기는 작은 순간’을 포착해내곤 했다. 그가 있는 곳에선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 때 싹이 트는 작은 웃음들이 비눗방울처럼 투명하게 솟아올랐다.
그 웃음의 씨앗을 동심이라 할까, 선심이라 할까.
인터뷰 중에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후배들이 경이롭다’와 ‘선하게 스며들다’였다. 주목받고 싶고 주도하고 싶어 몸이 단 딱딱한 세상에서 그는 물렁물렁 변화무쌍한 ’액체 괴물’ 슬라임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일희일비를 잘 안 하는 편이죠?
“어릴 때 많이 해봤죠, 일희일비. 화도 내고 휩쓸려도 다녀봤는데 그게 부질없어요. 멀리서 보면 다 코미디야. 하하. 사람들 사는 게 하찮아 보인다는 게 아니고요. 저는 좀 떨어져서 ‘롤 플레이’가 돼요. 신기하죠. 그럴 땐 공상이나 상황극 속에 내가 있는 것도 같고…”
어쨌든 그가 과몰입하는 기술로 탄성을 자아내는 연기파 코미디언은 아니다. 스트라이커처럼 박수받는 일 없이, 늘 푸른 코미디 운동장에서 소리 없이 토크 공간을 만들어내며 웃음의 공을 패스해온 성실한 미드필더. 그 자신, 코미디 선수이면서 감독, 구단주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며.
송은이는 웃음 많은 집에서 2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디에서나 웃음의 공간을 찾아내는 건 천성인가요?
“아빠가 낙천적이고 유쾌하셨어요. 아빠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나네요. 너무 슬픈데, 동시에 또 너무 웃겼어요. 후배들이 너무 귀여운 얼굴로 엄숙한 표정을 짓는 것도, 급하게 달려오느라 컬러 양말 신고 온 것도, 세상 무너질 것처럼 울다가 허겁지겁 국밥 먹으며 떠드는 것도, 그 와중에 너무 웃기더라고요.
가장 웃긴 건 저였어요. 무박 2일로 해외촬영 갔다 달려와서 임종을 지키는데, 너무 졸린 거예요. 너무 슬픈데 너무 잠이 왔어요. 나중엔 숙이(개그우먼 김숙)가 저 대신 조문객을 맞았는데, 비몽사몽간에 깨어보니 식구들과 돈 세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랬죠. “잘 세라~. 삥땅 치지 말고.” 하하. 비극의 틈새로 희극이 삐죽 들어오면, 또 견딜 만 하거든요.”
-웃을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네요.
“죽기 전까지 농담하면서 견딘다잖아요. 그런 면에서 코미디가 숭고하죠.”
-영화 ‘돈룩업’을 보면 지구 멸망을 전하면서도 농담을 하더라고요(웃음). 젊은 날의 송은이는 어땠나요?
“요즘엔 옛날 동영상들이 인기잖아요. 재석이랑 지금 그걸 보면서 배꼽을 잡아요. 그 시절을 보면 ‘너무 안 웃겨서’ 웃겨요. 유재석은 울렁증이 있어서 너무 벌벌 떠니까 웃기고, 저는 너무 자신만만해서 힘만 주고 못 살려서 웃기고.
코미디는 적당히 힘 빼고 틈새 호흡에 치고 빠져야 하는데… 그때는 경험치가 적으니 몰랐어요. 힘을 뺄 때 좋은 게 나온다는 걸.”
-송은이의 전성시대는 2015년부터 시작됐죠. 그 직전까지 공격적인 남성 버라이어티 프로가 맹위를 떨치면서 여성 예능인들이 설 무대가 급격히 줄었었죠.
“음… 문제는 제가 한동안 백수가 된 줄도 몰랐다는 거예요(웃음). 2013년~2014년 사이였는데 6개월 지나서 ‘현타’가 왔어요.”
-위기의식을 느꼈나요?
“그것보다 ‘감을 잃을까 봐’ 두려웠어요. 잘 나가든 못 나가든 동료들끼리 머리 맞대고 짜면 거기서 벼려지는 감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설 무대가 없으면 그 ‘감’이 아예 떨어지니까.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일이 외부적 요인으로 꺾인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어요. 그런 방식으로 초라해지긴 싫더라고요.”
-기가 잘 안 꺾이는군요!
“안 불러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는 곧장 낙원상가로 가서 컴퓨터를 사고 마이크를 샀어요. 지인 사무실에 책상 하나 놓고, 겁도 없이 팟캐스트 ‘비밀보장’을 시작했죠. 모르니까 신기하니까, 내가 벌이는 일이 어떤 우연을 만들어낼지도 모르고 벌렸어요. 재미난 콘텐츠 한번 해보자고.”
-은이라는 이름의 뜻이 뭐죠?
“(활짝 웃으며)제가 73년생인데, 당시에 3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저희 아빠가 작명소에서 지은 이름이에요. 은혜 은(恩)자에, 이것 이(伊)자, 풀이하면 ‘은혜로운 이것’입니다. 아빠는 중국의 강 이름이라는데… 그보다 저는 이름에 동그라미가 두 개 들어가서 좋아요. ‘은이’라고 부르기만 해도 기분이 동글동글해지잖아요. 최근에 JTBC 예능 ‘마녀 체력’에서 농구도 하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공놀이도 좋아라 했고요.”
태생이 동그라미여서였을까. 각지지 않은 몸, 모나지 않은 말투는 격변의 일터에서도 그를 동그랗게 굴려 유연하게 착지하도록 만들었다.
-모습도 커리어도 일하는 방식도 점점 ‘둥글게 둥글게’ 더 큰 동그라미를 그리는 느낌입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하나씩 점을 찍으면 그게 이어져 선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선이 또 제 전부는 아니에요. 말하자면 저는 액체 괴물 슬라임처럼 변화무쌍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려고 해요.”
-코미디언으로서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잘 못 했죠. 유행어도 없고 크게 웃기지도 못했어요. 코미디 연기 잘하는 친구들은 따로 있어요. 숙이, 봉선이, 영미, 신영이 같은 후배들 보면 경이로워요. 많이 부럽죠(웃음). 그런 천재들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내가 바라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은 다르구나.
대신 저는 순발력과 말재간이 있고,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어요. 저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나름의 ‘성장 포인트’가 있는데, 그게 일반인과 하는 교양 프로였어요. ‘느낌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좋은 나라 운동본부’... 일반인 인터뷰는 방송인과 예능 티키타카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데, 저는 신기하게 그런 게 더 재밌더라고요.”
-정체성을 계속 탐구했군요.
“네. 제가 1993년에 데뷔했으니까, 올해로 30년이 됐어요. 그동안 이 일을 하면서 10년 주기로 물었던 것 같아요. “나는 뭘 잘해?’ 처음엔 코미디 연기를 좋아했지만, “그거 말고 정말 잘하는 게 뭐야?”를 재차 물어갔어요. 제가 잘하는 건 ‘잘 들어주는 것’과 ‘새것을 탐구하는 것’ 그리고 ‘친구들과 재미난 일 벌이는 것’이었어요.
‘아, 나는 공동작업을 할 때 반짝반짝 빛나는구나.’
1등보다 잘하는 걸 하자고 결정하고 나니까 힘 줄 것과 포기할 게 보이더라고요. 제가 올해 50살인데, 앞자리 숫자가 바뀌고 나니 더 기대가 돼요. 또 10년 주기가 시작됐구나! 올해는 어떤 액체 괴물이 되어볼까? 하하.”
-고정된 가치관이 무너지고 액상화되는 이 시대에 그 주문이 딱이네요. ‘올해는 어떤 액체 괴물이 될까?’ 어쩌면 이 시대의 ‘히어로’는 ‘액체 괴물’처럼 스스로를 ‘변화무쌍’하게 허용한 사람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변화무쌍해질 수밖에 없어요. 7년 전 처음 숙이랑 ‘비밀보장’할 때도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스타일이 극과 극이더라고요. 2살 차이 이십년지기 친구인데도, 일해보니 난감했어요. MBTI를 해보니 저는 초계획형인데 숙이는 무계획형이었어요.
숙이는 사람보다 바람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숙이가 “언니, 나 갑자기 딴 게 하고 싶어.” 즉석에서 방향을 바꾸면 저는 ‘멘붕’이 되는 거예요. 나중에 제가 그랬어요. “그럴 땐 차라리 처음부터 계획이 있던 것처럼 얘기해(웃음).””
어떤 다름도 “쟤, 왜 저래?”가 아니라 이해하려고 애쓰면 맞출 수 있겠더라고 했다. 너무 심각해질 때는 한 발 떨어져서 보는 ‘상황극’ 설정도 도움이 됐다.
-사업이라는 상황극은 어떤가요?
“평생 출퇴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데, 어느 날 직원들이 저를 대표님이라고 부르며 결재를 기다리는 상황이죠(웃음). 다행히 지금은 사장이라는 롤에 좀 익숙해졌어요.”
회사가 커가는 과정에서 극강의 노동을 경험했다고 했다. “대표님 어디 가세요?” “대표님 어디로 갈까요?” 사장인 자기가 결정을 안 내리면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책상 하나 마이크 한 개에서 시작했던 일터가 이제 상암동 사옥 시대를 앞두고 있다.
“밥 먹으러 다닐 때마다 1년 동안 “어디 좋은 데 없나?” 탐색하다 마당이 있는 고물상 주택을 발견했어요.” 이제 촬영하러 장비 싸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큰언니같은 미소를 지었다.
-일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되는군요!
“맞아요. 제가 꼼수를 부리던 일은 다 안 됐어요. 돈 좀 벌어보자고 ‘비밀보장’이 잘 될 때, 새로운 음악 앱 서비스 독점권을 덜컥 수락했다가 아직도 미수금이 남아 있어요. 숙이가 “언니, 그거 위험해” 했었는데… 확실히 돈 그 자체가 목적이면 판단이 흐려져요.”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면, 대표는 무슨 일을 하나요?
“수만 가지 일을 해요. 하하. 제 경우엔 손발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흘러가도록 만들어요. 제가 청소하면 직원들이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고. 하하. 저는 그게 편해요. 초보다 보니 경영 회계를 몰라 월급을 두 번 보낸 적도 있죠. 자동이체해놓은 걸 모르고 또 보낸 적이(웃음)...
그래도 조직의 일원이 반짝반짝하는 순간만큼은 놓치지 않아요. 가령 신영이가 대표에 대해서 장난삼아 글을 써봤다고 보여주는데, 확 감이 오는 거예요. 그걸로 음원 ‘주라주라’를 만들었는데, ‘사장 디스하는 노래’를 신영이가 부르면 또 공감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러다 ‘밥집 이모’ 캐릭터 얘기를 했어요. 김신영은 샤이하지만, ‘둘째 이모 김다비’ 옷을 입으면 훨훨 날아다니거든요.”
그렇게 사장과 직원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일이 날개를 단다고 했다.
-직원과 대표가 서로 동등하다고 느끼는 건, 스타트업이기에 가능하겠죠?
“중요한 건 혼자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나는 이것을, 너는 저것을 잘하니 같이 하자.
그럴 때마다 후배들이 날 믿어주는 거, 그거 되게 무서운 일이거든요. 그래서 수시로 얘기해요. 나도 대표가 처음이다, 서로 해야 할 얘기 못 하면 골이 깊어지니 자주 얘기하자고.”
-학창 시절부터 ‘얘들아, 모여봐!’를 달고 살았다면서요. 겁 없고 정 많고 웃기고 판 벌이고 수습하는 기질이 ‘사장’이라는 상황극에서 빛을 발하네요.
“하하. 작당모의의 달인이었어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놀 궁리만 했죠. 크리스마스나 학예회에 올릴 공연에 늘 흥분했어요.”
-공부 압박은 없었고요?
“아, 그건 그저 부모님의 할 일이구나 라고 생각했어요(웃음).”
-학창 시절 연극반 선생님이 놀러 온 송은이 씨에게 ‘듣는 눈이 있다’면서 지도를 해줬다고요. ‘듣는 눈’이라는 표현이 참신했어요. TV화면에서 등대처럼 말길을 터주는 그 눈을 보며 생각했어요. 다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바라는데, 이 사람은 상대에게 눈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구나…
“(쑥스러워하며)아, 그게 저는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저는 사실 기자님도 너무 궁금해요. 들어보면 어느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어요. 이 지구에 평범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야말로 모두가 서사의 주인공인 시대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의 기준이 있나요?
“인간에 대한 애정과 배려의 결이 고운 사람들. 결이 맞으면 표현 방식이 달라도 어울려서 물결을 만들어요. 특히 ‘무한걸스’ 때부터 본 후배들은 ‘얘네들 하고 있는 것’ 그 자체가 즐거웠어요.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반짝이는 걸 보는 것만으로 경이로웠어요. 그 친구들에게는 시기 질투조차 안 느껴졌어요.”
더 큰 물결 속에 나를 두고 보는, 겸손이 몸에 밴 사람들. 송은이, 유재석, 김신영이 방송에서 일반인들을 깍듯하게 ‘선생님’이라고 호칭할 때마다 나는 그들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유재석과 송은이를 보면 ‘존중의 클라스’가 남다른 두 친구가 예능 판에 어떤 모양으로든 선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재석은 친구지만 타고나길 참 선하게 타고났어요. 겁 없는 저와 달리 재석이는 ‘겁이 많다’는 게 큰 장점이에요. 항상 조심하고 두드려보고 건너고. 재석이랑 그런 얘길 했어요. “우리는 ‘본 투 비 코미디언’이다. 우리가 마중물이 돼서 코미디언이 더 보이고 설 자리를 만들자”고.”
-코미디업계 선배들은 어떤가요?
“좋은 영향도 받았고,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싶은 나쁜 모델도 됐어요. 뛰어난 후배를 인정 안 하는 문화나 합리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면, “저건 참 후지다” 싶었죠. 반면 후배들 판 깔아주고 코미디 학교도 세운 전유성 선배는 대단하세요.”
동생들에게 시간 내주고 지갑 여는 건 이성미한테 배웠다고 했다. “이성미 언니는 매일 기도하는 사람만 300명이에요.”
-마흔 넘어도 해고되지 않을 평생 직장을 갖고 싶다던 송은이 씨 기도는 응답을 받았죠? 그 외 또 어떤 기도를 했습니까?
“제 말이 해가 되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랬더니 어느 날부터 녹화할 때 말이 안 나와요(웃음). 큰일 났네. 그래서 ‘말을 하되 웃기려고 상처 주는 말은 피하게 해달라’고 했죠. 다행히 점점 유효타율이 높아졌어요. 많은 말을 안 해도, 하는 말은 안타를 치는 효율이 생기더라고요.”
-자극적이지 않되 관심을 끄는 말은 모든 미디어 종사자의 바람이죠. 저만해도 헤드라인 뽑을 때 센 제목과 의미 있는 제목 사이에서 늘 갈등합니다.
“저희 유튜브 ‘비밀보장’의 구독자가 47만 정도 돼요. 오래 한 것에 비하면 성장 속도가 더딘 편이죠. 예전엔 사람 끄는 법을 몰라서, 지금은 알아도 일부러 속도를 조절하고 있어요. 온라인에 노출되는 섬네일을 자극적으로 뽑으면 더 빨리, 더 많이 호객이 되겠지만, 그냥 천천히 가려고요.
직원들이 “왜 이런 제목이 안 돼요?”라고 물으면 제가 그래요. “그게 우리가 싫어하던 가십 기사와 뭐가 달라?” 그 말에 공감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다른 길을 찾더라고요. 자연스럽게 흥미를 끄는 방식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데 좀 느리죠. 때때로 공들인 콘텐츠가 반응 없이 미끄러질 때, 그런 고민을 누가 알아주나 싶기도 하고요(웃음).
“맞아요. 느려요. 저희의 치명적인 단점이에요. 하하. 하지만 납득이 될 때까지 움직이기 어려워요. 콘텐츠의 방향과 질은 납득이 돼야 함께 갈 수 있잖아요. 대신 결심하면 속도를 좀 내죠.
당장 조회 수에 일희일비하는 PD들은 좀 의기소침해 하는데… 그럴 땐 제 경험을 들려줘요. 저는 시청률에 연연해하는 삶을 오래 살았잖아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프로를 만들어도 우연히 센 상대랑 붙으면 시청률이 형편없을 때도 있어요. 외부 요인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을 수도 있는 거죠.
그런저런 이유로 지금 조회 수에 연연해하지 않는 이유는 진짜 재밌으면 사람들이 결국 ‘알아본다’는 믿음이 있어요. 게다가 유튜브를 뛰어넘는 플랫폼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까. 그때까지 재미와 평가의 밸런스가 맞추도록 노력은 최대한 하면서요.”
-콘텐츠 기획자로서 ‘이건 어떤 그릇에 담으면 되겠다’라는 판단 기준이 있나요? 가령 장항준 감독과 함께하는 영화 팟캐스트 ‘씨네마운틴’은 원래 채널A에서 하던 예능 ‘송은이 김숙의 영화보장’을 장항준 감독의 토크 톤에 맞게 포맷을 바꿔서 히트 쳤잖아요.
“콘텐츠 만들 때 편집 기술과 포맷은 사실 거기서 거기예요. 다 훌륭하죠. 프로그램이 더 나아가려면 포용의 공간이 많아야 해요. 창작자가 시야가 넓은가? 들을 귀가 있는가? 그 모습을 테크닉으로 보여줄 수 있나? 그걸 예민하게 체크하는 편이에요. 창작자든 출연자든 결국 우리랑 결을 맞출 수 있을까가 중요해지죠.”
-요즘의 콘텐츠 유저들을 대하면서 느끼는 변화는 지점은 무엇이죠?
“갈수록 진성 유저가 탄탄해지고 있다는 거죠. 가령 ‘비밀보장’의 주요 유저는 보통 사람, 보통의 여성들이에요. 남녀 구분은 없지만, 평소 표현 못 하던 말을 속 시원하게 해주니, 더 용기가 필요한 분들이 모였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들이 성장해서 창업을 하고 취업을 하면서, 그 용기가 실제가 되고 전염이 돼요.
가끔 놀랄 때가 있어요. 우리가 뭐길래, 저분들은 우리를 선택해서 친구 삼아, 살아갈 용기를 낼까? 그렇게 서로가 소명이 되면서 팬덤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없던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데 자부심이 있지요?
“2015년에 코미디언 중 제일 앞에서 뉴미디어를 실험해본 건 행운이죠. 전통적인 무대가 우릴 필요로하지 않아도 우리가 나서서 할 수 있다… 새 시대가 열렸다고 떠드니까 자극받아 도전한 친구들이 많아요. ‘피식대학’도 그렇고 ‘투맘쇼’도 그렇고. “너네 끼리 해봐라” 힘을 주면, 알아서 팟캐스트로 유튜브로 무대로 쭉쭉 나갔어요.
“선배님 이거 어떻게 해요?” 물어오면 전 무조건 “차 마시자” 그래요. 제 노하우를 어서 빨리 나눠주고 싶어서(웃음). 다행히도 저는 혼자서 힘겨운 변곡점을 지날 때도 그걸 잘 몰랐어요. 한참 지나고 나서야 깨닫고는 했죠. 큰일을 쉽게 벌일 수 있었던 건, 어릴 때 집안 분위기 덕이라고 봐요. 아버지는 ‘여자라서 하지 말라’는 게 없었어요. 가세가 기울어도 부모님 두 분 다 손 걷어붙이고 뭐라도 즐겁게 하자는 분위기여서, 가난한 줄도 모르고 컸어요.”
-일이 끊기지 않았을 때도 ‘김숙네 집 사랑방’에 함께 모여 일없는 애, 일 조금 하는 애, 일 많은 애가 이런저런 작당모의을 했다면서요? 왜 그 대목에서 성경의 포도원 품꾼 비유가 생각났는지 모르겠어요. 아침 9시 고용된 품꾼이나 오후에 고용된 품꾼이나 사정을 헤아려 모두 같은 품삯을 받았다는 일화 말입니다.
“하하. 그런데 김숙네 집은 포도원도 사랑방도 아니고 그냥 작은 자취방이었어요. 서로 한심한 짓거리 하며 등짝 스매싱도 날리면서 놀았죠. 저는 일 있는 언니였고 숙이는 일 없는 애, 가끔 일하는 애도 있었는데 밤새워 놀다 일 나갈 때, 더 번 아이가 돈을 놓고 갔어요.”
돈이 있거나 없거나 그곳이 낙원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공연하면 선후배 상관없이 이익을 똑같이 나눈다는 ‘1/n 정신’은 어떻게 시작됐죠?
“대학로에서 ‘개그콘서트’ 전신인 ‘for you’라는 공연을 할 때였어요. MBC ‘인생극장’으로 스타였던 이휘재부터 백재현, 김진수 등 서울예대 멤버들과 함께 공연을 올렸죠. 그 당시에 인기나 아이디어, 나이에 상관없이 개런티를 1/n로 똑같이 나눠 가졌어요. 심부름하는 후배도 리더도 제 각자 1/n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봤죠.”
엄밀히 따지면 무대에서 헌신한 몫이 다 다르지만, 굳이 그렇게 한 건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같이 공연해도 선배들이 돈 다 가져가는 관행이 너무 싫었어요.” 후배들과 걸그룹 ‘셀렙 파이브’를 결성해서 활동할 때도 1/n 정신은 그대로 이어졌다.
“김숙, 안영미, 김신영, 김영희까지… 소속사가 달라도 함께 나눴어요. 돈 때문에 빈정 상하는 게 제일 싫었어요(웃음). 1/n일 때 제일 마음이 편하고 우리가 근사하게 느껴졌어요. 혼자 잘 되는 것보다 같이 잘 되는 게 좋았죠.”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는 거죠?
“네. 자연스럽죠. 부모님이 그렇게 사셨으니까. 엄마는 늘 작은 거라도 남과 나눠 먹었어요. 그런데 또 남이 우리 집 아이 못되게 공격하면 철저하게 보호하셨죠. 특별한 게 없어요. 가끔 부모님들이 저더러 “우리 애가 방문 닫고 안 나와요” 하소연하시면 제가 그래요.
“애들 자주 안아주셨어요?” “얘기 잘 들어주셨어요?”
말하는 애로 키워야 말을 하죠. 부모님이 먼저 애들한테 “멋지다! 근사하다!” 경이롭게 봐주셔야죠. 반짝반짝하는 모습을 표현해 주셔야죠. 코미디도 마찬가지예요. 정중하게 표현할수록 비유가 다양해져요. 가학적인 농담은 이제 안 먹히잖아요.”
존중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웃길 수 있다고 했다. ‘누군가를 비하해서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대중이 먼저 눈살을 찌푸리는 세상이니, 더이상 다르다고 웃음거리가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적어도 그 일에 코미디언이 앞장서지는 않을 거라고.
-출연자들의 매력을 찾아주고, 잘 웃기도록 앞서 밑밥을 깔아주는 역할은 들인 공에 비하면 티가 덜 나잖아요. 이제껏 나만 너무 손해 보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적은 없었나요?
“하하. 전 그게 더 재밌어요. 잘 받아만 먹어도 좋겠어요.”
더 자세히 관찰해서 끝까지 사랑하는 것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사랑은 가식으로 안 되잖아요. 좋은 걸 알면 닮아가고 싶어 해요. 점점 진짜 사랑이 되는 거죠. 저 스스로 질문을 해요. ‘내가 저 아이들을 진짜 좋아하나? 아니면 내가 잘되고 싶어 이용하나?’ 그런데 제가 동료들을 진짜로 좋아하더라고요. 하하. 코미디하는 동생들도 얘들이 진짜 행복했으면, 잘 살면 좋겠다… 회사에 얽매이지도 말고, 그런 생각을 해요.”
-문득 안영미의 시상식 소감이 떠오르네요. 2019년 MBC연예대상 무대에서 안영미가 ‘선한 영향력’을 언급하며 “사람 만들어주신 송은이, 김숙에게 감사하다. 앞으로 송김안영미로 살고 싶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죠.
“그 이후로 저는 몹시 부담되고 있어요(웃음). 저는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주고 싶진 않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어요.”
-선하게 스며들면 좋겠다…
“그렇죠. 본받을 포인트가 혹 있다면 가져가서 자연스럽게 쓰세요. 다만 제가 하는 행동이 절대적일 수 없잖아요. 저는 평가받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 선한 영향력의 아이콘이 될 수가 없어요. 그 방향으로 가고는 있지만, 인간은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존재라, 선함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고 봐요.”
영향력이 아닌 ‘스며든다’는 표현에 송은이의 정수가 있는 것 같았다. 어느 한 일방이 힘을 가하고 완벽한 모델이 돼서 끼치는 영향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흘러가고 닮아가며 조금씩 다가서는 삶. 부모 자식의 관계가 ‘선한 영향력’이 아니라 ‘선한 스며듬’으로 서로를 철들게 하듯.
-기업에서 강연요청을 받을 땐 어떤 메시지를 전하나요?
“기업은 제게 ‘좋은 오너가 되는 법’을 요청하는데, 그건 제가 말할 수 없고요(웃음). 담백하게 제가 기획하고 경험한 콘텐츠 이야기를 해드려요. 다만 리더로서 제가 조심하는 건 말할 수 있죠. 이상적인 이야기, 뜬구름 잡는 동기 부여는 하지 않겠다고요. 정답을 찾아가는 건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아닌 것, 틀린 것’만이라도 명확하게 얘기하는 편이에요. 예컨대 섬네일 만들 때 ‘어그로 끌지 마라’ 같은 것들(웃음).”
지난 30년간 열심히 장단을 맞춰주던 이 동그란 사람, 그 중심에 있는 강단도 무엇일까.
-송은이의 장점은 뭐죠?
“제 장점은 ‘끝나지 않는 무식’이에요(웃음). 사업할 때 리스크도 예산관리도 다 부딪혀서 몸으로 배웠죠. 팟캐스트 7년, 회사 5년을 해왔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바깥에서 보는 나’는 달라요. 감사한 건 ‘어떤 모습의 나’라도 직면하는 게 두렵진 않아요. 그렇게 조금씩 시야를 넓혀 가요.”
-마지막으로 어떤 식으로든 인생에서 막다른 전환기를 맞고 있는 분들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
“후배들에게 종종 하는 말인데요. 해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나듯, ‘생각나는 걸 일단 해보라’고 해요. 아이들 교육할 때도 ‘자기를 다치게 하는 위험한 짓만 아니면’ 많은 시도를 허용하라잖아요.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생각에만 빠져있는 게 사실 가장 위험해요. 죽을 정도만 아니면, 다 경험으로 저장되고 쓰이더라고요.
찰리 채플린이 그랬다면서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저는 이제 그 말이 완전히 이해가 됩니다. 자기가 어떤 상황극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떨어져서 보면, 좀 힘을 빼고 웃게 되더라고요(웃음).”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이 옳고 그름으로 짠 ‘시시비비’가 아니라 슬픔과 웃음으로 이어진 ‘희희비비’의 날들임을 일깨워주는 송은이. 성실하게 웃음의 공간을 창조해내는 멋쟁이 희극인들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