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발 첫 폭락장 이후 상승과 하락을 거듭하는 조정장을 이어가는 미국 주식 시장.

서점가 베스트셀러의 추이를 지켜보면,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의 코드를 읽을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가성비’와 ‘가심비’를 중요시하는 스마트한 요즘 사람들이, 한정된 자원인 시간과 돈과 관심을 투자해서 얻고자 하는 최선의 지식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다.

돈과 영과 자녀.

유튜브 세계에서도 결국 안정적인 구독자와 높은 조회 수를 확보하는 콘텐츠는 이 세 가지일 것이다. 돈 버는 법과 영적인 지혜를 얻는 법 그리고 자녀 교육 콘텐츠. 레비스트로스가 인류 문명이 존속되기 위해 필요하다고 분류했던 3대 교환구조 ‘돈의 길, 언어의 길, 피의 길’과 신기하게 겹쳐져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더 많은 돈, 더 충만한 영, 더 나은 자녀’로 향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채워주는 교환 콘텐츠를 사방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돈과 영은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했으나, ‘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추구하는’ 모습은 이제 이 시대의 흔한 풍경이 됐다. 지혜를 추구하는 인문학 책과 부동산과 주식을 다룬 투자 책을 한 프레임에 넣고 찍은 사진을 SNS 타임라인에서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건 마치 내 욕망의 엑스레이 사진 같군!’

영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돈을 추구하는 우리의 모습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상한 동시에 속물적인, 이 분열적인 모습을 통합하려면, ‘돈의 길’을 제대로 아는 수밖에.

‘떼돈을 벌고 싶던’ ‘자족하며 살고 싶던’ 돈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돈이 ‘돈의 길’을 가는 모습을 정확히 보아야 한다.

‘뉴욕주민의 진짜 미국식 주식투자’라는 직설적인 제목의 책으로 신뢰를 얻고 있는 전직 월가 트레이더 ‘뉴욕주민’을 ‘돈의 길’의 안내자로 초대했다.

와튼 스쿨을 조기 졸업하고 월가 헤지펀드에서 일한 주식 유튜버 '뉴욕주민'. 얼마 전 '뉴욕주민의 진짜 미국식 주식투자' 개정판을 출간했다./사진=고운호 기자

‘뉴욕주민’은 월스트리트에서 직접 체득한 돈의 법칙을 쉬운 언어로 전달하는 독보적인 인사이트의 미국 주식 교육가다.

맥킨지, 시티그룹, JP 모건 등 다수의 전략 컨설팅 및 투자 은행에서의 M&A 경력을 거쳐 뉴욕 소재 헤지펀드에서 (100억 달러 규모)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는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다. 현재는 월가의 애널리스트와 헤지펀드 트레이더들의 실무 트레이닝을 담당하는 교육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넉넉치 않은 환경에서 자라 어릴 적 장래 희망 란에 ‘부자’라고 썼던 그는, 민족 사관학교를 나와 ‘월스트리트 사관학교’라 불리는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 스쿨을 조기 졸업했다.

이해도 못 하는 금융 상품을 손에 넣고 하루에도 차트만 수십 번씩 확인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일침을 가한다. “왜 수영도 할 줄 모르면서 바다에 뛰어드는가?”

전문가들만이 소유하기엔 금융 시장에 잠재된 수익 기회가 너무도 많기에, ‘금융 지식의 보편화’는 그가 21살부터 품어왔던 사명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는 어떤 곳인가요?

“전쟁터죠. 사람들은 화려한 이름에만 집중하지만, 조금만 안을 들여다보면 어둡고 외롭고 처절한 곳입니다. 수많은 좌절이 깔려 있고, 그래서 실패를 딛고 여전히 그곳에 살아남은 자들의 매력이 형형한 곳이죠. 월가를 떠나지 않은 모든 이들에겐 반드시 배울 게 있어요.”

-왜 ‘뉴욕주민’이죠?

“최근까지 기관(헤지펀드)에 있었어요. 직업 윤리상 영리 활동이 안 되고 이해 상충 부분도 있어서, 사생활과 분리하려고 닉네임을 쓰고있어요.”

'뉴욕주민' 유튜브 영상.

뉴욕주민이 처음 유튜브 동영상을 올린 때는 2020년 3월이었다. 코로나 발 미국 주식 폭락장에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던 시점, ‘한국말’로 그 상황을 기록하고 싶어 월스트리트 현장 리포트를 시작했다.

뉴욕 거리는 쥐죽은 듯 고요했고, 월가의 사무실은 다 문을 닫았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얼어붙은 증시는 한 달 만에 상승장으로 돌아섰다. 신선한 피가 돌듯 주식시장에 달러가 돌았다.

경영자와 회사 투자 위원회를 상대로 정제된 언어와 숫자를 쓰던 그는, 대중이 원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매일매일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했다. 유튜브는 그를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시켰다.

‘금융 지식의 보편화’라는 미션을 내건 유튜브 채널 ‘뉴욕주민’은 현재 23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당신이 쓴 책 ‘뉴욕 주민의 진짜 미국식 주식 투자’는 제목부터 돈 냄새가 물씬 났어요(웃음). 적절한 타이밍에 출판시장에 들어와 유망 종목이 됐고, ‘전면 개정판’으로 한 번 더 주가를 밀어 올리고 있어요. ‘머니러시’가 일상화된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나요?

“부에 대한 욕망은 시대 불문이에요. 미국 주식 붐은 예정된 흐름입니다. 코로나 충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막대한 돈이 풀리면서 미국 증시에 호황이 일었고, 전례 없는 접근성으로 진입 장벽도 낮아졌죠.

로빈후드 같은 주식투자 앱이 일명 ‘서학 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의 참여 비율을 올리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했어요. 한번 클릭으로 미국 주식을 살 수 있게 되면서 MZ세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유입이 됐죠. 요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직접 주식 투자를 하세요.”

-개미들의 움직임은 코로나로 촉발됐죠?

“코로나 이전과 이후 격변이 있었죠. 주식 시장은 크게 10년 단위로 변화를 보였어요. 2001년 닷컴 버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2020년 코로나 격변. 큰 사건 이후로 시장참여자들이 확 늘어나요. 그때마다 ‘떼돈 벌겠다’는 욕심으로 진입해서 다치는 사람도 많아져요.

접근성이 좋아질수록 리스크에 더 쉽게 노출됩니다. 기관은 전문성도 있고 규제도 있는데, 개인은 오로지 본인의 투자 판단만 믿고 덤벼요. 로빈후드 앱으로 고위험군에 투자한 20대가 7~8만 불 날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투자와 투기는 한 끗 차이라고 했다.

주식 시장에 개인 투자자들의 활동 반경이 커지고 있다. 개미들이 기관에 맞서 주가를 지탱했던 '게임스탑' 사건이 그 예다.

-투자와 투기를 가르는 기준이 있나요?

“주식을 사고도 왜 샀는지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감’으로 사면 불안합니다. 왜 샀는지 모르면 언제 팔지는 당연히 모르죠.

사고팔고의 기준이 학습과 분석, 리스크 수용도의 프로세스를 거친 판단이라면 그건 투자예요. 왠지 ‘오를 것 같아서’ ‘누가 사라고 해서’ 샀다면 투기죠.

-“왜?”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답을 못하면 슬롯머신을 당긴 겁니다. 얼마 전에 배달원분들이 핸드폰으로 ‘코인’ 하고 계시길래 물어봤어요. ‘추천해 주실 게 있냐, 왜 샀냐?’ 그냥 오를 것 같다더군요.”

-다들 그렇지 않나요?

“나쁘지는 않아요. 그게 도박인 줄 알면 상관없어요. 투자라고 생각하면 문제죠.”

-알면서도 그렇게 믿고 싶은 거죠. 주식 트레이더가 꿈이었나요?

“제 꿈은 저보다 똑똑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거였어요. 계속 성장하고 싶었거든요.”

-어떤 사람들이 똑똑한 사람들이지요?

“똑같은 현상을 봐도 자기만의 인사이트로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이죠. 제가 일했던 헤지펀드는 남들이 다 아는 투자를 해서는 안 돼요. 시장이 베타일 때, 그 이상의 알파를 창출해야죠. 투자 대상을 찾기도 힘들지만, 지금이 들어갈 타이밍인지 결정하는 것도 힘들어요. 그런데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회사의 가치를 보고 결국은 시장에 실현시켜요.

가령 시저스 카지노 회사의 경우 2009년 무렵에 한번 파산하고 사모펀드로 넘어가면서 채무 불이행으로 거의 끝났다고 봤죠. 그 당시 저희가 지분투자로 들어가서 투자 기회를 발굴했고 결국 화려하게 부활해서 업계 1위가 됐어요. 기업회생 이후 주가가 3불에서 120불이 됐죠.”

-그 모든 게 직관은 아닐 테고요?

“자산을 일일이 다 보죠. 시저스는 카지노 호텔로 사업장도 많았는데, 저희는 호텔 객실 하나당 매출과 슬롯머신 한 개 매출, 베개 단가까지 전부 계산했어요. 발로 뛰면서 숫자를 파악합니다. 경영진 면담해서 운영 능력을 체크하고, 말단 직원의 서비스 마인드, 마케팅 세일즈까지 주도면밀하게 들여다봐요.

기업 하나를 이해하는데 엄청난 자원이 투입되죠. 그런 기업 수백 개를 실사 작업하고, 그중 하나에 투자를 결정해요. 시저스처럼 한번 파산하면 문서가 방대해요.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에서 뽑은 새로운 수치를 밸류에이션 모델에 반영하면, 적정 주가가 나와요.

내가 뽑은 주가가 100원인데, 시장에서 현재 50원이면 매입합니다. 지금은 50원이지만, 언젠가는 적정 주가인 100원으로 올라올 테니까요.”

그렇게 해도 실패할 수 있다고 했다.

“기회비용인 거죠. 어쨌든 장은 매일 열리니까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월스트리트의 사행성 문화를 폭로한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숫자를 보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습니까?

“하하. 시장이 나를 매일 평가하는 기분이 들죠. 금융권 내 여러 직군 중에 시장을 상대하는 직군이 가장 힘들어요. 사모펀드는 기업을 사들이면 5~7년 묶어두고 큰 가치를 만들어서 엑시트을 하죠. 그에 비해 헤지펀드는 표면적으로는 매일매일 결과가 나오는 잔인한 평가시스템이에요. 그 안에 있으면서 멘탈도 점점 강해집니다.”

-시장에서 매일 평가받기는, 기자도 유튜버도 마찬가지입니다(웃음). 어쨌든 월스트리트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공격적인 일중독자가 떠오릅니다. 영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빅쇼트’를 보면 돈과 권력에 중독돼서 하이 상태로 날뛰는 이기적 집단으로 묘사되는데, 당신 이야기를 들으면 월가 사람들은 너무나 침착하고 성실한 일꾼들이라 어리둥절하군요.

“월가에 대한 편향된 시각이 있죠. 악랄하게 돈을 좇는 캐릭터로… 그런데 아니에요. 제가 존경하는 많은 분이 헤지펀드 펀드매니저예요. 영화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여자와 술과 마약에 빠지는 분보다, 기업 가치를 만들기 위해 밤새 실사하고, 겨우 옷만 갈아입고 나와 일하는 분들이 많죠. 열심히 가치를 만들고 사회 환원으로 보람을 찾는 인간적인 분들이…”

-열심히 하는 건 그만큼의 보상이 있어서겠지요.

“환경이 자극을 줘요.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신비한 열기가 있어요. 선천적인 우위에 있는 사람들, 운 좋게 탁월하게 타고난 사람들... 그런 천재들이 현장에서도 무지막지하게 치열해요. 정상에 있는 사람들이 저 정도로 열심히 하는데, 그 근처에라도 있으려면 무식하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죠.”

-작년에 업로드한 유튜브에서 ‘일을 잘하려면 애초에 ‘워라밸’은 불가능하다’고 쓴소리를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인가요?

“맞아요. 그 얘기 하고 평생 들어먹을 욕을 다 먹었어요(웃음). 그래도 누군가는 말해야죠. 다른 쪽의 진실을. 프로의식 있고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일중독자’라고 비하할 이유가 없어요. 요즘 ‘워라밸’ 챙기는 사람에게 ‘넌 왜 게을러?’라고 하지 않잖아요. 결국엔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일인가’가 관건이죠. 하고 싶은 일을 하는가? 별수 없어 하는 일인가?”

-‘그 일에 자기 결정권이 있고 합당한 보상이 있는가’가 핵심이죠.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해야, 잘하고 싶어서 올인하겠죠.

“모든 성공한 사람은 다 그렇게 일합니다. ‘넌 엘리트니까’ ‘넌 젊은 꼰대니까’ 비판해도 어쩔 수 없어요. 치열해야 정상을 가질 수 있어요.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어요. 다만 그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고 싶다면, 그래야 해요. ‘’워라밸’ 지키면서 1등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교만한 거죠.”

-맥킨지 경영컨설팅은 행동주의적인 본인 성향에 맞지 않아서 투자 은행, 헤지펀드로 커리어 체인지를 했다고요. 커리어도 투자도 스스로의 기질을 파악하는 게 우선인 것 같군요.

“맞아요. 저는 ‘리스크 테이크’를 하는 성향이에요. 안정보다 성장을 원하죠. 부모님은 공무원, 의사 등 안정된 직업을 원하셨지만, 저는 경영대로 가서 제 맘대로 살았어요(웃음). 풍족한 환경이 아니라 잃을 게 없었고, 그래서 범주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했어요.

저는 커리어를 시작하고 2~3년 주기로 이직을 했는데, 그게 몸값을 높이는 게 아니라 점점 ‘위험한 직군’으로 가는 거였어요. 맥킨지에서 투자은행으로, 사모펀드에서 헤지펀드로. 잔인한 평가 시스템에 내일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분야로 넘어갔죠(웃음).”

영화 '히든피겨스'의 한 장면. 백인 남성들 앞에서 수식을 풀고 있는 주인공.

-숫자의 어떤 점을 사랑했나요?

“지금의 좌표가 수치화되는 과정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계산과 모델링이 하나의 숫자로 명확하게 나타나요.”

자연을 가장 효율적으로 기술하기에 수학은 아름답다. 수식을 풀면 어떤 물체가 언제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있다. 우주선의 궤도와 이착륙의 타이밍까지.

모든 위치를 한 줄의 수식으로 볼 수 있다면, 주식 시장의 숫자도 그럴까? 숫자로 통찰하면 한 기업이 시장이라는 우주에서 어디에 있고 어디로 나아갈지 정확히 알 수 있을까?

-나사의 여성 과학자들을 다룬 영화 ‘히든피겨스’를 보면서 수식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어요. 그러나 우주선의 궤도와 착륙 지점을 계산하는 물리법칙과는 달리, 주식 시장은 욕망과 불안이라는 복잡성이 큰 변수로 작용하니, 더 예측이 어렵지 않나요?

“일단 재무제표의 숫자 패턴을 보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예측이 나와요. 하지만 계산만으로는 또 안 보이죠. 어떻게 이 숫자가 나왔나, 그 숫자 뒤의 사람을 읽고 사업과 연계할 때 다른 시야가 생겨요. 잘못 반영된 변수를 잡아낼 때 희열을 느낍니다.

그래서 (헤지펀드)기관에서 사람뽑을 때도 계산만 잘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고 해요. 펜더멘털 분석은 산수지만, 숫자 뒤의 숨은 의미를 추적하려면 결국은 인문학이에요. 특정 포지션에 매수할 때, 반대편 시장, 공매도의 움직임을 보려면 인문학적 인사이트가 절실해요.”

-그럼에도 많은 월가 트레이더들이 자동화로 대체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퀀트 트레이더도 있고 AI 투자도 많죠. 알고리즘 코딩을 구현해서 매매가 되도록. 하지만 중요한 투자 결정은 인간이 내려요. 그런 다음 브로커에게 물량을 주던가 자동 매매를 하죠.”

노동의 장르가 달라질 뿐, 사람이 필요 없어질 일은 없다고 했다.

“투자는 더 예민한 인문학이 되어가고 있어요. 코로나 이후 폭락했다가 다시 살아나고 전례 없는 호황이 이어졌죠. 새로운 변수로 예측불허 상황이 되면서 잘 나가던 퀀트 펀드들이 손실이 컸어요. 사람이 하던 펜더멘탈 투자 펀드들은 수익률이 올라갔죠.”

2008년 금융 위기의 상황을 정밀하게 고발한 영화 '빅쇼트'.

-금융공학 자체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국 저널리스트 라나 포루하는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만드는 자와 거저 먹는 자)’라는 책에서 ‘숫자 놀음’으로 자산을 불리는 기업의 금융화를 심각하게 지적했습니다. 월가와 메인가(실물 생산 라인)를 대조하면서, 비대해진 금융이 기업만 배불리고 서민들의 삶은 파괴하고 있다는 거죠. 기술 기업의 성장은 인정하지만, 반대로 실물 경제와 일자리 사정은 더 나빠졌다는 분석입니다. 물론 그 이후로 ‘금융 지식’의 보편화가 일어나면서 ‘테이커스’의 입지가 일반인들로 내려왔지만, ‘돈이 일하게 한다’는 ‘월가’ 중심의 세계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제 생각은 이래요. 주식회사의 존재의의는 주주들에게 가치를 돌려주는 겁니다. 주가를 올리고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금융자본주의의 대의죠. 단기든 장기든 기업은 주가를 올리는 걸 궁극적 목표로 하고, 그게 주주의 경제로 표현이 돼요.

R&D 투자를 얘기하셨지만, 그것도 가치 증대로 이어지지 않고 경영하는 동안 인센티브와 스톡옵션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재고해 봐야죠. 저는 모든 걸 투자로 봐요. 기업이 ESG 경영을 하는 것도 그걸 지켜야 주주들이 투자하고 주가가 방어되기 때문이잖아요.

근로소득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어요. 월급 받아서 집 살 수 없잖아요. 시드 머니로 자본소득의 비율을 높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경제 시스템이 바로 지금입니다. 자본이 자본을 낳고 돈이 일하는 시스템으로 사회 계층 이동이 가능해졌어요.”

-노동의 개념 자체가 변해야 한다?

“그럼요. 자본 소득은 불로 소득이 아니에요. 투자 행위도 엄청난 노동입니다. 가장 귀한 시간 자원을 쓰는 일이에요. 제가 하는 모든 일은 ‘근로’예요. 투자는 손실 위험이 크기에 돈을 잃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공부하고 판단해요. 기업 가치를 연구하는 것은 깊은 노동입니다. 주식이라는 증서는 기업 노동의 집약체예요. 활동하지 않고 손실이 나면 주가는 하락해요.”

-주식을 안 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일까요?

“저는 인생의 모든 행위를 다 투자로 봐요. 제가 이렇게 기자님과 긴 시간 인터뷰하는 것도 제 가치를 알리기 위한 투자 활동이죠.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는 모든 결정 과정이 투자입니다. 그러니 모두 주식을 할 필요는 없지만, 투자는 해야 한다고 봐요.”

모든 것을 투자 행위로 설명하는 '뉴욕주민'./사진=고운호 기자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밑도 끝도 없이 “주식 뭐 사면 돼?”라면서요? 인간의 사고체계가 그렇습니다. 그 질문엔 어떻게 대답합니까?

“저는 시장을 따라가는 ETF(Exchange Trade Fund 주식거래시장에서 거래되는 펀드) 상품을 사라고 해요. 없던 알파를 창출하는 게 ‘헤지펀드’로서 제 정체성이지만, 일반인이 그 룰을 따르기는 어려워요. 기관 투자 입장에선 연평균 10~20% 오르는 것도 굉장히 잘 된 펀드인데, 일반인들은 지금 사서 내일 50% 오를 종목을 찾으시잖아요?

그만큼 투자를 쉽게 생각해서 손실을 보죠. 그런 이유로 개인 투자자들은 시장을 따라가는 게 가장 안전해요. 변동성이 큰 한국과는 달리 미국 주식은 기업 가치가 주식에 잘 반영되고 있어서, 시장을 따라갈 만 합니다.”

-그런데 2008년엔, 미국의 엘리트 금융맨들이 파생상품으로 ‘투기’하다 서민경제가 다 무너졌죠. 금융 위기 때 와튼 스쿨 졸업을 앞두고 월가의 추락을 가까이서 목격했을 텐데, 뭘 느꼈나요?

“회복탄력성이요.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했는데 놀랍게도 월가는 빠르게 회복됐어요.”

-국가가 세금으로 구제했죠. 그 일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마이클 센델의 질문이 시작됐고요.

“‘맞습니다. 너희들만 잘 먹고 잘사느냐’는 분노가 있었죠. 어쨌든 2008년 이후로 투자 은행이 자기 자본을 멋대로 하지 못하도록 규제가 시작됐고, 시장은 다른 방법의 효율성을 찾아가고 있어요. 월스트리트에서 반대 시위를 하던 사람이 개인투자자를 위해 개발한 앱이 바로 로빈후드였죠.”

-시장은 더 민주적으로 진화하고 있나요?

“그런 양상을 띠고 있죠. 얼마 전에 ‘게임스탑’ 사태도 그 흐름에서 나왔어요. 헤지펀드가 공매도했던 주식을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사들이면서 주가를 지탱했어요. 게임스탑 주가가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면서 등락이 심해지자 결국 로빈후드가 거래를 중지시키면서 원성을 샀죠. 개미들이 기관에 맞섰던 사건이고 월가에서도 새로운 트렌드로 주시하고 있어요.”

-주식도 주택도 결국 투자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라’가 원칙인데, 그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싸게 와 비싸게’를 가르는 합리적인 기준이 있을까요?

“비싸게 파는 건 기준을 얘기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싸게 사는 게 중요해요. 남들이 안 살때, 하락할 때 매수하는 건데 뭐가 됐든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건 어렵습니다. 기관은 가치평가 작업을 해서 기준이 있지만, 개인은 본인 판단이죠.

‘미국 주식 비싼데 어떻게 들어가?’하던 분들, 실제 떨어지면 못삽니다. 투자는 원칙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시장이 움직이면 대개 투자 결정을 못 해요. 주식은 리스크를 매매하는 과정인데, 보통 사람들은 감정대로 사고팔아요. 감정을 매매하는 거죠.”

-실례지만 어디 투자하고 있습니까?

미국 주식시장만큼 주주친화적이고 효율이 높은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하는 '뉴욕주민'. 그는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사진=고운호 기자

“(미소지으며)원래 있던 헤지펀드에 투자해야 이해 상충 문제가 없고요. 미국 증시 전체에 투자하고 있어요.”

-어쨌든 사람들은 애플, 테슬라, 넷플릭스, 구글, 디즈니 등의 대장주에 투자하고 싶어 합니다. 최근 기술주 하락과 함께 증시가 좋지 않은데 어떻게 봅니까?

“현실적으로 우량 기업에 베팅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시가총액의 20~30%를 차지하는 기업들이죠. 미국 주식 전체를 커버하는 ETF를 따라가면서, 그 주식을 사면 돼요. 단, 여러 곳으로 분산 투자하면서요.”

‘현금 실탄(dry powder)’이 많은 미국의 빅 테크 기업은 이번 조정장이 성장과 인수합병 붐으로 또 다른 기회가 될 거라고 했다.

-시장은 우리에게 시그널을 보여주지만 우리는 인지 편향으로 변곡점에 이르는 타이밍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건가요?

“투자의 대가들은 말했죠. ‘타이밍을 맞추는 건 아무도 못 한다’고. 우리는 시장이 움직일 때 현명하게 대응할 뿐입니다. 나만의 사고, 매매 습관에 갇혀서 대응을 못 하면 투자 실패로 이어지는 거고요. 기관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투자는 개인이나 기관이나 다 어렵습니다. 각자 이기적인 판단을 할 뿐이죠.”

-그런 맥락에서 주식 시장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비결이 흥미롭더군요. 이를테면 1 절대 트레이딩을 멈추지 않는다. 2 틀림을 빠르게 인정한다. 3 통념을 거부하는 데 익숙하다. 4 분석적인 직관, 직관적인 분석력이 있다. 5 미친 듯이 집요하다… 행동 가이드가 인생 성공법과 유사해서 놀랐어요.

“하하. 성공방정식은 어느 업계나 똑같지 않나요? 월가에서는 뭐든지 해내는 성공 지향적인 부류들(일명 알파메일)이 있어요. 그래서 월가 생존자는 보증수표로 여겨요. 월가에서 살아남으면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고요. 일단 집요하거든요.”

-성취욕 높은 엘리트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보니 어떤가요?

“일단 그런 조직이 아니면 대단한 사람들에게 배우지 못해요. 학교든 직장이든 그 조직에 탁월한 사람이 많으면 ‘네임밸류’가 올라가고, 스스로 배울 의지만 있으면 그 잘난 사람들이 신기하게 도움을 줘요.

새벽 5시까지 눈 빠지게 일하다가, 서로 참견도 하고 정보도 주고… 전쟁터 전우애 비슷한 게 생기죠. 직접 투자를 안 하면서도 현장에 남아 있는 이유는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게 너무 좋아서였어요.”

-숫자는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스토리요. 숫자 하나에 엄청난 스토리텔링이 있어요. 그게 제 일이죠. 뉴욕의 회사 책상엔 컴퓨터 모니터 6개가 돌아갔어요. 2개는 마켓 트레이딩 시스템, 2개는 모델링 액셀, 2개는 블룸버그… 기업 앞에는 항상 숫자가 있고, 숫자 뒤엔 늘 사람이 있었어요. "

-미국 증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세계 금융의 중심, 월스트리트.

“코로나 이후 단기 호황이 있었지만, 앞으로 그 정도 성장은 힘듭니다. 장기적으로 우상향은 하겠지만, 이젠 몇십 프로 성장 수익률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기대치를 낮추고 현실적인 수익률을 목표로 자산을 분배하세요. 당장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미국 증시는 세계 경제와 직결되어있으니 수시로 모니터링을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주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지 않는다면 왜 안 하는지 그 이유도 찾아보세요.”

-마지막으로 투자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첫째, 잃지 마세요! 사람들은 투자하면 벌 거라고만 생각해요. 안타깝지만 정말 많이들 잃어요. 가장 중요한 건 잃지 않는 거예요. 진입 시점의 마인드를 ‘어떻게 하면 잃지 않을까’로 잡고, 그다음 자기만의 수익률 원칙을 세우세요.

둘째, 공부하세요! 내 돈을 맡길 때는 해당 기업을 공부해야 합니다. 궁금할 때는 기업에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세요. 내가 하는 행동이 ‘투기’가 아니라 ‘투자행위’라는 걸 인지하는 게 우선이에요.

셋째, 새해에는 모든 결정이나 판단을 투자 프로세스로 해보세요. 사람도, 시간도 다 한정된 자원이니 효율적으로 주체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제 인생도 투자 종목이라고 봐요. 인생의 펀드매니저로서 수시로 제 펜더멘탈 분석합니다.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세요. 투자하지 않고 잘 되길 바라는 건 억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