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밝았다. 매년 1월이면, 촉이 빠르고 시선의 위치가 높은 데이터 과학자 송길영과 만나 ‘디지털 토정비결’이라는 테마로 신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가 살아갈 2022년의 세상은 어떻게 펼쳐질까?
자동화의 물결, 바이러스의 공격을 통과한 2022년의 인류는 그동안 비약적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그만큼 아프게 성찰했다. 지난해 ‘1 업의 진정성 2 과학적 사고 3 성숙한 공존’을 키워드로 제시했던 빅데이터 분석회사 ‘바이브 컴퍼니’ 부사장 송길영은, 올해 우리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키워드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다.
1 취약한 항상성 2 강제된 혁신 3 각성된 자아.
모든 일은 도미노 패널이 넘어지듯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코로나 발 보건이슈로 우리는 ‘삶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가’를 절감했다. 마스크와 백신과 요소수 소동을 겪으며, 당연한 듯 여겨졌던 일상의 ‘항상성’이 타인의 희생과 국가 분업으로 이뤄진 기적의 균형이었음을 체감한다. 항상성이 깨지면, 혁신이 강제되고, 혁신이 반복되면 자아는 완전히 새롭게 각성된다.
중요한 엔진은 ‘각성’이다.
‘유튜브 스승’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서서, 단기간에 수련을 마친 개인은 이제 ‘생각하는 동물’로서 지적인 호전성을 요구받는다. 기술 장인인 AI를 비서로 두고 ‘나만의 유니크한 생각’을 지속해서 업데이트하는 자가, 스승이 되고 장인이 된다.
개인이 깊어지면 문명은 더 좋아진다.
기업은 점점 자아를 각성한 개인을 도구로 쓸 수 없고, 개인은 점점 더 자발적으로 공동체의 선의를 위해 살아가는 ‘깊은 팬덤 사회’.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팬이 되는 것으로 ‘지속가능한 트랙’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송길영은 더이상 트렌드를 보지 말고 사람을 보라고 조언한다.
“글로벌 무한 경쟁이 디폴트인 세계에서, 사람들은 점점 질문하기 시작했어요. ‘꼭 불안에 떨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해?’ 적정 수의 팬이 있으면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떼돈을 벌어야 한다’는 욕심만 없다면… 그 답이 소규모 팬덤입니다.”
그러니 너무 거대한 관중을 보지 말고 나를 보고 옆을 보라고.
20년 이상 디지털 발자취(동영상과 이미지, SNS 뉴스피드와 커뮤니티 댓글까지)를 추적해 온 이 특별한 마인즈 마이너(Minds miner)는 작년 하반기에 쓴 책 ‘그냥 하지 말라’로 베스트셀러 작가 타이틀도 달았다.
-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왔습니다. 코로나 장기화, 혁신을 덮는 혁신… 2021년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것을 몸으로 확실히 깨달은 해였어요. 2022년은 어떻습니까?
“한밤중에 타코가 먹고 싶으면 20분 만에 실현이 돼요. 40분 걸리면 사라질 욕망이었을 텐데, 배달 앱이 그걸 잡아냅니다. 낙타의 허리를 부러뜨리는 깃털 하나까지 섬세하게(웃음). 제일 예쁘고 향기로운 것을 선택하는 ‘비용’이 확 줄었어요. 크로켓 사려고 길 안 건너도, 앱만 열면 전국구 빵 맛집이 환하게 열렸어요. 욕망의 거리는 좁혀졌고, 공급자는 더 고단해질 겁니다.”
-더 편리해지는데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죠.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혁신이 빨라지면 인류는 좋아져. 네가 힘들지(웃음).’ 혁신은 낙오된 사람에겐 잔인해요. 보듬으면서 가야 하는 데, 지금은 열 맞춰 달리기 바쁘니까요.”
-그래서 저는 의심합니다. 팽창된 욕망을 돕는 일이 인류에게 더 좋기만 할까?
“개별자에게는 혜택이죠. 내일의 불안을 줄이고, 향기로운 빵과 맛있는 술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글로벌 TV쇼와 세련된 브랜드를 향유하면서, 더 큰 욕망을 추구할 수 있잖아요. 이젠 상파울루나 쿠알라룸푸르가 욕망 충족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다 스마트폰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으니, 모두 나이키와 애플을 소유하고 싶어 해요. 그러려면 너도나도 달러가 필요합니다.”
-자본주의 인간으로 ‘동기화’ 되는 걸 막을 수 없지요.
“욕망을 제어할 순 없어요. 안 해 본 사람은 더 선망이 있습니다. 어릴 때 브랜드 운동화 신고 다니던 친구들이 부러웠던 기억 있잖아요. 결핍이 채워지지 않으면 커서도 ‘한풀이’ 소비를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더 벌려고 하는 거죠.”
-2022년에 우리가 알고 가야 할 큰 그림은 뭔가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취약한 항상성. 두 번째 강제된 혁신. 세 번째 각성된 자아입니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늘 당연하듯 유지되던 것들의 ‘항상성’이 무너졌습니다. 아파도 병원 못 가고 보육도 급식도 집에서 해결했어요. 상호신뢰로 이루어지던 모든 협력적 프로세스가 멈췄습니다.”
-흐름이 멈추면서 무엇을 자각했나요?
“삶은 생각보다 더 위태롭고 무한의 상호신뢰는 허상이라는 것. 예컨대 반도체를 구할 수 없어 자동차 생산을 못 합니다. 과거에는 10만대 생산해도 30만대 분량의 부품을 창고에 재놨죠. 지금은 극한의 효율화로 재고 없이 딱 필요한 부품이 공급되도록 설계돼 있어요. 그 극한 효율화의 흐름을 떠받쳤던 무한신뢰가 깨진 겁니다.
부품 4만 개 중 하나가 없어도 안되는데, 필리핀 부품 공장이 팬데믹으로 서버리면 모든 흐름이 다 깨지죠. 그러면 자연 반사적으로 이렇게 됩니다. ‘해외로 나갔던 것 다 들어와. 부품은 내가 만든다. 스마트 팩토리로!’ 중국, 동남아로 오프쇼어링했던 공장을 자국으로 리쇼어링하는데, 그게 국내 고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검역과 보건 이슈 때문이죠.
흘러가던 게 멈추면, 그 김에 뭘 포기하고 뭘 가져가야 할지를 정하겠죠. 주위를 둘러보세요. 지금은 사방이 공사 중이에요. 이태원 번화가의 건물들도 다 리뉴얼 중이죠. 세입자, 권리금 때문에 못 하던 공사를 지금 다 하고 있어요. 흐르면 부술 수 없는데 멈추니까 동시다발적으로 리스트럭처가 일어납니다.”
-구조가 변하는 타격만큼 심리적인 타격감도 큽니다.
“심리적 타격의 실체는 이거예요. ‘내 삶을 떠받치는 객체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삶이 많이 깨지면서 이기심도 올라왔어요. 백신이 제 3세계 공급이 안 돼서 결국 변이가 나왔잖아요. 국가 단위, 가족 단위, 개인 단위의 이기심이 다 투명하게 보였죠. 결국, 이 참에 협력시스템을 재고하고 각자의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방향으로 갑니다. 비용이 들더라도 ‘스스로 하자’가 되는 거예요.”
-저는 ‘취약한 항상성’을 보완하려는 욕구가 ‘로컬리티와 다정함’으로 모이고 있다고 봤어요. 상호의존과 신뢰는 결국 ‘내가 사는 생태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난 거죠. 송 박사의 의견은 어떤가요?
“자발적 로컬리티가 강화되는 것은 맞습니다. 과거 프로야구팀처럼 지역으로 경쟁하는 숙명적 로컬리티와는 확실히 다르니까요. 하지만 말씀하신 행동 변화는 두고 봐야 합니다. 당장은 변화, 욕구, 이해관계가 혼재돼 있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게 기적이다 싶을 만큼, 삶이 깨지기 쉽다는 걸 막 알아차린 상태예요. 안타깝지만, 삶은 원래 그런 겁니다. 타인의 위험을 기반으로 내 삶이 영위되고 있죠. 그걸 느끼는 감수성도 국가마다 달라요.”
-삶은 위태롭고 깨지기 쉽다… 위험이 감지되면 반응이 빨라지겠군요.
“그래서 혁신이 강제되는 거죠. 예전엔 혁신한 사람이 비교 우위였다면, 지금은 혁신을 못 따라오면 답이 없어요. QR코드가 강제되니, 국밥집 운영하는 할머니가 ‘장사 접어야겠다’ 한숨을 쉬세요. 어르신들이 QR을 못 한다고요. 이젠 무인 상점도 QR 때문에 사람을 써야 할 판입니다. 극단적 효율을 챙기면 비효율이 0%가 돼요. 중국의 위챗페이나 얼굴 스캔도 그런 추세로 정착됐죠.”
“혁신하면 서바이벌, 못하면 몰락… 두 방향으로만 가면 여러 층위의 풍경이 생깁니다. 요즘에 1인 바버샵 많죠? 최저 임금 증가로 1인숍들이 많아지면서, 이젠 전화 받고 예약하는 건 AI 비서가 다 해요. 공급자도 소비자도 다 혁신 적응을 강제 받았어요. 국가도 국민 비서 앱 쓰잖아요.
혁신의 방향에 따라 업종도 바뀌어요. 거리에 사람이 줄면서 많은 택시 기사분들이 라이더로 전업을 했어요. 과거에 사람 나르던 분들이 음식을 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배달의민족은 로봇배달 R&D를 해서, 아파트 단지 내 배달은 로봇이 하는 실험을 해요. 비용이 사람의 1/7이니 점차 자동화하겠다는 거죠. 혁신을 강제 받고 직업을 잃으면, 사람들은 러다이트(기계 파괴 운동)처럼 ‘바퀴 달린 로봇’을 때려 부술 지도 모릅니다.”
-혁신 때문에 계속 밀려난다면, 롱텀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남겠어요?
“롱텀을 안 믿죠. 그래서 보상도 지금 당장 달라고 해요. 롱텀은 약속이 어려우니까. 견습생활도 안되죠. 내일을 알 수 없거든요. 그래서 여러 개의 일을 벌여놓는 거죠. 다니는 직장, 하고 있는 직업, 일생의 과업인 커리어를 분리해서 가다 보니 조직의 선배나 리더에 대한 리스펙이 없어져요. 끈끈함을 중시하던 세대에겐 상실감이 크죠.”
-장인이 존중받는 시절은 지난 걸까요?
“토픽에 따라 다릅니다. 자동화될 수 있는 일들, 안 쓸 시스템에 해박한 건 의미가 없죠. 단순히 어떤 일을 빨리하는 달인은 무력해집니다. 숫자만 다루던 은행원은 이직이 안 돼요.”
-’대퇴사의 시대’가 왔다고들 합니다.
“재택 이후에 관리자가 ‘출근하세요’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때려치울게요’가 나오는 식이죠. 각성한 직장인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머리 좋은 기업은 “우리 회사는 꼭 출근할 필요 없다”는 조건으로 인재를 모시고 있어요. 혁신이 뭔가요? 효율을 따지는 거죠.
시간을 자율로 쓰는 유연 근무, 장소를 선택하는 재택근무, 다 알아서 하는 스마트워킹… 조금씩 달라도 전제는 같아요. ‘상대를 믿는다’는 거죠. 그러면 이런 질문이 나와요. ‘내가 알아서 잘할 건데 상사가 왜 날 관리해? 이미 데이터가 다 하고 있는데… 굳이 왜?’”
-관리해야 힘이 유지되니까요. 세대 간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가고 있죠.
“상대를 믿느냐, 객체로 보느냐의 차입니다. 이어폰 끼고 유튜브 듣는 건 젊은이에겐 노동요인데, 윗사람은 ‘회사 에티켓도 모른다’고 언짢아해요. 목적이 일 잘하는 거라면 상관없는데, 자기 눈치 안 보면 화가 나는 거죠. 재택근무 중인 사원이 스타벅스에서 일하면 ‘왜 집에 없느냐?’고 다그칩니다. 관리자가 간수가 되는 거예요. 애초에 기업은 관리받을 사람을 안 뽑아야 합니다.
보상도 다르지 않아요. MZ세대는 지구와 인류에 기여하는 기업을 원해요. 동시에 많은 연차와 복지포인트와 맛있는 구내식당도 원하죠. 직장인들이 더 디테일하게 각성되고 있어요. 외부 충격에도 좌우되지 않을, 완성된 주체로 가고 있어요.”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공채도 점점 줄고 있어요.
“왜 아니겠어요? 효율이 중요하니 바로 전문가를 모셔오죠. 마이스터들이 모여서 완성된 개체로 일하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들은 회사원이면서 동시에 사이드 프로젝트 운영자예요. 클라우드, 회계 관리, AI 비서까지 나와 있으니, 회사 다니며 동시에 창업을 해요. 사정이 이런데 ‘겸업 금지’라고 하면 진짜 실력자는 사표 쓰죠. 예전엔 이런 자아를 퇴직 이후에 생각했는데, 이제는 주니어 때부터 시작돼요.”
자아를 가진 사람을 도구로 쓸 수 없다고 했다.
-그럼 기업의 리더는 어떻게 구성원을 대해야 합니까?
“대등한 인간으로 설득하고 커뮤니케이션 해야죠. MZ세대는 말이 안 통하는 압력은 거부해요. 꼰대가 뭔가요? ‘나와 너는 대등하지 않으니, 너를 가르치겠다’는 사람이잖아요. 각성된 자아는 자기 삶에 의사결정권을 갖길 원해요. 회사가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니 세 가지를 당당하게 요구하죠. 첫째 나를 조종하지 말고, 둘째 보상은 지금 확실히 주며, 셋째 겸업 못 하게 방해 말라.”
슈퍼 개인들의 시대에는 그에 걸맞은 리더의 자격이 요구된다. 리더는 힘의 우열이 아니라 위험 감수의 서열에 있다. 가장 앞에서 가장 많이 ‘리스크테이크’하는 자가 리더이며, 그런 자가 센터를 차지한다. 엠넷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는 개성 강한 댄스 크루들을 ‘존중하고 책임지는’ 최전선의 플레이어로서 리더의 모습을 조명해 갈채를 받았다.
-한마디로 어설픈 리더는 무임승차가 안되는 사회로군요!
“사회 전체적으로 프리라이더는 용서가 안 돼요. 젊은 친구들은 실무 경험을 학생 때부터 해요. 회사 들어오면 이미 프로입니다. 예전엔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부모와 학교로부터 긴 시간 교육을 받았지만, 지금은 유튜브로 속성 수업을 받아요. 전 지구적인 도움으로 단시간에 전문성이 갖춰지죠. 목포에 사는 14살 소년은 디지털 그림을 NFT로 비싸게 팔았어요. 지금 세대는 이미 10대 초반에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고 사업도 합니다.”
-유튜브가 교육과 시장 기능을 담당하면서 산업 질서도 급격하게 변했죠?
“네. 가령 ‘오징어 게임’이 히트하면 창작자와 넷플릭스 플랫폼만 살죠. 과거의 배급사, 투자사, 해외 마케팅 등이 다 없어졌어요. 게이트 키핑 잡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요. 이런 추세로 가면 우리는 결국 둘 중 하나의 영토에 서게 됩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아니면 플랫폼 제공자. 개인은 콘텐츠로 갈 수밖에 없어요.”
-전 국민이 크리에이터가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단 길목에서 통행세 받는 게이트키퍼는 확실히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 창작보다 오퍼레이터가 더 체질에 맞아요”라고 하시는 분도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인사팀에서 일해도 시간 관리만 체크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동기를 부여할까?’ 궁리할 수 있거든요.
자동화 물결 속에 노동이 줄어드는 건 운명이에요. 그래서 자신의 노동을 창의적으로 만들 궁리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돼지 모양 시계를 만들고 싶어도 이젠 AI가 다 해주잖아요. 건축가도 ‘핀터레스트’만 치면 전 세계 계단 샘플이 다 나와요. 출발선이 비슷하면 ‘누가 더 도움 되는 아이디어를 내는가’가 경쟁력이에요.”
2020년 자동화와 2021년 팬데믹을 겪으며 ‘다윗과 골리앗’의 힘의 역전이 일어났다. 유튜브라는 작은 돌맹이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수천만의 ‘다윗’이 사는 세상. 여전히 빅데이터는 유의미할까.
-빅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은 여전히 믿을만한가요?
“데이터 저변은 일상적으로 점점 더 확대되고 있어요. 데이터만이 더 다층적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 와중에 취향과 상호작용의 ‘미세화’ 현상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개인이 깊어지면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작은 범주를 깊게 들어가야 차별화가 되거든요. 가령 책도 직업의 미시세계를 자상하게 전달하는 ‘매일 갑니다, 편의점’ 같은 종류의 책이 잘 돼요. 구글링이나 포털 뉴스로는 알 수 없는 지식, 내 관점과 경험이 들어간 내러티브만 인정 받아요. 퉁쳐서 하는 큰 얘기는 점점 힘을 잃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 작은 이야기만 살아남아요.”
-빅데이터와 미세 트렌드, ‘업의 본질’과 ‘실용’... 결국 어설픈 중간은 다 사라지고 위와 아래가 섞여서 최적화의 균형이 만들어지겠군요!
“맞습니다. 개인이 그만큼 똑똑해졌어요!”
-유튜브가 가르치고 AI가 만들어주는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이 스승이 되고 장인이 됩니까?
“이미 스승은 유튜브예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유튜브 학교는 도제 과정 없이 집약된 노하우를 가르쳐요. 기술의 계승과 전수도 마찬가지입니다. AI 장인이 ‘딥 러닝’으로 발전 시켜 갈 거예요. 인간은 결국은 기승전 ‘생각’입니다. ‘나만의 유니크한 감각과 개념’을 지속해서 업데이트하고 디자인하는 사람. 그들이 스승이 되고 장인이 되겠지요.”
-최근에 저는 영화 ‘유체이탈자’를 흥미롭게 봤어요. 다른 사람의 육체를 전전하며 혼란에 빠진 주인공이 타자에게 자기 정체성을 묻더군요. “나 누구예요? 나 뭐 하는 사람이에요?” 선문답 같았지만 “모르겠으면 처음 있던 장소로 돌아가라”는 답을 얻죠. ‘부캐’로 아바타로 계속 유체이탈을 일으키는 지금 시대, 개인에겐 과연 어떤 질문이 필요할까요?
“(곰곰이 생각하다)우선권을 묻는 말이겠지요. ‘무엇이 중헌디?’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여태껏 한국 사회는 ‘도구화’ ‘자원화’가 중요한 사회였잖아요. 이젠 나에게 우선순위를 물어야죠.”
-우선순위를 위해 트렌드를 참고해야 할까요?
“아니요.”
-그럼 무엇을 볼까요?
“나를 보고 옆에 있는 사람을 보세요. 트렌드만 보면 의혹이 생겨요. 작년까지 욜로 얘기했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머니러시를 얘기하지? 돈을 쓰겠다던 사람들이 왜 돈을 모으겠다고 난리지? 층위를 높이면 다 ‘나를 찾아서’예요. 결국 참자아를 찾아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인간들은 점점 더 공동체 지향적이 돼요. 지구공동체에 미안함을 느껴서 ‘태도로서의 비건’을 선택하는 식이죠. 개별자가 깊어지면 이후 문명은 더 좋아지게 돼요.”
-코로나 이후 세상을 관찰하며 얻은 통찰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식당에 가니 QR과 온도와 소독제 분사가 일체형으로 된 기구도 나왔더라고요. ‘언제 이런 게 나왔느냐?’ 놀라서 물었더니 주인이 대수롭지 않게 그러더군요. “그거 별로 비싸지도 않아요.” ‘당황 모색 적응’의 주기가 정말 빨라졌어요. 그래서 빠른 건 경쟁력이 없어요.
빠른 게 디폴트인 세상이라면 속도 보다는 깊이에요. 지금은 빨라질 때가 아니라 깊어질 때죠. 무언가를 할 땐 더 높은 꿈으로 더 높은 시선에서 시작해야 해요. ‘건강식이 트렌드라며?’가 아니라 ‘공존을 위해서!’가 슬로건이 돼야, 앞이 밝아져요. 단기 성취가 목표면 버티기 힘들어요. 꿈이 목표여야 포기를 안 하죠. 한가한 소리가 아닙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면 지속성만 망가지죠.”
-조직은 점점 더 개인의 비위를 맞추고, 개인은 점점 더 공동체를 위해 가는 선순환 구조로군요!
“네. 그런데 거기서 표준집단이 저 멀리 1억 명이 아니라 주변의 3천 명이에요. 그래서 유대와 에고를 기반으로 가까운 관계를 공고히 해야 합니다. 대규모 팬은 줄고 팬덤은 깊어지는 현상이 가속화될 거예요.
글로벌 무한 경쟁이 디폴트인 세계에서, 사람들은 점점 질문하기 시작했어요. ‘꼭 불안에 떨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해?’ 적정 수의 팬이 있으면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떼돈을 벌어야 한다’는 욕심만 없다면... 그 답이 소규모 팬덤인 거죠.”
-동의합니다. 가수도 일정 수의 팬이 있으면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 활동을 계속할 수 있죠. ‘백종원의 골목식당’도 다르지 않았어요. 제주도 돈가스집 ‘연돈’처럼, 나와 팬덤을 위한 적정 환경을 만들어 가면, 그게 호혜의 로열티가 되고 로컬리티가 되는 구조였어요.
“서로를 향한 팬심이 함께 가는 거죠. 사람들은 점점 더 ‘타인이 떼돈을 독식하는 데 도구가 되지 않겠다’고 해요. 좋은 걸 만들면 서로 향유할 뿐이죠. 욕심을 줄이면 답이 보여요. 제가 자주 가는 카페가 두 군데예요. 주인장의 취향을 느낄 수 있는 티하우스와 아무도 없는 로봇 카페예요. 티하우스에서는 장인의 문화를 공유하고, 로봇 카페에서는 자동화를 누려요. AI가 대중화될수록 한편에서는 인간적인 촉과 향을 열망하죠. 결국 극과 극만 남아요.”
-자동화냐 문화냐? 정서냐 기능이냐? 노선을 확실히 해야겠군요.
“네. 누누이 얘기하지만, 가운데는 없습니다. 최근에는 상점도 그래요. 극단적으로 예쁜 플래그십스토어만 남고 비슷비슷한 로드숍은 사라지고 있어요. 이젠 그 극단적으로 예쁜 플래그십 상점이 리테일 미디어의 역할도 합니다. 성수동의 바이크샵 팝업 스토어에는 지포라이터가 임대 전시돼있어요. 단위 면적당 매출은 의미 없습니다. 목적은 SNS를 타고 얼마나 확산하느냐죠.”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무엇이 중헌디?’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안고 깊게 가야 한다. 너무 불안해할 것도 없다. 그런 당신을 위해 ‘호혜의 로열티(깊은 팬덤의 충성심)’와 ‘로컬리티’가 사회관계자본으로 쌓이고 있으니.
때는 바야흐로 SF 영화 ‘터미네이터’의 배경이던 2027년이 불과 5년 남은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명제를 우리는 삶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까?
“삶은 계속 흘러갑니다. 데이터과학자로 살면서 지난 10년간 제가 그래프로 감지했던 ‘일어날 일은 다 일어났습니다’. 혼자 사회, 투명 사회, 취향 사회… 사실 개인의 미래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토정비결도 결국 7~8월에 물가에 가면 조심하라, 는 식이죠. 다만 큰 흐름에서 보면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흘러가는 삶 속에서 다시 한번 ‘나’를 들여다보고 이참에 스스로를 정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