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일 것’이라는 주변의 추측과 달리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열망이었다.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스산했던 성장기 경험은 내 몸에 ‘외로움 유전자’를 깊이 내장시켰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은 십 대 이후 내내 ‘외로움과의 전투’였다. 수학여행 버스에 혼자 앉지 않기 위해, 동료 집단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남겨지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썼다.
생각해보면 다들 그렇지 않던가.
나노 사회가 가속화될수록 우리는 혼자 남겨진 비참한 기분, 이탈된 기분, 배제되고 무시당한 느낌에 시달린다. 고립과 적막을 피하고자 익명의 인간들이 바글대는 소셜미디어로 도망치지만, 이내 스마트폰 세상에서 내 외로움이 정확한 수치로 공개되는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본다.
외로움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사랑과 결혼, 우정과 성취를 둘러싼 삶의 질, 빛깔과 방향이 달라진다.
코로나 격리가 잠시 완화된 틈을 타서 나는 외로움에 맞서기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친구들을 생일 파티에 초대했다. 주말에 마을 카페에서 주민들과 어울려 요가를 하고, 아이와 함께 외로운 이웃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다. 9살 아들에게 ‘자란다’ 앱을 통해 대학생 ‘친구’를 붙여준 후, 노리나 허츠의 책 ‘고립의 시대’를 읽었다. 책에 수록된 ‘UCLA 외로움 척도’ 테스트에서 나는 57점을 받았다(43점 이상이면 외로운 것으로 간주한다).
코로나 19가 악화시킨 외로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고립의 시대’는 외로움과 정치경제와 기술 사회가 어떻게 연결되어 돌아가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세계적인 정치경제 석학은 ‘우리는 외로움의 세기에 살고 있다’고 선언한다.
책에서 그는 어린아이가 상담원에게 전화해 “엄마가 날 안아주지 않는다”며 울었다고 전한다. 청년들은 고립에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하고, 노인들은 경범죄를 저지르고 차라리 ‘덜 외로운’ 감옥행을 택한다. 사람들은 감염보다 외로움을 더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감염만큼 외로움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외로움 경제가 폭발할 것’이라고 예고한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세계번영연구소의 명예교수 노리나 허츠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허츠 교수는 외로움이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동일하게 해로우며, 외로울수록 우리는 공격적으로 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시대, 격리의 나날입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저는 제 아이와 재택근무와 마스크 등교를 하며 외로움과 싸우는 중입니다만.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집에 혼자 앉아 저녁밥을 주문하고, 줌으로 요가 강습을 들으며 외로움에 대해 숙고하고 있지요. 비접촉 문화는 점점 더 나 개인을 외롭게 할 뿐 아니라, 사회 구조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시대가 그런걸.
“중요한 건 코로나 이전에도 외로움은 심각한 질병이었다는 겁니다. 바이러스가 외로움의 위험성을 격발시켰을 뿐. 봉쇄와 ‘거리 두기’는 물론 옳은 결정입니다. 당장 외로움 바이러스보다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이 가시적으로 더 크니까요. 그러나 외로움이 얼마나 건강을 악화시키는지 연구한 저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고립의 시대’가 몹시 걱정스러워요.”
-외로움이 건강에 그토록 해로운가요?
“지속적 고립은 매일 담배를 15개비 피우는 것만큼 해로워요. 우울증, 불안, 자살 충동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육체에도 직접 해를 끼치죠. 남과 연결되고 싶은 종의 본능은 ‘외로운 몸’을 각성 상태로 이끌어서,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와 맥박, 혈압을 상승시킵니다. 외로운 사람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거나 비만한 사람보다 심근경색,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20% 높습니다. 치매에 걸릴 확률은 60% 이상이죠. "
-사실 당신이 쓴 ‘고립의 시대’라는 책에서 많은 노인이 외로움에 지쳐 경범죄를 저지른 후 감옥을 선택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외로움은 전 사회와 연령층에 걸쳐 심각한 문제예요. 영국은 연금 생활자 5명 중 2명이 TV나 반려동물이 주된 친구라고 답했어요. 미국은 요양원 거주자 60%가 방문객이 아무도 없다고 답했죠. 한국 노인 4분의 1은 혼자 식사합니다. 감옥에 가는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는 연령층은 일본의 65세 이상이에요. 노년의 그들은 감옥에 가기 위해 소소한 절도 행위 같은 경범죄를 저지릅니다. 친구와 돌봄과 지지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감옥이니까요.”
-하나같이 가슴 아픈 이야기군요.
“이 인터뷰를 접하고 놀랄 수도 있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은 연구 결과 우리 중에 가장 외로운 연령층은 청년층이라는 겁니다. 영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다섯 명 중 한 명이 친구가 없어요. 미국의 24세 이하는 세 명 중 한 명이 자주 외롭다고 답했습니다. 한국도 지난 10년간 십 대와 청년층을 중심으로 외로움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책을 쓴 이유도 교수 사무실을 찾아와 ‘너무 외롭다’고 털어놓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 교단에 섰던 20여 년 전엔 이렇지 심각하지 않았어요. 데이터를 보면 2010년 즈음부터 어린이, 십 대, 20대 초반에서 외로움이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어요.”
-청년들의 ‘외로움 증가’가 2010년부터라면, 소셜 미디어 태동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군요.
“네. 마침 그해 스탠퍼드대에서 대규모 연구를 했습니다. 통제집단에 속한 1,500명의 학생은 평소처럼 페이스북을 사용했고 다른 1,500명은 두 달간 페이스북을 끊었어요.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페이스북을 끊은 집단은 친구, 가족과 직접적인 활동을 더 많이 했고, 더 자주 행복감을 느꼈어요. 페이스북을 끊는 건 심리치료를 받는 것과 최대 40%까지 같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SNS를 끊는 것만으로 심리 치료 효과가 있다니…!
“상호작용은 양보다 질이 중요해요. 젊은 층이 SNS 상호작용에 의지하는 것은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과 비슷한 문제를 낳습니다. 많은 양을 섭취하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죠.”
허츠 박사는 십 대를 인터뷰하면서 소셜 미디어가 그들에게 얼마나 자주 배제된 느낌을 주는지 듣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14세 소년 피터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고 반응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그러다 괴로워하며 자문하지요. ‘내가 뭘 잘못했지?’ 피터는 그때마다 자신이 혼자인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린다고 했어요. 16세 클라우디아는 친구들이 SNS에서 자기만 빼고 만난 것을 본 후 일주일 동안 등교를 거부했습니다. 따돌림당하는 십 대들은 언제나 있었지만, 요즘처럼 공개적인 창피를 당하면 그 상처는 치명적이에요.”
-그런 식의 배제된 기분은 성인도 예외 없죠. ‘나만 빼고’ 다 모여 노는 것 같은 소외감은 저도 종종 느끼는걸요.
“네. 하지만 또래 집단이 전부인 청소년이 감당하긴 버거워요.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영국 학생의 65%는 이미 사이버상의 괴롭힘을 경험했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더 실제 세계의 상호작용을 회피합니다. 짐작했겠지만 SNS 플랫폼은 슬롯머신처럼 중독성을 띠도록 설계돼 있어요. 연구 끝에 내린 제 결론은 분명해요. 소셜미디어 회사는 21세기 담배회사와 같고,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하루빨리 특별 규제가 필요합니다.”
-현대인들이 외로움의 위험을 너무 과소평가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저는 외로움을 지인들과 단절된 느낌, 연결되고픈 갈망으로만 설명하지 않아요.”
-그럼 뭐죠? 외로움의 정의는?
“동료, 시민들, 고용주, 정부와 단절된 것 같은 느낌도 역시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은 사회 정치적으로 ‘내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느끼는 상태’죠. 1년 반에 걸친 코로나 봉쇄조치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이 상황은 더욱 악화됐어요. 긱 노동자들, 자영업자들의 별점 압박, 감시사회로의 진입.... 다들 외로움의 동굴에서 비명을 지르는데, 우리는 수수방관하고 있어요.”
-외로움도 바이러스처럼 전염됩니까?
“네. 외로움은 전염됩니다. 우리는 외로울수록 타인을 밀어내는 경향이 강해지고, 외로울수록 남들이 우리를 밀어낸다는 느낌도 강해집니다.”
-소셜애니멀로 문명을 이룬 인간이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이렇게 극심하게 외로워진 걸까요? 신자유주의? 코로나? 소셜미디어? 기술의 발달?
“말씀드렸듯이 문명의 꽃인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정체성을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설정합니다. 주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 사는 사람으로. 직접 돌봄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우리’가 아닌 ‘나’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나’ 중심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더 외로운 세계입니다.”
-코로나 기간에 특별히 더 외로워진 집단이 있습니까?
“첫 번째는 여전히 젊은 층, 두 번째는 저소득층과 실직자. 세 번째 집단은 여성입니다. 코로나 기간에 가정 폭력이 폭증했고, 학대만큼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건 없어요. 모든 집단에서 경제적 괴로움과 외로움은 연관성이 매우 높습니다.”
-2년여 동안 ‘디지털 고치’ 안에서 지낸 탓에 신입생들의 상호작용 능력도 눈에 띄게 떨어진 거로 압니다. 청년들은 아르바이트 장소에서만 또래 친구를 접촉한다더군요.
“맞습니다. 제가 지도하는 학생들은 팀별 과제를 수행하는 걸 어려워해요. 미국 명문대의 학장인 제 친구도 이 문제가 너무나 심각해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실생활에서 표정 읽는 법’이라는 강의를 개설했어요. 부모가 장시간 스마트폰을 보며 지낸 탓에, 초등학생들도 공동생활 습관을 배우지도 못한 채 등교해서 일대 혼란을 겪었죠.
그나마 희소식은 손상된 상호 작용 능력은 화면에서 눈을 떼는 순간 빨리 복구된다는 겁니다. 아이들도, 청년들도 짧은 기간만 화면을 멀리해도 의사소통 능력이 회복된다는 사실! 그러니까 부모로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도, 스스로 화면을 멀리하는 모범을 보이는 겁니다.”
-재택이 장기화할수록, 기업도 구성원의 고립과 독립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고민입니다. 당신은 직장 내 유대를 위해 ‘공동 식사’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지금 기업은 정기 회식조차 조심스러운 상황입니다만.
“당장은 안전이 우선이죠. 하지만 우리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함께 먹는 행위는 유대와 성과를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걸 잊으면 안 돼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왜 카페테리아 시설 투자에 그렇게 열을 올리겠어요? 시카고 소방관들의 실험 결과만 봐도, 함께 식사할 경우, 사고 현장에서 서로의 안전을 더 많이 신경 씁니다.
재택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외로움이 성과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업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거죠. 외로운 직원들은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퇴직하기도 쉽습니다. 직장에 친구가 없으면 분별력과 업무 자존감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코로나 전에도 이미 전 세계 사무직 노동자의 40%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공동 식사 이외에도 자원봉사 등 소속감을 일깨울 다른 프로그램을 강구해야 합니다.”
-코로나 이후 ‘외로움 경제’는 어떤 식으로 폭발할까요?
“단식 후에 강렬한 식욕을 느끼듯 사회적 교류가 차단된 시기가 끝나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연결되기를 갈망할 거예요. 본격적인 ‘외로움 경제’의 시대가 펼쳐질 겁니다. 노인의 벗으로 설계된 이스라엘의 인공지능 로봇 엘리큐는 이미 팬데믹 기간에 미국 플로리다에서 큰 인기를 끌었어요. 사무실이나 주택도 얼마나 세심하게 공간 안에 공동의 경험을 설계하느냐로 사활을 걸겠죠.
향후 몇 년간, 기업은 외로움을 완화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릴 겁니다. 로블록스나 포트나이트 같은 가상 커뮤니티도 게임을 넘어서 음악, 패션, 오락까지 사업 범위를 확장하고 있어요. 포트나이트에서 열린 트래비스 스캇의 공연에 2,700만 명이 모인 걸 보세요. 커뮤니티 기술 스타트업 기업들은 유대감 전달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어요.”
-당신이 ‘외로움 경제 시장’에서 친구를 고르고 산 경험담을 듣고싶군요. 렌트한 친구와 시간을 보낸 후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솔직히 말하면 ‘렌트어프렌드’ 앱으로 고용한 친구 브리트니와 만나기 전까지 몹시 긴장했어요. 플라토닉한 친구로 고용되기 위해 그 회사 웹사이트에 이름을 올린 60만 명 중에 그녀를 발견했죠. 몇 시간 동안 우리는 맨해튼 중심가를 돌아다녔어요.
함께 옷을 고르고 좋아하는 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깜빡 잊기도 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되자 브리트니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고 내게 사무적으로 말했어요. “총 120달러예요.”
배달 앱으로 치즈버거를 주문하듯 우정을 주문하는 일은 결과적으로 씁쓸했어요.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 빅토리아 시대 소설에도 고용된 ‘말벗’이 있었답니다. 그들은 금전적 여유가 있는 여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공감해주고 우정을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받았어요.”
-돈을 주고 친구를 사는 일은 더 대중화될까요?
“아마도. 우정을 시장에서 사는 게 누군가에겐 해결책이 될 수도 있죠. 렌트한 친구 브리트니에게 주 고객을 물었더니 ‘맨해튼에 갓 이사 온 전문직 종사자’라고 했어요. 친구를 사귈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친구를 사는 거죠. 인기가 없거나 덜 사교적인 사람들도.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우정을 사는 게 쉬워질수록 우리는 스스로 가족, 친구, 동료 시민을 돌보는 노력을 안 할 거예요. 렌트어프렌드 회사에서 바우처를 살 수 있는데, 뭐하러 굳이 연로한 아버지를 방문하고, 대학 동창의 뻔한 이야기를 들어주겠어요?
우정을 거래하는 관계에 빠져들수록 타협과 호혜의 근육을 단련할 기회가 사라져요. 그게 제가 브리트니와 보낸 시간이 충분히 즐거웠음에도 다시는 ‘렌트어프렌드’ 앱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예요.”
-그렇다면 허츠 박사님은 개인적 외로움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외로움을 주제로 연구하면서, 저 스스로 외로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애쓰고 있어요. 매주 즉흥연기 모임에 참가했고, 지금은 줌으로 모입니다. 정기적으로 마을 서점과 식료품점을 이용하고, 우편배달원이나 마을 카페 바리스타와도 20초 이상 안부 대화를 나눠요. 이러한 미세 상호작용은 ‘우리’를 일깨우는 중요한 안전신호죠. 소상공인들이야말로 우리 마을을 지탱하고 있는 보루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 사회가 분열과 극단과 악플로 홍역을 치르는 것도 ‘외로움의 반사적 공격성’ 때문이라고요. ‘전체주의의 기원’이 외로움이며, 나치 추종자에겐 ‘야만’이 아니라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가 있었다는 한나 아렌트의 통찰이 뼈아프더군요.
“외로운 사람은 수시로 뱀을 본다는 말이 있어요. 외로운 사람들은 세계를 더욱 적대적인 장소로 지각하고 음모론을 더 쉽게 받아들입니다. 트럼프 같은 대표적인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이 외로움을 악용했어요. 여전히 극단주의가 판을 치지만, 우리를 분열시키는 실체가 이념이 아닌 고립이라면, 낙관해도 좋습니다. 이념은 뿌리가 깊은 반면, 고립은 상황과 환경의 산물이죠. 우리가 고칠 수 있는 문제예요.”
-영국에만 있는 외로움 담당 장관은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실효성이 좀 있었나요?
“외로움 담당 부처는 긍정적이지만, 실제로 장관에게 할당된 예산이 적고 권한도 제한적이라 영향력은 미미해요. 외로움을 부추기는 수많은 경제, 사회, 기술적 요인을 한 부처에서 해결할 수 없으니까요. 외로움은 지역 정부와 중앙 정부가 협력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예컨대 어떤 정책이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지요?
“사회 통합을 이루려면 물리적으로 함께할 공간이 필요하죠. 정부는 공원, 청년 센터, 노인 주간 보호시설, 도서관 등 공동체 기반 시설에 투자해야죠. 지자체는 지역의 중심가, 마을 상점, 마을 서점을 살려야 해요.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기 위해서는, 적절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정부는 소셜 미디어 기업에 강경한 조처를 해야 해요. 최근 영국 의회는 소셜 미디어 기업이 해로운 콘텐츠를 플랫폼에 방치하는 걸 불법화하는 법안을 상정했습니다.”
-한국은 모든 면에서 뜨겁고 치열하고 과잉된 사회입니다. 외로움조차 그렇게 표현되고 있죠. 당신은 책에서 한국의 외로운 풍경으로 ‘먹방’을 주목했지요. 온몸으로 외로움을 돌파해나가는 한국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한국인들만 외로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해요. 무엇보다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누가 가장 외로울까를 생각해보고, 의식적으로 손을 내미십시오. 전화기를 집어 들고 문자를 보내고 직접 만나세요. 먹방에 올인하기보다, 먹을 것을 직접 나누세요.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만 보여줘도 삶에는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지막으로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연구하기 이전과 이후의 당신은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이전까지 저는 글로벌 시민이었어요. 미국과 유럽에서 수학했고, 비행기를 타고 몇 주씩 옮겨 다니며 전 세계에서 일했죠. 지역이나 마을에 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책을 쓰면서 내가 속한 지역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몇 초라도 눈인사를 나눠요. 사는 곳에 뿌리가 깊으면 외로움에 저항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