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아기들이 정말 다 버려진 아기들일까?'라는 물음표를 들고 상류로 간 김윤지 비투비 대표./사진=박상훈 기자

행동경제학자 댄 히스의 ‘업스트림’은 하류로 떠내려오는 아이들에서 시작한다. 허우적대는 아이들을 구조하던 중 갑자기 한 사람이 자리를 떠난다.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그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은 강의 시작 지점이었다. ‘누가 왜 아이를 흘려보내는지’ 상류에 가서 해결하겠다는 것. 이 단순한 우화에 대한 충격은 컸다. 문제를 보는 시야와 해법을 단번에 확장시켰다고나 할까.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우리 사회 혁신가들을 지원하는 카카오 펠로우십 선정위원회에 참여해서, 이 우화의 실제 모델을 발견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떠내려오는 아이를 구조하기 위해 강의 상류로 달려간 사람. ‘버려진 아기’로 명명되던 ‘베이비박스’를 ‘맡겨둔 아기’로 새롭게 인식한 ‘베이비박스 프로젝트’의 창립자, 비영리스타트업 비투비의 김윤지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아기가 잉태되고 베이비박스로 와서 보육원으로 보내지는 과정을 ‘강’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린 부모들의 30%가 다시 찾으러 왔어요. 그들은 아기를 버리러 온 게 아니라 맡기러 온 거 였어요. 어린 부모들은 대부분 청년 빈곤층이었고 주변에 도움을 구하다 최후에 베이비박스를 선택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들이 있는 강의 상류로 갔어요. 아기를 구하려면 부모를 구해야했어요. 이 가슴 아픈 대물림을 끊기 위해.”

연민이 배인 반듯한 어조로 김윤지가 말했다. 그는 2009년부터 5년간 베이비박스로 온 아기들과 부모의 상담일지 512건을 분석해서 데이터를 추출했다. 일명 ‘베이비박스 프로젝트’를 통해 부모들은 대개 10대~20대 빈곤 청년이며, 원가정 해체와 주거 불안, 장애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임신 출산 후 한쪽 파트너가 도망가버린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30%의 부모가 아이를 데려간다는 사실에서 긍정의 실마리를 찾았다.

김윤지는 하버드 케네디스쿨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석사를 공부했으며, 내셔널지오그래픽, 오바마 캠프를 거쳐 플래시먼힐러드코리아에서 공공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로 일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에 갚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했다. “아기 키우기 어려운 부모들은 어느 사회나 있다”며 편견도 없고 아이도 없는 그 자신을, 우주의 소시민이라고 소개했다

-그동안 우리는 하류에 떠내려온 베이비박스만 수습하기 바빴어요. 강의 상류로 가서 당신이 본 것을 이야기해주세요. 누가 아이를 버립니까?

“처음엔 저도 ‘베이비박스’로 온 아기를 돌보는 봉사 활동을 2년 정도 했어요. 그러나 문득 궁금해졌어요. 이 아이들의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사회에서는 ‘성적 문란’ ‘혼외 임신’ 으로 낙인만 찍는데, 다른 사정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상담일지를 분석했어요. 부모들은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어요. 가정 폭력, 빈곤, 이혼이 겹쳐진 위기 가정의 아이들이 거리에서 헤매다 임신을 해요. 성지식이 없어 임신 8개월이 될 때까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어요.

제가 의미있게 본 건 제주도에서 8명이 왔다는 거예요. 태어난 아기를 버리지 않고 16시간 힘들게 배를 타고 베이비박스까지 온 거죠. 그 어린 부모들은 베이비박스를 아이를 버리는 ‘쓰레기통’이 아니라 ‘임시보호소’로 생각했어요. 안전하다고 본 거예요. 거기서 밝은점을 봤어요. 30%의 부모가 다시 아이를 키우겠다고 찾아갔다는 데서 희망을 봤어요. 이 수치를 높일 수는 없을까?”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 2008년부터 1600여명의 아기들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아기가 놓이면 보온 열선이 작동되고 벨이 울린다. 현재 영아 유기를 막는 보호소 역할을 하고 있다.

임신 사실을 아는 순간, 고립된 청년 부모들은 인터넷 검색부터 한다. 그러나 그들을 도울 정보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이용 방법도 이해하기 어렵다. 김윤지는 온라인 바다의 상류에 구명 튜브를 띄웠다. 위기 임신이 됐을 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모든 정보와 자원을 하나로 모은 웹 플랫폼 ‘품(puum)’을 만든 것.

나는 품의 웹페이지를 열어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너가 뭘 필요로 할 지 몰라서 아기를 키우는 데 필요한 건 다 준비해봤어’라는 따스한 카피로 문을 연 이곳에는 기저귀와 집, 아기와 머물 수 있는 시설, 수술비 지원 병원, 일거리와 먹거리 지원, 민간 단체, 동료 커뮤니티까지 일목요연하게 분류돼 있었다. ‘사회라는 엄마의 품’에서 걱정말고 같이 한번 키워보자고.

2020년 5월, 서비스 오픈 첫 3주만에 2천명이 넘는 사용자가 접속했고 포스팅의 페이지 뷰 수는 8천 건이 넘었다. 인터넷 모세 혈관을 따라 당장 도움이 절실한 1만 2천명의 청년 부모들에게 링겔처럼 맞춤 정보와 자원이 착착 흘러갔다.

데이터와 정보 검색 엔진 ‘품’으로 환경을 설계한 후 김윤지는 더 나은 솔루션을 위해 현장의 어린 부모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나섰다. 한 사람의 미혼모를 구할 수 있다면 전부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데이터 밖으로 나와 왜 굳이 한 명 한 명을 만났습니까?

“그 한 명 한 명이 계속 영감을 줘요. 가령 성민이는 고기잡이 홀아버지 밑에 자랐는데, 미혼모로 출산했어요. 아버지는 딸에게 입양보낼 것을 강권했는데, 이 친구가 면담 후에 울면서 혼자 키워보겠다는 거예요. 그 며칠 후 전화가 와서는 물어요. “일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있나요?” 미혼모, 미혼부들은 대개 청년 빈곤층이에요. 결국 자립 지원이 함께 가야하는 거죠. 그때부터 롯데 유통 등 몇몇 기업과 업무 협약을 맺고 일자리 지원에 나섰어요.”

-주로 어떤 사람을 돕나요?

“더 어려운 사람보다 ‘지금 하려고 하는 사람’ 위주로 가요. 그 사람이 긍정의 끈이 돼요. 지원받고 성공한 사람이 단톡방에 ‘이렇게 했더니 좋더라’ 경험담을 공유하면, 다른 친구들이 그 밝은점 주위로 몰려들어요. 그 친구가 로프가 돼서 딸려 와요. 품을 통해서 커뮤니티가 얼마나 중요한 지, 더불어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어요.”

18살 청년 부모가 주민센터에 ‘긴급생계비’ 신청을 했는데, 공무원이 고압적으로 다그치면 숨을 곳이 없다고 했다. 차별받으면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고. 정상 가족과 비정상가족으로 분류해 ‘실패한 인생’으로 하대하는 언어부터 거둬들여야 한다고.

-일각에서는 아기를 학대하는 어린 부모들이 사회문제가 되고 공분을 일으키기도 합니다만.

“짐승만도 못하다고 욕을 하죠. 그런데 그런 사건을 들여다보면 청년 부모들이 경계성 인격장애가 있는 경우가 허다해요. 어릴 때 가정 폭력 겪고 엄마가 동생만 데리고 떠난 후 자기도 집을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하다 덜컥 아이를 갖는 거예요. 언론에 보여지는 모습 이전에 각자의 우주가 있어요. 그런 경험이 다 학대로 이어지진 않지만, 뿌리를 따라가면 결국 대물림이에요.”

-그런 대물림을 끊을 수 있나요?

“(미소지으며)당장은 안돼요. 노력해야죠. 2018년부터 이어진 인연이 있어요. 베이비박스 팀원 중에 학교밖 출신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부천 청개구리 밥차에서 음악을 가르치다 만난 지연이라는 소녀예요. 성매매 포주 집에 얹혀산다고 해서, 위험이 감지됐어요. 제가 만나본 지연이는 미꾸라지 같은 아이였어요. 연락이 자주 끊어졌죠.

어느날 첫 애를 출산했다고 해서 도와주면 사라지고, 그 이듬해 또 둘째를 임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요. 첫 아이는 할머니가 키우고, 임신한 채 찜질방과 카페를 전전하고 있더라고요. 수중엔 현금 천원이 든 체크 카드가 전부였어요. 사각지대의 아이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면 동거 조장한다고 부모가 소송을 하거든요. 할 수 없이 지인의 집에 기거하도록 했더니, 일주일 지내다 또 가출을 한 거예요.

청소년 부모 지원 기관으로 보냈더니 1년 정도 아이 키우다, 성매매 친구랑 아이두고 집을 나갔어요. 얼마 전에 그 지연이가 또 연락이 왔어요. “언니, 저 셋째 가졌어요. 청주에서 다른 남자 친구와 살아요. 도움 청할 사람이 언니 밖에 없어요”라고요.”

'아기를 구하려면 부모를 구해야 한다'는 김윤지의 메시지가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민간 교회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를 정부가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아... 그 아이는 왜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걸까요?

“베이비박스 리서치할 때 홀트아동복지회 상담사가 해준 이야기가 있어요. 아이 6명을 낳았는데 다 아빠가 다른 소녀였어요. 현재 아이 한 명만 키우고 있었고요. 상담사가 화가 나서 나무랐대요. “왜 자기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느냐?”고. 그 친구 답이 그래요. “자라면서 헌신적인 사랑을 받은 기억이 없는데, 아기 아빠와 성관계를 하면 유일하게 사랑받는 기분이 든다”고요. 일종의 성중독 질병이죠.”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가면 기운 빠지지 않나요?

“(놀라며)원점이 아니에요. 왜 다른 사람과 계속 아이를 낳는 지 이유를 알았잖아요. 처음엔 잠적했다가 이제는 먼저 연락을 해와요.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엄청 큰 변화가 생긴거죠. 저는 지연이가 사회구성원으로 잘 살아가면, 백 명 천 명의 지연이를 구할 수 있다고 믿어요.

지연이도 오남매인데 아버지가 다 달라요. 그 친구도 대물림 사이클 안에서 나왔어요. 개인 잘못이 아니라 사회 문제인 거죠. 제 2, 제 3의 지연이를 막으려면 지금 이 친구를 포기하면 안돼요. 그 친구는 같은 상황에 놓인 수백 수천 명을 예표하는 한 명인걸요.”

그 소중한 사람을 ‘배은망덕하다’고 내치면 답이 없다고 했다.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것 같고, 양치기 소녀의 거짓말에 속는 기분도 들지만, 그래도 믿어줘야 솔루션을 찾을 수 있다고.

“언제라도 도와줄 수 있는 한 사람으로 남아있는 게 중요해요. 당장 치료가 안돼도 자립할 수 있는 길을 계속 알려주면서.”

-임신 소식을 알리면 대개 친부모와 학교에서 연락을 끊고 도움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가슴 아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아이를 키우고, 누가 포기하나요?

“처음에는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었어요. 단 한번이라도 누군가에 의해, 설사 할아버지 손에서라도 길러진 경험이 있으면 자기 아이를 잘 포기 안해요. 반대로 가정이라는 DNA가 없으면 포기하죠.”

위기 임신하면 가장 먼저 인터넷 검색부터 한다는 데 착안해서, 모든 필요 자원이 집중된 모바일 플랫폼 품(puum)을 개설했다. 롯데유통, 아산나눔재단 등 뜻있는 기업, 민간과 정부 사회 기관이 파트너로 참여했다.

-누군가는 베이비박스에서 30%만 아이를 찾아간다고 개탄하는데, 당신은 30%를 희망으로 보고, 거기서부터 해결책을 찾아갔다는 게 놀라워요. 데이터를 정말 휴머니즘적으로 쓴다는 생각이 듭니다. 데이터와 웹 디자인을 설계할 때, 어떤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지요?

“UX디자인을 할 때 페르소나 실험이라는 걸 해요. 유저 전이 매핑인데, 제가 만난 미성년자, 비혼 부모를 유형별로 감정 이입해보는 거예요. 그런 상상력을 통해 주거, 경제, 기초생활 수급, 의료, 교육… 생애 주기별로 자원을 어떻게 매핑할지 시뮬레이션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빈구석이 보여요. 집이 생겼어도 세간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민간 기업에서 지원해서 햇반, 참치캔이 들어가도 둘 곳이 없어 빨간 대야에 쌓아두기도 해요. 18살 청년 부모에게 기저귀, 분유만 너무 몰리는 것도 안돼죠. 어느 시기에 어디에 가면 뭘 받을 수 있는지 그림이 나와야 되는데, 그건 당겨봐야 보여요.

그래서 한 명이 중요해요. 한 명으로 여러 명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진리예요. 그 한 명이 지닌 상징과 솔루션, 파급 효과가 정말 커요. 품 앱 런칭 준비와 식품 지원 사업을 같이 진행하면서, 미혼 한부모 가정의 풀을 파악하며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어요.”

-아이를 직접 키우기로 결정해도 경제적 자립까지는 먼 길이군요.

“맞아요. 그래서 베이비박스가 저는 부표라고 봐요. 그걸 중심으로 청년 빈곤, 한부모 가정, 장애인 가정까지 한 사회의 포용성 정도가 가늠이 되죠.”

기나긴 과정이라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실패를 정의하지 않는 이유는 뭐죠?

“정성껏 도와줬더니 아이 둘 낳고 나가면 실패일까요? 아니죠. 그것도 한 뼘 진도를 나간거예요. 아이를 1년 간 키운 경험이 쌓인 거잖아요. 평생 기초생활수급에 의지하다, 일하고 싶대서 연결해주면 잠수도 타요. 이틀만에 우울증으로 그만둔 40대 미혼모도 있었어요. 출근하면 당장 자원이 끊기니까요. 그런 사례도 실패가 아니라 ‘자원을 세밀하게 연결하기 위해 수사망을 좁히는 과정’일 뿐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낙관적일 수 있습니까?

“제가 발견한 건 오해였어요. 복지와 수급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오해, 일을 하면 지원이 끊겨 더 힘들어진다는 오해죠. 취업하면 더 많은 수당과 돌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사례로 보여주면 돼요. 다행히 저희는 정보를 잘 다뤄요. 정부와 민간의 다양한 자원을 선명하고 쉬운 언어로 전달할 수 있죠. 최근에는, 중학교 때 가출해서 미혼모가 된 한 엄마의 활동 반경을 눈여겨 보고 있어요.”

-그 한 명의 또 어떤 좋은 점이 눈에 들어왔나요?

“청소년 부모들은 재능과 적성을 탐구할 시간이 없었잖아요. 그 경험의 시간을 주려면 현금 지원보다 식품, 물품, 돌봄을 지원해서 취업을 유도해야죠. 그런데 보통 엄마들은 물품을 필요 이상으로 신청해서 쌀이 썩는 경우도 있어요. 받는 족족 다 낭비하고 또 달라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이 분은 딱 필요한 만큼만 신청하고 가계부도 쓰더라고요. 중국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유흥업소에서도 생활한 엄마인데, 경제관념이 투철하고 검정고시도 쳐서 합격했어요. 이 엄마가 단톡방에서 밝은 점이 됐어요. 이분은 왜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을까? 핵심은 경제 교육이었어요. 이분이 제게 많은 영감을 줬어요. 성교육만큼 경제 교육도 중요하다는 사실을(웃음).”

비영리 스타트업 비투비에 소속된 직원은 현재 3명. 김윤지 대표는 그들과 힘을 합쳐 빈곤 청소년이 임신을 인지할 때부터 자립할 때까지 맞춤 정보와 자원을 매칭하고 있다./사진=박상훈 기자

김윤지의 이야기에는 쉼표가 없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같기도 했고, 열정에 들떠서 달리는 기차같기도 했다. 속된 말로,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도 다녔는데, 그는 왜 비영리스타트업을 만들어 ‘사서 고생’을 하는걸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해사하게 웃으며 그가 말했다. “제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덕분에 마음껏 방황도 했고요.”

-방황이라니요?

“20~30대 때 저는 차인표 씨처럼 아침마다 ‘분노의 양치질’을 했어요. 내가 뭘 위해 이 일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고 달렸죠.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는 DNA를 채취해서 소수민족의 조상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참여했고, ABC TV 보스턴 지부에서는 이라크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라크 전쟁을 다뤘어요. 오바마 캠프까지 참여하면서 내 재능은 커뮤니케이션에 최적화 되어있다고 느꼈어요.

공공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건 케네디스쿨에 진학하고 나서야 알았죠. 아! 나는 공적인 문제를 고민할 때 가장 흥분하는구나. 홍보회사에서 일할 때 옆자리 동료는 켈로그 시리얼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신나했는데, 저는 그게 너무 지루했어요(웃음). 정부쪽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국가브랜드에 관한 멋진 차트를 만들 때도 ‘아름다운 쓰레기’를 뿌리는 기분이었죠.

그때 갈증이 크게 올라왔어요. 진짜 내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은 내 서비스를 살 수 없구나. 내가 사람들의 변화를 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일, 처음부터 끝까지 결과를 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게 베이비박스 프로젝트 였어요.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양육을 포기한 부모를 어떻게 도울까? 문제를 아이데이션 하고, 강줄기를 그려 디자인 씽킹을 시작하면서 제 몸에도 피가 돌았어요.”

-운명적이네요.

“(미소지으며)어느 순간 우주의 별이 일렬로 서는 느낌이랄까요. 내가 배운 것들이 하나로 꿰어져서 이 일에 쓰이고 있다는 느낌...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졸업 연설에서 그랬잖아요. ‘Connect dot!’ 저는 미래의 한 점을 보고 쫓아온 게 아니었어요. 그냥 갈지 자로 온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점들이 연결돼 있었죠.”

-하늘의 귀여움을 받으셨군요!

“맞아요. 품을 런칭하고 나니, 여러 기업에서 함께 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어요. 정말 신기한 기분이었어요!”

"베이비박스에서 더 먼 상류로 가면 고위험군이 나와요. 사전 피임, 성교육도 중요하죠. 하지만 저는 저의 솔루션을 내기 위해 '위기 임신'부터 문제 범위를 설정했어요."/사진=박상훈 기자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나요?

“부모님도 후원해 주고 계세요. 돌아보면 저는 자라면서 굶주리거나 갈 곳이 없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좋은 환경에 노출돼서 똑똑한 사람들 보며 적성을 탐구할 수 있었죠.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았고요.

어릴 적 특이한 기억이 있는데요. 제가 ‘못생긴 아기’로 유명했어요. 주변에서 걱정할 정도로 박색이었는데, 어머니는 저를 생명 그 자체로 신기하게 봐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사랑받았던 존재로 한 치의 의심이 없어요. 그 사랑이 얼마나 최고의 힘인지 알기 때문에, 그 사랑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그 몫이 당연하게 갔으면 좋겠어요.”

해결사의 투지가 아니라 매 순간 흘러넘치는 사랑의 분수를 품은 사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이 충만해도 비영리스타트업 5년의 길이 현실적으로 꽃길이었을까? 인재 뽑고 100억 투자 받고 스톡옵션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스타트업과는 달리, 월급 한 푼 없이 과외로 버티며 밤새워 기업의 공익사업에 지원서를 보내 자원의 통로를 뚫던 지난한 나날들. 올해 처음으로 3명 직원의 급여 1년치가 확보되었다며 웃었다.

-100억이 있다면 무얼 하시겠어요?

“저는 진짜 100억이 필요합니다(웃음). 한부모 가정에서 취업할 때, 첫 3개월 돌봄 지원이 절실해요. 정서 지원, 주거 지원, 느슨한 커뮤니티 공동체… 꼭 필요한 데 비어있는 자원이 얼마나 많은데요.”

-다른 꿈은 없나요?

“없어요. 제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이 일을 계속하는 거예요. 50대 지인 분이 저의 꼬꼬마 시절에 베이비 박스 프로젝트 사업 포부를 듣고 “그만 두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5년째 지속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 “앞으로 함부로 조언하지 않겠다”고 하세요. 제가 식음전폐하고 이 일에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해요. 지금 안하면 다음 생애에도 이걸 붙들고 있을 것 같아서예요.”

다음 생애라는 선명한 언어가 ‘대물림의 비극’을 이미 끊어낸 듯, 덩달아 벅찬 기분이 들었다.

-그 열정의 근원은 아기에 대한 사랑인가요?

“글쎄요. 본질적으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쓰임이 되고 싶어요. 그 일이 제게는 아기를 키우는 부모에게 사회적 자원이 잘 흐르도록 돕는 거죠. 거창하지 않아요. 레스토랑 셰프가 맛난 음식을 대접하는 것처럼, 뮤지션이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모든 일하는 사람의 마음과 다를 바 없죠.

그래서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좋은 일 하시네요’예요. ‘왜 하느냐?’는 질문에는 이미 편견이 깔려 있죠. 이거 하나는 정직하게 말할 수 있어요. 상류를 거슬러 가서 어린 부모들을 만났을 때, 저는 단 한번도 그들을 불쌍하게 여겨본 적이 없어요. 그 상황이었다면 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저는 그분들을 진심으로 용감하다고 생각해요.”

데이터 휴머니스트 김윤지. 비투비는 위기 임신과 한부모 가정의 자립을 돕는 모바일 웹 '품(puum)'에 이어 내년 상반기 앱 출시를 앞두고 있다./사진=박상훈 기자

‘만약 내가 너였더라면’... 공감의 가정법을 등대 삼아, 김윤지는 베이비박스의 상류에서 무정한 철부지가 아니라 용기 있는 어린 부모를 찾아냈다. 불행의 도돌이표를 반복하는 사람에게서도 기어이 밝은 점을 찾아내는 그의 ‘희망의 능력’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