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에 출범해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는 청년 정치 에이전시 뉴웨이즈 박혜민 대표/사진=박상훈 기자

정치인이 언어를 선택하는 능력은 국민을 품격 있게 만들어주는 능력 중 하나다. 공동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지닌 정치인은 시대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예민한 쟁점을, 포용적이며 분별력 있는 언어로 담아낼 줄 안다. 정치인의 언어는 등대가 되고 방향이 되고 창이 되고 방패가 되어, 대중들은 그 언어의 울타리 안에서 울고 웃고, 뭉치고, 싸운다.

최근 대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정치인들의 말은, 자기가 선악의 기준이 되어, 기세가 가파르고 계통이 없어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그 와중에 눈이 번쩍 뜨일만큼 ‘참신한 언어’를 쓰는 정치 혁신가를 발견했다. 29살의 정치 에이전트 박혜민(뉴웨이즈 대표)을 소개한다. 올해 2월에 활동을 시작한 뉴웨이즈는 스타와 팬덤의 건강한 ‘돌봄 관계’를 선거판에 도입, 젊치인(정치 신인)과 캐스팅 매니저(능동적 유권자)라는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설계했다. ‘동료에게 잘 배웠다’는 이 청년은 스타트업의 문법으로 쾌적한 정치 환경을 만들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의 20%를 2030세대로 채우겠다는 야심가 박혜민을 만났다. 청년의 언어는 달고도 서늘했다.

“100점 인간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는 영웅이 아닌 시민을 봐요.” “탁월하게 반짝이는 1인보다 내 곁의 친구가 결심하고 성장할 때 용기가 나잖아요.’평범한 쟤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을까?’ 그런 결심들이 이어져야죠.”

“탁월함을 추구하다 고독해져요. 생존 방식이 다양해져야 각자 당당한 시민이 돼요.” “청년은 뭘 해줘야할 사람이 아니에요. 해결해줄 존재도 아니죠. ‘와서 해결해 봐!’ 그 말부터 시작하면 풍경이 달라질 거예요.”

인터뷰 내내 주어와 술어의 합이 맞아떨어지는 명쾌한 문장을 구사해, 산소를 들이켜듯 귀가 시원해졌다. 영웅과 탁월한 개인의 시대는 가고, 보통 사람의 맥락과 서사, 시뮬레이션과 결심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명함이 좋네요! 직관적으로 보기좋고, 메시지도 살아움직여요.

“(반색하며)디자이너와 ‘티키타카’가 맞았어요. 시작은 질문이었어요. ‘어떤 형태의 변화를 만들고 싶지?’ 던져진 질문에 함께 답을 찾아갔죠. “민주주의는 누구나 손을 번쩍 번쩍 들수 있어야지.” “개인의 영향력이 연결돼서 파도를 타야지” 서로의 생각이 빌드업되면서 지금의 형태가 생겨났어요.”

-일하는 방식이 참 트렌디하군요!

“하하. 제가 동료들에게 일을 잘 배웠어요.”

-어떤 사람이 당신의 동료죠?

“저와는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요. 이 일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인데, 디자인 탬플릿으로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뽑아내는 일은 커뮤니케이션 파트의 곽민해 님이 해요. 뉴웨이즈를 처음 만들면서 ‘어떤 사람을 모실까’ 고민했어요. 저는 복잡하고 진지하게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반대로 곽민해 님은 명쾌하고 재밌게 말해요.”

‘어떤 사람을 뽑을까’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모실까’라는 언어 선택이 산뜻했다.

다층적인 언어를 쓰는 박혜민과 간결하고 유머러스한 언어를 쓰는 곽민해./사진=이로운넷

뉴웨이즈의 두 축 박혜민과 곽민해는 29살 동갑이다. 두 사람은 2020년 2월, 한 네트워크 모임에서 만나 온라인 독서 모임을 함께 했다. ‘정치 에이전시를 만들어 젊은 후보자를 내겠다’는 박혜민의 결심에 ‘재밌겠다!’며 처음 눈을 반짝인 이가 곽민해였다. “어쩌면 민해 님이 눈을 반짝이는 바람에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그가 애정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곽민해가 ‘반짝이는 꿈’을 가진 박혜민에게 합류하면서 뉴웨이즈의 물꼬가 트였다.

-좋은 파트너를 ‘모시는’ 비결이 있나요?

“하하. 글쎄요. 저는 협업 과정에 신경을 써요. 상대방이 이 일에 참여하면서 ‘성장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맥락을 공유하죠. 얼마 전엔 캐스팅 매니저들(정치 신인의 지역 지지자들) 대상으로 투자설명회를 했는데, ‘요기요’ 배달앱을 만든 개발자 분도 돕겠다고 나섰어요. 뉴웨이즈는 지금도 SNS기반으로 데이터 세팅이 제법 탄탄해요. 가설, 행동 측정, 데이터가 선명하게 구축이 돼 있죠.”

-올 초에 저는 프랑스 하원의원 출신인 한인 2세 델핀 오를 인터뷰했어요. 그녀가 그러더군요. 변화의 핵심은 숫자라고. 전체의 30%만 되면 정치조직의 언어와 문화, 정책이 바뀐다고요. 델핀 오와 그녀의 오빠인 세드릭 오(현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는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프랑스 정가의 세대 교체를 이뤄냈습니다. 세드릭 오를 만났을 때도 당시 여당 의원 중 1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선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투우사, 활동가 등 다양한 직업 출신이 정계에 모였고 실제 혁신이 일어났다는 거죠. 프랑스의 젊은 정치는 신선하지만, 그들은 한편 마크롱을 중심으로 올랑드 캠프에서 일했던 준비된 엘리트 출신이었어요.

“(눈을 반짝이며)그 기사를 봤어요. 특히 델핀 오 기사는 저희에게 큰 영감을 줬어요. 마침 저희의 정체성을 잡아가면서 여러 형태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있는 중이었어요. 정책이나 아젠다를 뾰족하게 가져간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우리도 이 모델로 갈 수 있을까? 말씀하신 대로 마크롱의 경험치가 너무 높았어요(웃음). 결론은? 그 정도의 또렷한 한 명의 캐릭터를 찾아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질문을 던졌어요. 내가 바꾸고 싶은 것이 정치인가? 정치산업시스템인가?”

-정치와 정치산업시스템을 분리했군요!

“네. 정치는 캐릭터가 우선이에요. 한 명의 영웅이 필요하죠. 저는 정치보다 정치시스템을 바꾸는 데 우선순위를 뒀어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대표로 얼굴을 드러내지만, 진짜 목표는 ‘개인들’을 키우고, 제 얼굴은 지우는 거예요.”

-참모형인가요?

“아니요! 저는 명확한 리더 스타일이에요. 하하. 참모를 못견뎌서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한 걸요. 다만 성취의 포인트가 달라요. 제 영향력이 커지는 게 목표가 아니에요. 제가 만든 가설과 시스템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워킹하는 걸 보고 싶어요. 사람들이 변화하는 계기를 만들고 정확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을 보고 싶은 거죠.”

-마크롱보다 더 야심이 큰데요?

“그러면 제가 마크롱보다 야심가인걸로! 하하.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오해하는 게 있어요. 100점 짜리 사람은 없는데 100점을 원해요. 사람은 다층적이에요. 비판받는 사람도 옳은 일을 하고, 옳게만 보이던 위인도 허튼 짓을 하죠. 저는 존재하지 않는 100점 인간을 찾는 대신, 사람을 다층적으로 보게 만드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희는 영웅이 아닌 시민을 봐요. 라이징 스타, 뛰어난 1인을 ‘픽업’하는 형태가 아니라 아예 권력 창출 모델을 바꾸자는 거죠.”

-모두가 알듯이 정당의 공천과정에서 전근대적인 라인을 타게 돼요. 그런데 당신은 ‘정당 조직의 힘’이 아니라 ‘국민 오디션’ 형태로 정치인 후보자를 뽑자고 해요. 맞습니까?

“네. 공천 시스템은 줄서기를 요구해요. 물론 젊은 인재를 픽업해서 꽂아주기도 하죠. 그런데 모델이 이것밖에 없으면 아무리 신선한 정치인도 기존의 힘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어요. 개인의 의지로 무결하게 100점짜리 정치인이 되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그런데 모델을 바꾸면 다르게 갈 수 있다?

“시도해 봐야죠.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함께 보완하는 시스템을. 올해 초에 저희가 내년 기초의원 선거에 등판할 만 39세 미만 신입 ‘젊치인(젊은 정치인)’ 모집 공고를 냈더니, 주변에서 조언을 했어요. 일단 유명인을 찾으라고요. 인플루언서가 결심하면 다들 찾아올거라고. 물론 단기적으로는 먹히겠죠. 하지만 전 확신해요. 뛰어난 1인이 결심하면 따라가는 모델은 더이상 안돼요.”

지방선거라는 그라운드에 잠재력 있는 신인 선수를 등판시키겠다는 설명을 담은 뉴웨이즈의 유머러스한 디자인 메시지.

-그럼 누가 결심해야 합니까?

“탁월하게 반짝이는 1인보다 내 곁의 친구가 결심하고 성장할 때 용기가 나잖아요.’평범한 쟤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을까?’ 그런 결심들이 이어져야죠. 저와 민해 님은 종종 서로에게 질문해요. ‘그래서 너는 어떤 장면을 보고 싶어?’ 유명인은 울림이 큰 만큼 리스크도 크죠. ‘쯧쯧, 그럴 줄 알았어. 역시 젊어서 안돼.’ (머리를 흔들며)이런 그림이 나오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럼 보고싶은 그림은 어떤 모습이죠?

“’내 본업은 이건데, 여기서 쌓은 경험치를 정치에 녹이고 싶어.’ 저는 이런 그림이 보고 싶었어요. 기초의원은 1년 평균 8천억원의 예산을 검토하고 다룰 수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기초의원은 하나의 ‘업’이라는 거죠(평균 연봉 4천만원). 저희가 영입 제안을 할 때 겸직이 가능하다는 걸 강조해요. 각자의 전문성으로 커리어 교차가 가능하다고요.

그러면 현직 정치인 분들은 막 나무라세요. “정치는 조직이야. 100% 올인해야지!” 물론 그 말씀도 맞아요. 그런데 그 방법도 있지만, 이 방법도 있잖아요. 저희는 이 방법을 실험해 보려는 거고요. 저희는 기초의원의 활동 범위를 이야기하는데, 국회의원 잣대를 들이대면 일반인은 겁나서 결심을 못해요.”

범주에 맞춰서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뉴웨이즈를 통해 출마 의사를 밝힌 후보자 직업군이 다양하더군요. 배달노동자, 독립서점주인, 게임기획자, 자영업자, 건설 현장 작업자, 공간 디자이너… 그분들은 왜 정치 스타트업의 신입사원을 자청했나요?

“배달노동자도, 건설현장 작업자가 그러세요. ‘코로나 시국에 겪은 게 많고, 그런 여러 문제를 주변 사람들과 해결해보고 싶다’고. 자기 삶에 그럴싸한 티핑포인트는 없지만, 해보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죠.”

-그런데 제시한 젊은 정치인의 자격조건을 보면 기준점이 ‘~하지 않는 분’이에요. 가령 차별과 혐오를 묵인하지 않는 분,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분, 사심 때문에 공동의 문제를 타협하거나 미루지 않는 분... 이유가 있나요?

“하하. 뾰족한 ‘Do’를 합의하는 데 너무 시간을 쓰기보다, ‘러프 컨센서스’로 자율성을 열어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어요. 젊은 정치가 생물학적 연령도 있지만, 이 정도의 방향성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랄까요.”

-캐스팅 매니저도 자격이 있나요?

“가볍게는 뉴웨이즈의 이메일을 구독하는 분들. 저희가 내년 지방 선거 경기장에 나갈 젊고 유망한 신인 선수들을 발굴하는 에이전시잖아요. 캐스팅 매니저는 관중석에서 벗어나서 적극적으로 선거를 즐기는 후원자들이에요. 저희가 2월에 설립됐는데 지금 캐스팅 매니저가 2660명 정도예요. 계속 늘고 있어요. 87%가 2030그룹이고 70대 분들도 있어요. 마포구는 100명이 넘어요.”

-신인 정치인과 유권자의 관계가 마치 스타와 함께 성장하는 팬덤 같군요!

“(눈을 빛내며)기성 정치인들이 젊은 정치를 무시할 때 하는 말이 있어요. “신인들은 조직이 없잖아?” 그런데 기성 조직이 뺏어올 수 없는 까다로운 세력이 바로 2030이에요. 우리가 2030을 갖고 있으면 협상력이 생기는 거죠. 50명의 지지그룹만 있어도 영향력을 주고 받으면서 힘이 생겨요. 지역의 캐스팅 매니저는 느슨한 결속 관계인 지지부터 동료, 후원, 연결까지 참여 강도도 다양해요.”

"어느 순간 흩어져 있던 커리어의 점들이 하나로 모였어요.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거구나."/사진=박상훈 기자

-팩트만 보면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아요. 지난 지방 선거에도 민주당, 국민의 힘이 젊은 층 비율을 높이겠다고 하고 할당제를 공언했지만, 실현이 안된 걸로 압니다만.

“맞아요. 그런데 지난 지방 선거에서 39세 미만 출마자가 7%, 당선자가 6%였어요. 일단 결심만 하면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그렇다면 저희가 할 일은 결심을 돕는 거예요.

요즘 정당의 지역 위원장이나 당협위원장들의 전화문의가 많아요. ‘우리 지역에 젊은이가 결심을 했느냐?’ ‘미리 만나고 싶다!’ 그분들도 기존 인물들이 신인 등장을 견제하기 때문에 뉴 페이스를 찾기 힘들다는 거죠. 그때 저희가 딱 준비된 후보자 명단을 드려요(웃음).”

뉴웨이즈는 지금 국민의 힘, 정의당, 녹색당 등 9개의 정당과 업무협약을 맺은 상태다.

-한편으론 젊다고 무조건 실력있는 정치인은 또 아닐텐데요.

“그렇죠. 기성 정치인들도 ‘청년 할당’을 얘기하면 발끈하는 분들이 있어요. ‘실력 없는 사람에게 자리를 줄 수 없으니 경쟁해서 들어오라’고요. 그럼 또 질문이 생기는 거예요. ‘대체 실력이 뭐지?’”

-실력이 뭐죠?

“가령 리더집단에서 남성이 9명이고 여성이 1명이면, 그 한 명의 여성에게 높은 자격을 요구하잖아요. 얼마나 준비됐지? 얼마나 알고 있지? 정치 분야에서도 젊은이에겐 기준이 훨씬 높아요. 그 기대치에 재질문을 던지면, 시스템적인 답변이 아니라 개인의 실책을 끌어와요. 정치권이 요구하는 실력은 사실 세력인 거죠.”

-스타트라인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솔루션이 있나요?

“스타트업에서도 신입 들어오면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가르쳐주잖아요. 그런 모델을 만들었죠. 18명의 현역 기초의원을 멘토링 코치단으로 두고 트레이닝을 받는 시스템이에요.

‘출마 의사는 어떻게? 공천심사는 어떻게? 슬로건은? 선거 자금은?’ 선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실용적인 정보를 아무도 안가르쳐줘요. 검색해도 안나오죠. 사소한듯 중요한 Q&A를 모아 가이드북을 만들고, 디테일한 케이스 바이 케이스 고민도 멘토 그룹과 매칭해줘요.”

-그런데 아무리 모델을 바꾼다해도, 사회 변화라는 큰 그림을 그리다보면 결국 정당 정치가 답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요. 제가 상상력이 부족한 겁니까?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저도 그런 그림을 왜 안그려 봤겠어요. 시뮬레이션을 해봤더니 정당을 만들려면 시도별로 1천 명씩, 일단 5천명이 당원으로 가입을 해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힘을 써서 만든 정당들의 차별적인 메시지가 정작 국민들 귀엔 잘 안들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당 결성만으로는 정치 메카니즘을 못 뚫어요.

현재 구조를 보면 90%이상의 기초의원이 거대 양당에서 나오고 10%가 군소정당에서 나와요. 여기서 또 질문하는 거죠. ‘우리가 10%의 군소정당에 도전장을 내밀까? 아니면 90%를 흔들까?’ 저희 답은 후자예요. ‘정당을 초월해서 만 39세 미만의 연령 비율을 높이자. 정당도 생물이니 사람이 바뀌면 바뀐다’는 가설을 세운 거죠.”

-그 가설은 믿을만 합니까? 뉴웨이즈가 벌이는 ‘젊치인’ 운동의 해외 성공 사례가 혹시 있나요?

“미국의 브랜드 뉴 콩그레스(Brand New Congress)라고 버니 샌더스 계열의 민주사회주의자들이 후보를 빌드업하는 조직이 있었어요. 1%가 아닌 99%를 위한 정치를 지향하면서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에도 나온 ‘쉬 슈드 런( She Shouid Run, 그녀는 출마해야 한다)’도 여성들의 정치 출마를 독려하는 인큐베이팅 단체예요. 폴리티컬 파이프 라인 디렉터 등 꽤 전문적으로 설계 돼 있죠.”

-주목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미 연방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1989년 생)’라고 일명 AOC로 불리는 여성이에요. 버니 샌더스 캠프에서 일하던 라틴계 바텐더였는데, 민주당내 하원 원내의장이었던 10선 의원 조 크롤리를 꺾고 2019년 뉴욕 제14선거구에서 당선됐어요. AOC는 밀레니엄의 문법으로 정치를 해요.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타코 만들면서 정치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죠.

AOC의 출마 선언 영상이 정말 신선해요. ‘내 이름은 오카시오고, 어디서 태어났고, 바텐더로 일했으며… 자기 서사를 정리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 지까지 이야기해요. 미국 정치인들은 기업에서 선거 비용을 모금하는게 일반적인데, AOC는 완전히 다르게 갔어요. “돈을 이길 수는 없지만,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모으면 ‘빅 머니’를 이길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기업 돈을 안 받고 3달러, 5달러 모은 시민의 돈으로 선거에서 이겼어요.”

-영웅 신화가 아닌 개인의 서사로…

“그렇죠. 영웅의 신화로만 돌파하면 사회에 역량이 쌓이질 않잖아요. 과거에는 누가 정치한다고 나서면 돈 있는 친구들이 뒤를 봐줬어요. 젊은 세대는 밀어줄 돈 많은 친구가 없어요. 저 하나 살기 바쁜데 누가 누구를 밀어줘요? 그래서 시스템으로 해야 돼요.”

뉴웨이즈의 유머러스한 온라인 캠패인. '젊치인이 오면 깨워주세요' 등의 사인을 걸고 국회의사당 앞에 자리를 펴고 누운 젊은이들.

-대학시절, 사회 참여의 열풍을 일으킨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운동(2014년)에서 확장자 역할을 한 걸로 압니다. 당시 고교생, 해외 대학생, 유명인들까지 가세해 대자보를 올리고 리트윗하면서 들불처럼 번졌었죠. 그때나 지금이나 혜민 님은 개인이 일으키는 운동 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모양입니다.

“(활짝 웃으며)대단한 인생을 살지 않았더라도 자기 맥락으로 자기 서사를 쓰는 경험은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자기 이름을 말하면서 첫 대자보를 썼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에 화답하면서 자기 서사를 이어갔어요. 저는 그걸 페이스북 페이지로 만들고 아카이브로 기록했죠. 모르는 사람끼리 이름을 터놓고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던 그 경험이 강렬하게 남았어요.”

-그렇게 뛰어난 청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한국은 ‘젊치인 부족 국가(젊은 정치인이 부족한 나라)’가 됐을까요? 민주주의 전통이 짧아서?

“정치하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청년이 정치를 결심하는 환경도 만들어지지도 않았어요.”

현재는 ‘나와 비슷한 얼굴, 비슷한 언어로 말하는 정치인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그가 한숨을 쉬었다.

-기성 정치인의 어떤 면이 가장 실망스러웠나요?

“(표정이 어두워지며)우리의 절실한 말을 기성 정치인들은 감각조차 못한다는 점. ‘우리 말이 안들리나? 왜 그대로지? 왜 권력형 성폭력은 계속 벌어지고, 왜 정치인들은 변하지 않지?’ 가령 저는 29살 이니까 2050년엔 60살이에요. 연금이 소멸된다고 하면 저는 그게 현재의 문제고 다급한데, 그분들은 미래세대를 먼 수혜자처럼 얘기해요.

50~60대 정치인들은 주변에 결혼한 4인 가족이 많지만, 제 주변엔 결혼 안하고 아이도 없는 청년들이 많아요. 변화를 요구해도 의사결정권자 주변에 그 목소리가 없으면 힘들어요. 의사결정권자가 맥락, 관점, 우선 순위를 이해하지 못하면 젊은 세대는 실패 경험을 반복할 수 밖에 없죠.”

얼굴이 바뀌면 의사결정의 내용이 바뀔 거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국회에서 질의하는 정의당 류호정 의원./연합뉴스

-이준석, 장혜영, 류호정 등의 젊은 정치인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일단 그분들이 무슨 말을 하면 저는 잘 들려요. 밀레니얼과 언어가 교환이 돼니까요. 동의하든 않하든, 일단 들린다는 게 중요해요. 안타까운 건 역시 숫자가 적으니까 뭘하든 과하게 보이고, 세게 받아들여져요.”

-’들린다, 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이 감각적으로 들립니다. 결국 ‘정치는 언어’라는 말도 있는데, 혜민 님은 정치에서 어떤 언어가 들리길 기대하나요?

“엄기호 작가의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라는 책을 보면 바벨탑을 쌓는 말과 다리를 놓는 말에 대해서 나와요. 바벨탑은 자기 생각을 강화하기 위해 비슷한 사람끼리만 말해요. 반대 의견을 못견뎌하죠. 반면 다리를 놓는 말하기는 상대의 맥락과 관점을 들여다보고 다른 생각을 연결짓습니다. 다리를 놓는 언어를 듣고 싶어요.”

-다리를 놓는 말이 절실하죠. 그런데 정치권은 니 편 내 편 확실히 가르고, 다리에 불을 지르는 언어를 쓰니 안타까워요.

“”기성 세대는 다 구려요!” “젊은 세대의 기회를 뺏지 마세요!” “나가 주셔야 저희가 들어가죠!” 저도 이렇게 상대를 악마화하면 쾌감은 있겠지만, 정치는 영원히 얇은 상태를 못 벗어나요. 다층적이고 두꺼운 언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기성 정치인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어요. 함께 파트너십을 갖고 변화가능성을 만들어 보자는 거죠.”

-청년다운 정치란 뭐라고 생각해요? 다양성의 포용?

“더 다양해지기 위해 더 젊어져야 해요. 양적 다양성이 높아져야 질적 다양성이 높아지죠. 회사에서도 입사동기가 많아야 일하기 수월하잖아요. 15살 20살 씩 차이나는 동료들과 있으면 의견 내기조차 쉽지 않아요. 정당 상관없이 대화 나눌 젊은 사람이 3명만 되도 초당파적인 모임이 되고 성과가 나와요. 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5:5로 대치할 때, 젊은이들 보내서 조정안을 만들었다고도 들었어요.”

-여전히 초당파적 파이프라인이 중요한가요?

“네. 초당파는 저희에게 중요한 기조예요. 익숙하고 비슷한 사람보다 다른 사람이 모여야 성장 가능성이 있죠.”

-당신이 손잡을 기성 정당들의 진정성을 믿습니까?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해요. 믿어야 시작할 수 있고 의심해야 전략을 세울 수 있어요.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는 거죠.”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와 업무협약식을 맺고 있는 뉴웨이즈 박혜민.

-어른들은 청년을 어떻게 대하면 좋겠습니까?

“동료시민으로 눈 마주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어요. 청년은 뭘 해줘야 할 사람이 아니에요. 해결해 줄 존재도 아니죠. ‘와서 해결해 봐!’ 그 말부터 시작하면 풍경이 달라질 거예요. 서로 동료로서 성장 경험을 함께 하길 바래요(웃음).”

동료라는 말을 할때마다 박하사탕을 베어문 듯, 그의 입 주위에 미소가 번졌다. 기쁨과 자부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본능적인 미소였다. ‘동료에게 잘 배웠어요’라는 말에 담긴 크고 작은 비밀이 궁금했다.

-’동료로서의 성장’을 가르친 곳이 스타트업이지요? 거기서 또 무엇을 배웠나요?

“소셜 벤처 투자사, 혁신 언론, 항공 스타트업… 제가 있었던 공간은 기존의 언어로는 정체성 설명이 쉽지 않은 곳이었어요. 그래서 항상 서로에게 물었죠. ‘문제의 본질이 뭐야?’ 문제를 정의하는 그 자체가 해결방식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과정에서 저는 창업자와 동료에게 ‘어떻게 서로를 돌보면서 일할 것인가’를 배웠어요.”

-어떻게 서로를 돌보면서 일할것인가...

“네. 누군가 문제를 보고 변화를 결심하면 옆에 있는 친구가 나보다 더 눈을 빛내요. “너무 좋다!” “그건 네가 할 일이다!” “네가 아니면 누가 그걸 하겠니?” 격려하면서 상상력을 보태주면, 덜 위축이 됐어요. 내가 찾은 문제가 설명이 쉽지 않아서 두려움에 압도될 때도 동료가 버텨줬어요. “그래서 의미 있잖아” “이렇게 잘 하고 있잖아””

박혜민은 캐스팅 매니저와 ‘젊치인’의 관계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했다.

-스타트업 신화를 이야기했지만 ‘모든 문제를 기업의 영리 모델로 해결할 수는 없더라’고도 했습니다. 개인이 계속 탁월해지는 것에만 몰두할 수는 없더라고요. 무슨 말인가요?

“저는 사실 탁월한 걸 좋아해요(웃음). 그런데 탁월함을 추구하면서 일하다보면 동료를 돌보면서 일하는 태도가 우선 순위에서 밀려요. 그렇게 성장해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영리적 관점에서 스타트업의 문법은 사실 제일 잘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요. 그런데 제가 마지막으로 일한 항공사 에어프레미야는 회사를 더 나은 조직으로 만드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70대도 막내 직원과 함께 정한 규칙을 신뢰하고 따랐어요.”

-탁월한 1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두면, 어떤 문제가 생기죠?

“한 명이 탁월해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믿으면, 탁월하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를 꺼내놓지도 못해요. 무능하다는 자괴감 때문에 몰래 딴 데서 배워와요. 그래서 다들 ‘모르겠다’ 싶으면 고독해지는 거예요. 탁월함을 추구하다 고독해지는 거죠.

내 생존을 위해 탁월함을 추구했던 사람은, 타인을 다르게 도울 방법을 몰라요. 에너지도 없죠. 그래서 도움을 청하면 ‘네가 탁월해 지세요!’라고 조언해요. 그런데 탁월해지는 데 필요한 돈, 운, 시간은 평등하지 않잖아요. 생존 방식이 다양해져야 각자 당당한 시민이 되는건데, 그 생존 방법을 사회가 다양하게 열어줘야 하잖아요.”

탁월성에 대한 29살 박혜민의 탁월한 해석에 51살인 나는 경이로워 할 말을 잃었다.

-직접 정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하하. 저는 플레이어만 아니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치인의 역량은 입장을 분명히 하기인데, 저는 다층적인 사람이에요. 플레이어로서는 단점이죠.”

"살고 싶은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박혜민./사진=박상훈 기자

-가장 우선순위로 두는 입법 과제는 뭐죠?

“역시 기후 위기죠. 기후 위기는 부동산, 일자리, 세금 등 여러 의제와 다층적으로 연결돼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의제라기 보다는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책보다는 관점이 돼야죠.”

-당신의 어떤 점이 가장 자랑스러운가요?

“저 자신은 모르겠는데, 뉴웨이즈를 보면 감탄해요(웃음). 민해 님이랑 가끔 동시에 눈을 마주칠 때가 있어요. 그순간 놀라서 소리치죠. “우리가 무슨 일을 저지른거지?” “이게 된다! 짜릿해!” 확신에서 시작한 일이 아닌데, 우리의 선택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29살 박혜민이 희망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말해주겠어요?

“(생각에 잠기며)저는 사람들이 살고 싶으면 좋겠어요. 작년에 제가 힘들었던 이유는 20대 여성 자살률이 너무 높아져서예요. 해결하고 싶고, 변화하고 있고, 내일이 달라질 거라는 말을 지키고 싶어 선거까지 왔어요. 그래서 누군가 잠자리에 들 때, 내일이 엄청 희망 차지 않더라도,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누구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사회를, 저는 보고싶어요. ‘내 말을 들어주는 정치인이 늘어날거야, 그래서 내일의 생활이 조금 더 나아질거야’ 선명하게 감각하고 구체적으로 기대하는 세상에 살고 싶어요.”

바야흐로 청년이 오고 있다. 영웅을 넘고 시민을 세우며, 더없이 명랑한 기세로 청년의 정치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