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초호황을 맞았지만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D램을 못 팔아서가 아닙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비중이 높은 제품 구성과 삼성전자와의 생산량 차이 등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업계에서는 전체 D램 매출 점유율만으로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14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올 2분기 D램 매출은 전분기보다 37.9% 증가한 385억9000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점유율은 28.8%에서 24.9%로 3.9%포인트(P) 하락했습니다. 삼성전자는 39.4%로 1위를 지켰고, 마이크론은 23.3%로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1.6%P까지 좁혔습니다.
◇ HBM 잘 팔았는데… D램 점유율은 왜 떨어졌나
SK하이닉스의 점유율 하락에는 제품 구성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올 2분기 전체 D램 시장 매출은 전분기보다 59.5% 급증했습니다. 공급 부족으로 일반 D램 가격이 크게 오른 영향입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메모리 3사 가운데 HBM 출하 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일반 D램 가격이 급등하면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평균판매가격(ASP) 상승 효과를 상대적으로 크게 누렸습니다. 올 2분기 삼성전자의 D램 매출은 전분기보다 63.4%, 마이크론은 65.5% 늘어 SK하이닉스의 증가율(37.9%)을 웃돌았습니다.
생산 규모의 차이도 있습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보다 D램 웨이퍼 투입량 자체가 많고, 이에 따라 생산되는 D램 물량도 더 많다"며 "HBM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의 특성까지 감안하면 전체 D램 매출 점유율이 떨어졌다는 것만으로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는 "장기적으로 HBM 수요는 계속 증가하지만 범용 D램 수요가 같은 폭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SK하이닉스는 HBM 비중이 높은 만큼 전체 D램 점유율만 놓고 경쟁력을 판단하기 어렵다. 삼성전자가 원래 SK하이닉스보다 D램을 20~30%가량 더 생산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25%'보다 중요한 HBM… 범용 D램 급등에 셈법은 복잡
D램 시장의 무게중심은 HBM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HBM은 일반 D램보다 기술 장벽과 부가가치가 높습니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올해 1분기 기준 글로벌 HBM 매출 점유율이 58%에 달했습니다.
HBM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한다면 전체 D램 시장 점유율 하락의 의미도 과거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범용 제품을 많이 생산해 점유율을 높이는 것보다 HBM 등 고부가 제품에서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최근 범용·서버 D램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SK하이닉스의 셈법이 복잡해졌습니다. HBM에 더 많은 생산능력을 배분할수록 가격이 오른 일반 D램을 추가로 판매할 기회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범용 D램 가격이 예상보다 크게 오르면서 HBM에 생산능력을 집중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이 이전보다 커졌다"며 "다만 장기적인 수요와 수익성을 감안하면 HBM 중심의 제품 전략 자체가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HBM은 일반 D램보다 많은 웨이퍼 투입을 요구하는 데다 세대가 바뀔수록 칩 면적과 공정 난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HBM 생산 확대가 일반 D램 공급을 제약하면서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의 D램 점유율 25%는 단순한 경쟁력 하락을 의미하는 숫자로 보기 어렵습니다. HBM을 중심으로 메모리 시장의 수익 구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에 가깝습니다. 다만 HBM 왕좌를 지키는 동시에 가격이 급등한 서버·일반 D램의 수익까지 얼마나 가져갈 수 있을지가 SK하이닉스의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