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터너스 애플 신임 CEO가 9일(현지시각) 애플의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를 들고 있다./연합뉴스

존 터너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9일(현지 시각) 첫 데뷔 무대에서 보여준 전략은 인공지능(AI)이 아닌 아이폰의 성장 공식 변화였다. 팀 쿡 전 CEO가 아이폰을 중심으로 서비스와 웨어러블 등으로 애플의 사업 구조와 생태계를 확장했다면, 존 터너스 CEO는 핵심 제품인 아이폰 자체의 가치를 높여 성장을 이어가려는 모습이다.

터너스 CEO는 아이폰의 가격 인상 폭은 제한하고, 아이폰18 프로·프로맥스와 첫 폴더블 아이폰 '아이폰 듀오'를 전면에 내세워 제품 믹스(구성)를 고급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판매량은 방어하면서 소비자를 더 높은 가격대의 제품으로 이동시키는 데 집중한 것이다.

터너스 CEO가 취임 직후 아이폰의 제품 전략을 대대적으로 손본 것은 자신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아이폰 신제품이 중요한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지난해 약 4160억달러(약 560조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이 가운데 아이폰 매출은 약 2096억달러(282조원)로 전체의 50.4%를 차지한다.

애플의 첫 폴더블 아이폰 '아이폰 듀오'. /애플 제공

◇ 가격은 올리지만 소비자가 감당할 수준으로 제한

터너스 CEO의 첫 번째 선택은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애플은 아이폰18 프로와 프로맥스 가격을 미국 기준으로 각각 1199달러(161만원), 1299달러(175만원)로 책정했다. 전작보다 100달러(13만원)씩 올랐지만, 메모리 등 부품 가격 상승을 고려하면 시장의 예상보다 인상 폭이 크지 않았다는 평이 많다. 애플은 신형 아이폰을 출시할 때마다 구형 제품 가격을 낮춰오던 관행을 깨고, 신제품 공개 후 아이폰16, 17, 에어, 17e 등 구형 제품 가격까지 일제히 100달러씩 인상했다. 다만 지난 6월 맥과 아이패드 등의 가격을 최대 300달러(40만원) 올린 것과 차이가 난다.

특히 첫 폴더블 아이폰 '아이폰 듀오' 가격은 1999달러(269만원)부터 시작한다. 당초 시장에서는 2000달러를 훌쩍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애플은 2000달러 아래에서 가격을 시작했다. 특히 삼성 갤럭시 Z폴드와는 약 100달러 차이에 불과하다. 이는 터너 CEO가 가격을 올려 수익성을 극대화하기보다는 가격 저항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제품당 매출을 높이려는 전략을 택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판매량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더 비싼 제품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가격 저항선을 넘지 않으면서 평균판매가격(ASP)은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 소비자, 상위 제품으로 이동시키는 전략

두 번째 성장 공식 변화는 더욱 분명하다. 애플은 이번 행사에서 아이폰18 기본형을 선보이지 않고 아이폰18 프로, 프로맥스와 애플 역사상 가장 비싼 아이폰인 폴더블 '아이폰 듀오'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소비자를 상위 제품으로 이동시키는 업셀링(고객이 원래 구매하려 했던 제품보다 더 상위 버전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듀오의 시작 가격은 미국에서 1999달러(약 268만원)이며 2TB 모델은 3199달러(약 429만원)까지 올라간다. 기존 아이폰의 가격대 위에 완전히 새로운 최상위 가격대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애플은 기존 아이폰 소비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아이폰 프로→프로맥스→폴더블 듀오'로 이어지는 일종의 '아이폰 가격 사다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기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최상단에 고가 제품을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지난해 약 2억5000만대의 아이폰을 판매하며 역대 최고 수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이폰6가 출시된 2015년(약 2억3100만대)과 비교하면 10년 동안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터너스 CEO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이폰을 몇 대 더 팔 것인가'만이 아니다. 같은 판매량에서도 더 높은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다.

아이폰 18 프로. /애플 제공

◇ 1999달러 폴더블 '아이폰 듀오'로 만든 가격 사다리

아이폰 듀오는 전체 아이폰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 않더라도 전략적으로는 기존 프리미엄 소비자 가운데 일부를 더 높은 가격대의 제품으로 이동시키는 '아이폰의 가격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제품이다. 다시 말해 터너스 CEO 입장에서 폴더블은 단순히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제품이 아니라 기존 소비자에게 '더 비싼 아이폰을 살 이유'​를 제공하는 제품​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신제품이 나와도 기존 제품을 교체할 유인이 약해지고 있다. 프로세서가 조금 빨라지고 카메라가 개선되는 정도로는 이미 충분히 좋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폴더블은 다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폴더블로 기기를 바꾸면 화면 크기와 형태, 멀티태스킹 방식 등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방법 자체를 바꿀 수 있다.

터너스 CEO의 이번 전략은 그의 경력과도 맞닿아 있다.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터너스 CEO가 취임 직후 가장 큰 변화를 준 곳이 아이폰의 디자인과 제품 포트폴리오였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팀 쿡 시대 애플이 아이폰을 중심으로 서비스, 콘텐츠, 웨어러블, 금융 등 생태계의 외연을 넓혔다면 터너스는 핵심 하드웨어 자체를 다시 성장 엔진으로 삼으려는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주력 제품 라인에 새로운 변형 모델을 추가하는 것은 새로운 CEO에게는 위험 부담이 적은 출발점처럼 보인다"며 "터너스의 첫 번째 중요한 결정은 가격 인상을 완화하는 것이었는데, 수익 마진 압박을 감수하면서까지 판매량을 유지하려는 전략은 타당해 보인다"고 했다. 이어 "터너스가 획기적인 신제품을 선보이려는 시도가 수없이 이어지겠지만, 핵심은 약 15억명에 달하는 아이폰 사용자를 AI 시대로 이끄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