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챗GPT 달리

한국과 해외를 연결하는 국제 해저케이블이 일본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과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이를 해외 데이터센터와 연결하는 국제 통신망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한국 9개·일본 31개… 국제 통신망 격차

11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AI 시대 생존과 번영을 위한 소버린 해저 광케이블 인프라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통신 3사가 운용하거나 구축을 추진 중인 국제 해저케이블은 중복 노선을 제외하면 총 9개다.

통신사별 보유 노선을 단순 합산하면 11개지만, KT와 LG유플러스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APG와 APCN-2를 각각 하나의 노선으로 계산한 수치다. NIA가 비교 대상으로 제시한 일본의 국제 해저케이블은 운용 중인 23개와 건설 중인 8개를 합해 총 31개다. 한국의 약 3.4배다. 미국은 약 103개, 유럽은 약 152개의 국제 해저케이블을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저케이블은 노선마다 전송 용량이 달라 개수만으로 국가 간 국제망 경쟁력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NIA는 한국이 주요국보다 케이블 수와 전송 용량이 모두 부족한 데다 연결 경로도 특정 국가와 지역에 편중돼 있다고 진단했다.

◇ 美·유럽 직결망 2개뿐… 부산에 해저케이블 67% 집중

한국이 이용하는 해저케이블 상당수는 일본과 중국, 대만을 거친다. 이들 국가를 경유하지 않고 미국이나 유럽으로 연결되는 회선은 2개뿐이다. 육상 통신망과 연결되는 육양국도 부산에 편중돼 있다. 부산에 국내 해저케이블의 약 67%가 몰려 있다. 국제 데이터 통신의 약 99%는 해저케이블을 통한다.

이성훈 과기정통부 디지털기반안전과장은 "인근 해역에서 지진이나 해저 산사태 등 사고가 발생하면 여러 회선이 동시에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독립적인 우회 경로가 부족할 경우 남은 회선에 데이터가 몰려 국제 인터넷과 클라우드 서비스의 속도와 안정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로 다변성을 확보하기 위해 2030년까지 신규로 5개의 해저케이블 구축이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경유하는 데이터 트래픽은 세계의 약 3%에 그친다. 일본과 싱가포르가 아시아의 주요 데이터 관문으로 자리 잡은 것과 달리 한국은 국제 통신망의 변방에 머물러 있다. 국제망이 부족하면 국내 AI 데이터센터와 GPU를 확충해도 활용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 최근 통신사들이 해저케이블 노선 확충에 나선 이유다. KT는 NCP와 APG, APCN-2, KJCN, TPE 등 국제 해저케이블 5개를 운용하고 있으며 신규 노선인 'ALPHA'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동남아시아와 일본 등을 연결하는 'SJC2'를 상용화했으며, 2028년 개통을 목표로 부산과 미국 캘리포니아를 잇는 'E2A'를 건설하고 있다.

◇ 한 노선에 최대 2조원 이상… "국가 투자 병행해야"

국제 해저케이블을 새로 건설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업계에 따르면 노선 하나를 구축하는 데 통상 1조5000억~2조원 이상이 들고,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도 10년 넘게 걸린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빅테크의 투자 경쟁이 겹치면서 건설비는 과거보다 약 두 배 증가했다.

복잡한 인허가 절차도 사업 추진의 걸림돌로 꼽힌다. 공유수면 점용·사용 허가 과정에서 권리자 동의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야 해 전체 절차가 20개월 이상 걸릴 수 있다. 케이블 장애와 지진, 절단 사고 등에 대응하기 위한 유지·보수 비용도 매년 약 5%씩 증가하는 추세다.

이 같은 사업 구조에서는 민간 투자가 수익성이 높은 노선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국가 안보와 재난 대응에 필요하지만 수익성이 낮은 미국·유럽 직결망이나 독립적인 우회망은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NIA는 정부와 통신사, 대기업, 금융회사가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해 건설비와 투자 위험을 분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AI와 전자, 자동차, 항공, 물류 등 글로벌 통신망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케이블 건설에 함께 참여하고, 정부는 일부 회선을 공공·안보·외교·연구 목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수익성이 높은 노선은 민간이 주도하되, 국가 안보와 통신망 복원력 확보에 필요한 직결망과 우회망에는 정부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며 "해저케이블을 비용이 아니라 국가의 디지털 영토를 넓히는 장기 투자로 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