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각) 네덜란드 로테르담 '미디어마크트 테크 빌리지' LG전자 매장에 냉장고가 실제 주방 가구와 어우러지도록 배치돼 있다. LG전자는 제품을 단순 진열하는 대신 거실·주방·다용도실을 갖춘 실제 가정 형태로 매장을 구성했다./로테르담=정두용 기자

인구 약 67만명으로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인 로테르담. 지난 7일(현지시각) 찾은 이곳의 쇼핑 거리 비넨베흐플레인(Binnenwegplein) 한가운데에는 '미디어마크트 테크 빌리지 로테르담(MediaMarkt Tech Village Rotterdam)'이 자리 잡고 있다. 유럽에서 10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가전 유통 체인 미디어마크트자툰이 주요 도시 핵심 상권에서 운영하는 전략 거점인 '등대 매장(Lighthouse Store)'이다.

LG전자는 작년 11월 이곳에 마련한 매장을 기존 28㎡(약 8평)에서 73㎡(약 22평)로 넓히면서 전시 방식을 개편했다. 제품을 늘어놓는 방식을 벗어나 거실·주방·다용도실을 갖춘 실제 집처럼 바꾼 것이다. 리모델링 후 올해 상반기 이 매장의 LG전자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7일(현지시각) 네덜란드 로테르담 도심 비넨베흐플레인에 있는 '미디어마크트 테크 빌리지 로테르담' 외관. LG전자는 이곳에 실제 가정과 비슷한 환경에서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로테르담=정두용 기자

로테르담 미디어마크트에 들어서자 여러 브랜드가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한 전략을 저마다의 공간에 녹여낸 점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매장은 강렬한 조명으로 제품을 부각했고, 다른 곳은 대형 화면으로 자사 기술력을 강조했다. 삼성전자·보쉬·소니·필립스·TCL·하이센스·드리미 등 굵직한 가전 업체들이 네덜란드 시장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이곳에서 LG전자는 '경험'을 공간 전략으로 내세웠다. 집 안에서 LG전자 제품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편의성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LG전자 매장의 분위기는 번쩍번쩍한 다른 곳과 달리 차분해 되레 눈에 들어왔다. 밝은 나무색 가구와 은은한 조명 아래 원형 식탁을 놓고, 벽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와 수납장을 거실처럼 배치했다. 주방 아일랜드와 싱크대 뒤에는 냉장고가 가구 사이에 들어갔다.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가전 전시회의 일부 공간을 보는 듯했다. 이곳에 입점한 10여개 주요 브랜드 가운데 주방·거실·다용도실을 연결해 실제 가정 환경을 구현한 곳은 LG전자가 유일하다.

◇ "제품 쭉 나열하면 재미없어"… 사양 대신 '생활'을 보여준다

이은영 LG전자 베네룩스법인 B2C 마케팅팀장은 "제품이 쭉 나열돼 있으면 재미가 없다"며 "제품은 결국 집에 가서 쓰이는데 실제 사용 환경에서 어떻게 보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집처럼 공간을 꾸몄다"고 말했다. 베네룩스법인은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3개국 사업을 맡는다.

LG전자가 리모델링한 매장의 핵심은 개별 제품의 기능보다 여러 가전이 한 집에서 연결됐을 때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냉장고·세탁기·건조기·에어컨 등은 LG전자의 가전 플랫폼 'LG 씽큐(ThinQ)'와 네덜란드 스마트홈 플랫폼 '호미(Homey)'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가정용 배터리가 충분히 충전됐거나 전기요금이 사용자가 설정한 수준까지 내려가면 세탁기·건조기의 작동 시점을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다. 세탁이 끝나면 거실 조명이나 디스플레이로 알려준다. 창문을 열면 센서가 이를 감지해 에어컨을 끄고, 다시 닫으면 이전 운전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도 현장에서 시연했다. 냉장고와 에어컨이 전력 상황을 공유해 냉각 시점을 조절하는 방식도 보여줬다.

제이 로머스(Jay Rommers) LG전자 베네룩스법인 마케팅 매니저는 "온라인에서는 사양과 가격을 비교할 수 있지만 제품을 경험할 수는 없다"며 "이곳에서는 제품이 거실이나 일상의 흐름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주택에서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2~3층에 두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시연에 반영했다. 로머스 매니저는 "세탁이 끝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위층까지 올라갈 필요 없이 거실에서 알림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체험 방식은 판매 성과로도 이어졌다. LG전자는 실제 집처럼 가전을 배치한 뒤 여러 제품을 함께 구매하는 고객이 늘었고, AI홈 기능을 직접 보여주면서 소비자의 이해도도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 IFA서 내세운 '공간·에너지 효율'… 판매 현장에 적용

독일 베를린에서 지난 8일(현지시각) 막을 내린 유럽 최대 가전·IT 전시회 '국제가전박람회(IFA) 2026'에서 LG전자가 강조한 유럽 공략 방향도 이 매장에 반영됐다. LG전자는 냉장고에 적용해 온 '핏 앤 맥스(Fit & Max)'를 세탁기·건조기·식기세척기까지 확대해 좁은 유럽 주거 공간에 맞춘 제품을 선보였다. 고효율 가전과 AI홈을 활용한 에너지 관리도 주요 전시 주제였다.

로테르담 매장에는 빌트인 오븐·인덕션·식기세척기와 유럽 최고 에너지효율 등급인 A등급 냉장고, A등급 기준보다 40% 높은 효율의 세탁기 등이 생활 공간 안에 배치됐다.

지난 7일(현지시각) 네덜란드 로테르담 '미디어마크트 테크 빌리지' 내부에 다양한 브랜드의 가전제품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로테르담=정두용 기자

네덜란드는 인구 밀도가 높고 주거비도 비싸 상대적으로 작은 집이 많은 편이다. 디지털 기기 수용도 역시 높다. 유럽연합(EU) 통계청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2024년 네덜란드의 16~74세 가운데 인터넷 연결 기기를 사용한 비율은 94.8%로 EU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로테르담항을 기반으로 오래전부터 유럽의 물류·유통 관문 역할을 해온 점도 특징이다. 서·남·북유럽과 영국을 잇는 물류망을 갖춰 글로벌 기업들이 유럽 시장의 소비 반응을 살피는 거점으로 활용해 왔다. LG전자는 이런 시장 특성에 맞춰 공간 활용도를 높인 빌트인·고효율 가전과 여러 기기를 연결하는 AI홈을 한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매장을 구성했다.

에너지 관리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네덜란드는 2027년부터 태양광으로 생산해 전력망에 보낸 전기를 사용량과 상계하는 순계량 제도를 종료한다. 집에서 생산한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하거나 가전의 작동 시점을 조절해 직접 소비할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LG전자가 매장에서 가정용 배터리의 충전 상태와 전기요금에 따라 세탁기 작동 시간을 조절하고, 에어컨·냉장고 등 여러 가전의 전력 사용을 연동해 보여주는 배경이다. LG전자는 로테르담 매장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과 상권에 따라 고효율·빌트인·AI홈 등을 강조하는 '공간 솔루션' 특화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 비행기 안 OLED부터 문화재 호텔까지… 네덜란드 랜드마크에 '맞춤 해법'

LG전자는 네덜란드의 주요 랜드마크에서도 공간 특성에 맞는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지난 6일 찾은 네덜란드 헤이그의 미니어처 테마파크 마두로담(Madurodam)에는 LG전자의 곡면 OLED를 활용한 비행 체험 시설이 운영되고 있었다. 실제 더글라스 다코다 항공기를 개조한 공간을 체험하기 위해 어린이와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길게 줄을 섰다.

LG전자는 항공기 내부의 둥근 벽면을 따라 55형 곡면 OLED 14대를 설치했다. 화면이 좌우 시야를 감싸도록 배치해 좌석에 앉으면 여러 풍경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비행 영상을 볼 수 있다. 기체의 곡률에 맞춘 OLED와 조명·음향을 함께 활용해 평면 디스플레이를 보는 것보다 공간 전체가 콘텐츠로 이어지는 체험을 구현했다. LG전자는 2021년 이 설비를 구축했고 올해 일부 모델을 교체했다.

6일(현지시각) 네덜란드 헤이그 마두로담의 더글라스 다코다 항공기 내부에서 LG전자 곡면 OLED를 활용한 비행 콘텐츠가 재생되고 있다. 55형 곡면 OLED 14대를 기체의 곡률을 따라 배치해 관람객의 좌우 시야를 감싸도록 구성했다./헤이그=정두용 기자

1884년 지어진 암라쓰 쿠르하우스 그랜드 호텔에도 LG전자의 기술이 적용됐다. 건물 외관 훼손을 줄이기 위해 기존 배관을 활용할 수 있는 수랭식 시스템에어컨을 공급했다. 실외기 19대와 실내기 294대가 250여개 객실과 컨퍼런스룸·레스토랑 등의 냉난방을 담당한다.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에는 강한 자연광에서도 콘텐츠가 선명하게 보이도록 밝기 3500니트의 고휘도 LED 사이니지를 약 100㎡ 규모로 설치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유럽의 관문인 네덜란드는 다양한 제품과 솔루션의 시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장"이라며 "앞으로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주거·상업·문화 공간의 특성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며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