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 사업 개발을 주도하는 정석근(50) SK하이퍼 대표는 회사의 성패를 좌우할 최우선 과제를 묻자 주저 없이 '용량 확보'를 꼽았다. SK하이퍼가 목표로 하는 용량을 채웠다는 것은 여러 난제를 동시에 풀었다는 증표라는 이유에서다. 정 대표는 "용량 확보를 해냈다는 건 국내를 넘어 글로벌 고객을 데려왔고, 구축을 위한 기술적 난제를 풀었고, 글로벌 투자자와 공감대를 만들어 펀딩까지 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네이버 클로바 CIC(사내 독립 기업) 대표로 하이퍼클로바 개발을 이끌었고, 2023년 SK텔레콤에 합류해 회사의 AI 사업을 총괄했다. 지난 7월 SK하이퍼가 출범하며 초대 대표에 올랐다. SK하이퍼는 SK그룹의 AIDC 사업을 전담하는 법인으로, SK텔레콤의 100% 자회사다. SK하이퍼는 2029년 5기가와트(GW), 2035년 15GW 등 GW급 AIDC를 조성한다는 목표다.

정 대표는 SK하이퍼가 구축하는 AIDC의 용량을 채워줄 고객으로 미국 빅테크를 꼽았다. 정 대표는 "미국 내 인프라 난제와 아시아 내 AI 수요 급증이 맞물려, 빅테크의 글로벌 이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조선비즈가 주관한 국내 최대 테크 콘퍼런스 '스마트클라우드쇼 2026'에 기조 강연자로 참석한 정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석근 SK하이퍼 대표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개최된 국내 최대 테크 콘퍼런스 '스마트클라우드쇼 2026'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조선비즈

─SK하이퍼를 별도 법인으로 출범시킨 배경은.

"데이터센터 사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AIDC 시대로 진입하며 규모가 메가와트(MW)급에서 GW급으로 커져 그룹 전체 역량을 모으는 역할이 필요했다.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므로 파이낸싱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과 빅테크를 상대로 영업·협상하는 전문 조직이 필요하다고 봤다."

─취임 이후 가장 씨름한 과제를 꼽자면.

"전체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에 유례가 없는 규모인 데다, 전 세계적으로도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 엔비디아는 5000억달러(약 671조4000억원) 규모의 AI 인프라 자금 조달망 구축을 발표했는데, 오가는 돈이 수조원이 아니라 수백조원 단위다. 시장이 변하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기술만 바뀌는 게 아니라, 워낙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다 보니 파이낸싱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

─협의 중인 빅테크의 반응은.

"빅테크는 가까운 미국을 AIDC 입지로 가장 선호한다. 그렇지만 미국 내에서 여러 인프라 관련 난제가 있어, 글로벌로 나갈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또 아시아에서 AI 수요가 빠르게 늘어 아시아 내 거점을 마련하려는 수요가 생기고 있다. 다만 GW급을 한국에 유치하려면 아시아에서 우리가 첫손에 꼽히는 입지여야 한다. 요즘 가장 고민이 큰 부분이다."

─입지 경쟁에서 한국이 가진 강점과 약점은.

"과거 데이터센터는 수요가 있는 곳 가까이에 짓는 방식이라 각국에 골고루 세워졌다. 반면 지금은 용량이 커진 만큼 전력 안정성, 정부 지원, 지정학적 안정성 같은 요인이 훨씬 중요해졌다. 한국의 전력 인프라는 분명한 강점이고, AI 모델이 전략 자산화되는 시점에서 지정학적 안정성에 대한 신뢰도도 높다. 반면 부지가 좁아 건물을 높게 지어야 하고 전력 요금 부담도 있다. 정부가 검토 중인 AIDC 전용 요금제가 가시화되면 경쟁력이 한층 강해질 것이다."

─SK하이퍼만의 차별점은.

"빅테크는 파트너를 고를 때 'AI의 미래를 확신하고 투자할 의지가 있는가', '급변하는 세상을 얼마나 빨리 쫓아갈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을 필두로 그룹 차원에서 AI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며 그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또 우리는 한국에서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함께한 이력도 갖췄다."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의 미국 AI 투자 법인에 출자하고 이사회에도 참여한다. 이 또한 그룹 역량을 결집하려는 포석인가.

"미국에서 일어나는 혁신을 확보하기 위한 결정이다.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건축 사업이 아니라 기술 혁신이 활발히 일어나는 사업이다. AI 반도체가 진화하면 데이터센터를 짓고 운영하는 방식도 바뀐다. 그래서 데이터센터 기술과 관련 기업과의 교류는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양쪽에 중요하다. SK하이닉스 역시 자사 메모리가 데이터센터에서 잘 쓰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빅테크와 계약은 SK하이퍼가 직접 체결하나, 아니면 AIDC 운영사로 세워질 특수목적법인(SPC)이 하나.

"계속 고민 중이다. 파이낸싱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우리만의 판단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투자자와 고객사인 빅테크 등과 함께 고민하며 구조를 구체화해야 한다."

─15GW 구축 재원에서 SK그룹 내부 조달과 외부 조달의 비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석근 SK하이퍼 대표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개최된 국내 최대 테크 콘퍼런스 '스마트클라우드쇼 2026'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조선비즈

─미국에서는 하이퍼스케일러의 투자 규모가 역사적 수준이라 과도한 것 아니냐는 경계론도 있다.

"규모가 워낙 커 우려가 나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코딩 에이전트 하나가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을 통째로 바꿨다는 점을 보면, 지금은 AI 변화의 초입일 뿐이다. 똑같은 성능의 AI를 적은 인프라로 구현하는 건 쉽지 않고, 결국 규모 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빅테크를 만나 보면 주주와 시장의 압박에 대한 불안은 있어도 '투자를 멈출 수는 없다'는 공감대는 확고하다."

─SK하이퍼가 목표로 내건 규모 역시 만만치 않은데.

"전례 없는 규모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에 세워진 데이터센터가 1GW인데, SK하이퍼는 2029년까지 앞으로 3년 만에 5GW를 짓겠다는 것이다. 기술·영업·재무 모두에서 유례없는 도전이다. 정부도 지원하고 있지만, 여기에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 준다면 국내에 의미 있는 규모의 컴퓨팅 인프라를 만들 수 있다. 빅테크는 일단 거점을 만들면 그 주변으로 뻗어 나가고, 진입할 때부터 20~30년을 보고 움직인다. 지금이 관련 산업을 키울 절호의 시점이다."

─미래에 SK하이퍼의 성공을 어떤 지표로 평가받고 싶나.

"가장 중요한 건 용량이다. 용량 확보를 해냈다는 건 국내를 넘어 글로벌 고객을 데려왔고, 구축을 위한 기술적 난제를 풀었고, 글로벌 투자자와 공감대를 만들어 펀딩까지 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내건 'AI 3강' 목표에 기여하는 것 역시 중요한 성공 지표다. AIDC와 컴퓨팅 인프라가 국내에 대규모로 갖춰지고 빅테크도 많이 들어온다면, 결국 우리나라 제반 산업에 긍정적 효과를 크게 줄 것이라고 믿는다. 수많은 스타트업과 국민이 AI를 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네이버에서 AI 모델을 만들었고, SK그룹에서는 그 모델이 돌아가는 인프라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 AI 산업의 발전에는 모델과 인프라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모델은 지금도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결국 모델을 잘 돌리기 위해 인프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병목이 어디에 있느냐를 기준으로 보면, 지금은 인프라다. 성능이 아무리 뛰어난 모델이라도 인프라가 없으면 고객과 만날 수 없다.

만약 AI 사업에서 모델만 중요하다면, 우리는 글로벌 최고 모델과 경쟁해야만 판에 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고 모델을 만드는 곳들마저 발목 잡히는 지점이 인프라이고, 인프라 문제는 우리가 풀 수 있다. 인프라의 중요도가 올라가며 우리에게도 판을 좌우할 기회가 열렸다."

―SK텔레콤은 인프라와 함께 모델 개발도 이어가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을 그리고 있나.

"초거대 모델을 먼저 만들고 이후 경량화하는 방향이다. 최고 성능을 낸 뒤 경량화와 최적화로 넘어갈 계획이다. 중국 오픈소스 모델만 봐도 규모의 강점은 분명하다. 경량화가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더 중요하고 더 어려운 과제인 모델의 덩치를 키우는 일부터 푸는 게 맞다는 뜻이다."

─내년 초 3개 팀에서 2개 팀으로 좁혀지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경쟁에서 SK텔레콤이 내세울 차별점은.

"AI는 벤치마크 점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수능 잘 본다고 일까지 잘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리더보드 상위권이라는 걸 대외적으로 내세울 수 있지만, 정작 고객은 리더보드 점수를 보고 사지 않는다. 우리는 실제 쓸 수 있는 성능과 사용 편의성에 방점을 찍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