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Arm이 스마트폰에서 인공지능(AI)을 직접 구동하는 데 초점을 맞춘 차세대 모바일 컴퓨팅 플랫폼을 공개했다. AI가 이용자의 명령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여러 작업을 스스로 계획하고 수행하는 '에이전틱 AI'로 진화하면서, 스마트폰 자체의 AI 연산 성능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Arm은 지난 7일 차세대 모바일 플랫폼 'Arm CSS for Mobile 2'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CSS(Compute Subsystems)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스템 IP 등 칩 설계에 필요한 핵심 요소를 미리 묶어 제공하는 일종의 '반도체 설계 패키지'다. 스마트폰용 칩을 만드는 업체가 각각의 부품을 처음부터 조합하는 수고를 줄이고 신제품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Arm이 주목하는 변화는 AI 연산이 데이터센터에서 스마트폰으로 내려오는 흐름이다. 현재 생성형 AI는 복잡한 연산의 상당 부분을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서 처리한다. 그러나 AI 에이전트가 이용자를 대신해 정보를 검색하고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거나 다른 AI와 협업하기 시작하면 스마트폰 자체가 처리해야 하는 연산도 크게 늘어난다.
아미 바다니 Arm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에이전트는 도구를 호출하고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며 정보를 검색하고 다른 에이전트를 조율한다"며 "토큰 비용과 개인정보 보호, 지연시간 등을 고려하면 모든 상호작용을 클라우드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Arm은 대규모 AI 모델은 클라우드에서 처리하되 개인 정보나 즉각적인 반응이 필요한 작업은 스마트폰 등 이용자 가까이에 있는 기기에서 처리하는 형태로 AI가 분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Arm은 새로운 'C2-Ultra' CPU와 'Mali G2-Ultra NX' GPU를 선보였다. C2-Ultra는 여러 AI 프로그램이 동시에 움직이는 에이전틱 AI 환경을 겨냥했다. 이전 세대보다 싱글스레드 성능은 15%, 멀티스레드 성능은 12% 높아졌다. AI 연산을 빠르게 처리하는 SME2 기술을 적용한 2개 코어를 사용할 경우 최신 AI 모델 처리 성능은 최대 1.7배 개선됐다.
크리스 버기 Arm 엣지 AI 총괄 부사장은 "에이전트 시대에는 단순히 이용자가 '이것을 해달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에이전트가 백그라운드에서 서로 다른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게 된다"며 CPU의 처리 성능과 확장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Arm에 따르면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등록된 AI 애플리케이션의 약 95%가 CPU를 이용해 AI 연산을 처리하고 있다.
Arm은 이용자가 스마트폰 AI에 "기념일 저녁 식사를 계획하고 예약해줘"라고 지시하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AI가 이용자의 의도를 파악한 뒤 정보를 검색하고 판단해 지도와 예약 서비스 등을 잇달아 실행하는 작업이다. Arm은 이런 작업을 C2-Ultra에서 수행하면 이전 세대보다 약 15%, SME2까지 활용하면 약 24% 빨라진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게임을 겨냥한 GPU 변화도 크다. Mali G2-Ultra NX는 Arm의 첫 'AI 네이티브' Mali GPU다. 화면의 모든 픽셀을 높은 해상도로 직접 그리는 대신 일부를 낮은 해상도로 계산하고 AI가 세부 묘사를 보완하는 방식이다. PC 그래픽카드에서 활용되는 AI 업스케일링 기술을 전력과 발열 제약이 큰 스마트폰에 적용한 셈이다.
예컨대 540p로 그린 화면을 AI로 1080p 수준으로 확대하거나 초당 30장인 화면을 60장으로 늘릴 수 있다. 빛의 반사와 그림자를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레이 트레이싱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이즈도 AI가 제거한다. 이를 위해 GPU 내부에 AI 전용 연산장치인 '뉴럴 액셀러레이터(NX)'를 탑재했다.
Arm은 AI 그래픽 기능을 사용할 경우 이전 세대 대비 프레임 성능과 전력 효율이 각각 최대 4배 향상되고 D램으로 오가는 데이터는 70%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GPU의 모든 작업이 4배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AI를 사용하지 않는 일반 게임의 성능 향상 폭은 14%, 기존 방식의 그래픽 벤치마크에서는 24%다.
Arm은 모바일을 넘어 데이터센터와 로봇·자율주행차까지 AI 컴퓨팅 영역을 확대한다. 데이터센터용으로는 'Neoverse CSS N4'를 공개했다. 최대 128개의 CPU 코어를 하나의 다이에 구성할 수 있으며 기존 N3 대비 소켓당 성능은 2배, 전력당 성능은 1.25배, 메모리 대역폭은 1.75배 높였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 출하된 Neoverse 코어는 누적 15억개를 넘어섰고 이 가운데 5억개가 최근 9개월간 출하됐다.
로봇과 자율주행차처럼 AI가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직접 행동하는 '피지컬 AI'도 새로운 성장축으로 제시했다.
드루 헨리 Arm 피지컬 AI 총괄 부사장은 피지컬 AI의 핵심을 '지연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동차를 예로 들어 "카메라 센서가 무언가를 감지한 순간부터 실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중요하다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장애물을 발견한 뒤 얼마나 빨리 브레이크를 작동시키느냐와 같은 문제"라고 말했다. 로봇이나 드론에서는 컴퓨팅 장치의 무게도 중요하다. 헨리 부사장은 "피지컬 AI에서는 모든 1g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Arm은 피지컬 AI용 컴퓨팅 시장이 지난해 약 250억달러에서 2030년대 연간 2000억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헨리 부사장은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약 10배 성장하는 셈"이라며 "이 전망조차 시장을 과소평가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Arm은 이를 겨냥해 반도체와 센서, 클라우드, 로봇 등 8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하는 'Arm Total Design for Physical AI' 프로그램을 출범한다. 자동차 업계가 자율주행 수준을 레벨 1~5로 구분하는 것처럼 로봇의 성능과 기능을 공통 기준으로 구분하는 '로보틱스 역량 프레임워크'도 업계와 함께 마련할 계획이다.
Arm은 클라우드와 스마트폰, 로봇·자동차까지 동일한 Arm 기반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바다니 CMO는 "AI 연산이 필요한 모든 곳은 이미 Arm이 존재하는 곳"이라며 "AI는 클라우드에서 만들어지고 엣지에서 개인화되며 점차 물리적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Arm 기반 소프트웨어 생태계에는 2200만명 이상의 개발자가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