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인공지능(AI)을 악용한 위협 급증에 기업들은 AI 이전 시대에 구축한 약 1조달러(약 1380조원) 규모의 노후 사이버 보안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세계 최대 사이버 보안 기업 팔로알토 네트웍스의 니케시 아로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기업들이 AI 기반 자동화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더 강력한 보안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투자하면서 사이버 보안 산업 전체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기회가 커졌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AI 기반 해킹 위협의 확산으로 사이버 보안 수요가 늘면서 올해 2분기 주요 보안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됐다. 연초만 해도 AI가 보안 산업을 잠식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지난 4월 앤트로픽이 '미토스'를 선보인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해커들이 '미토스'처럼 취약점 탐지에 강점을 지닌 AI 모델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조성되면서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방어 체계 강화에 투자하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여기에 보안 특화 AI도 기존 보안 도구와 함께 사용해야 방어 효과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진 점도 사이버 보안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팔로알토 네트웍스, 포티넷, 크라우드스트라이크, 옥타, 클라우드플레어 등 세계적인 보안 기업들의 주가도 연초 대비 큰 폭으로 상승했다.

7일 보안업계에 따르면 대형 보안 기업들은 올 들어 보안 솔루션 판매 호조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힘입어 외형 성장을 이어갔다. 팔로알토는 올해 5~7월(2026 회계연도 4분기) 시장 전망을 웃도는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은 34억1000만달러(약 4조6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34% 증가했다. 코텍스(보안관제 플랫폼)와 네트워크·AI 보안, 이디라(신원보안 플랫폼) 등 주요 제품군의 견조한 성장세와 사이버아크·크로노스피어 M&A가 매출을 견인했다.

다만 대규모 인수 비용의 여파로 일반회계기준(GAAP)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65% 감소한 1억72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팔로알토 측은 주요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 아니라 M&A 관련 비용이 늘면서 회계상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수 관련 비용을 제외한 비GAAP 영업이익은 32% 증가한 10억1100만달러를 기록했다.

포티넷은 4~6월(2026년 2분기) 매출이 20억4790만달러, 영업이익 6억8930만달러로 각각 26%, 51% 성장했다. 고성능 방화벽을 포함한 주력 제품의 판매가 증가한 가운데 비용 효율화 여파로 수익성도 개선된 것으로 분석된다. 신원보안 기업 옥타 역시 매출이 8억500만달러로 11%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억700만달러로 161% 뛰었다. 기업들의 AI 에이전트 사용이 늘면서 특정 AI가 어떤 정보까지 열람할 권한이 있는지 관리하는 일이 중요해지면서 옥타의 신원 보안 제품을 찾는 기업이 늘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보안 기업 지스케일러도 5~7월(2026 회계연도 4분기) 매출이 8억9820만달러로 25% 늘면서 월가 전망을 상회했다. AI와 제로 트러스트 보안 솔루션 수요가 증가한 영향이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5~7월(2027회계연도 2분기) 매출은 26% 증가한 14억7000만달러로 집계됐다. 매출과 주당순이익 모두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 엔드포인트 보안 솔루션 '팔콘' 등의 기업 도입이 늘어난 점이 성장 동력으로 작용했다.

조지 커츠 크라우드스트라이크 CEO는 "AI의 발전으로 위협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기존 기술만으로는 사이버 보안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기업들이 인식하고 있다"면서 기업의 보안 지출 확대가 실적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보안 기업들은 취약점 탐지 역량이 뛰어난 강력한 AI가 기존 보안 솔루션을 대체하기보다 보안 수요를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고성능 AI는 공격자와 방어자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 AI 취약점 탐지 도구를 도입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격 표면 관리, 웹애플리케이션 방화벽, 엔드포인트 탐지·대응, 신원 보안, 보안관제 등 여러 방어 계층을 동시에 운영해야 갈수록 고도화되는 사이버 공격에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AI발(發) 보안 수요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전망에 주요 기업들의 주가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포티넷은 올 들어 이달 4일(현지시각)까지 주가가 96.8% 상승했다. 옥타는 같은 기간 97.3%,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81%, 팔로알토 네트웍스는 80.9%, 클라우드플레어는 41.5% 올랐다. 반면 지스케일러는 향후 성장 둔화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올 들어 주가가 25% 가까이 하락했다.

아로라 CEO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9개월 전만 해도 사이버 보안 업계는 AI에 사업을 전부 빼앗아 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사망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며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AI와 함께 만찬을 즐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