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열린 '로봇 온 더 런웨이'에서 중국 엔진AI의 휴머노이드 'T800'이 격한 전신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오!"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26'. 메세 베를린 내 팔레 암 풍크투름(Palais am Funkturm)의 크리에이터 스테이지에서 바퀴가 달린 사족보행 로봇 한 대가 재주를 선보인 뒤 뒤로 물러서다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대로 런웨이 끝을 벗어나 무대 아래로 떨어지자 관람객 사이에서 탄식이 터졌다. 하지만 곧 "힘내" "할 수 있다"는 응원이 이어졌다. 어린아이의 장기자랑에서 실수가 나왔을 때처럼 관람객들은 실패에 집중하기보다 로봇의 다음 동작을 기다리며 박수를 보냈다.

이날 열린 '로봇 온 더 런웨이(Robots on the Runway)'는 행사 시작 10여분 전부터 무대 주변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현장 요원이 추가 입장을 제한했고, 1층 무대 주변뿐 아니라 2층 난간에도 로봇을 내려다보려는 관람객이 빼곡히 섰다. 로봇이 격한 춤을 추거나 태극권 동작을 하고 다리를 좌우로 벌리는 동작을 선보일 때마다 환호가 터졌다. 멋진 동작이 나올 때마다 스마트폰 수십 대가 동시에 무대를 향했다.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열린 '로봇 온 더 런웨이'에서 중국 애지봇의 휴머노이드 'X2 울트라'가 관람객 앞에서 '다리찟기'를 시연하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런웨이를 지켜본 20대 독일인 관람객은 "섬뜩할 정도로 놀라운 기술력을 한눈에 봤다"며 "로봇으로 내 일상이 바뀌는 시점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IFA가 올해 로봇을 전면에 배치한 것도 이런 기술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미래 기술 전시 공간인 'IFA 넥스트(IFA Next)'에는 약 300개 업체가 참가했다. IFA 측은 올해 행사에 역대 가장 많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왔다고 밝혔다. 단순히 부스에 로봇을 세워두는 데 그치지 않고 런웨이와 자율 로봇 축구 '로보컵(RoboCup)' 등을 마련해 관람객이 센서·동작제어·인간과의 상호작용을 직접 보도록 전시 방식도 바꿨다.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열린 '로봇 온 더 런웨이'에서 중국 엔진AI의 휴머노이드 'T800'이 무대를 걷고 있다. 무대 주변과 2층 난간까지 관람객들이 모여 로봇을 촬영하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 춤·태극권·다리찢기에 환호… 실수에도 "힘내"

런웨이에는 중국 엔진AI·애지봇·유니트리·도봇·딥로보틱스·아이모가를 비롯해 프라임봇·코지오로보틱스·올로봇·아스트랄다이내믹스·마인드위드하트 등 11개 업체가 참여했다. 휴머노이드부터 사족보행·바퀴형 로봇, 동물을 본뜬 컴패니언 로봇까지 형태도 제각각이었다.

한 업체가 대표 제품을 런웨이에 올려 가장 자신 있는 동작을 보여준 뒤 무대 뒤로 빠지고 다음 로봇이 등장하는 식으로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IFA 측은 휴머노이드들이 이날 행사에서 춤·태극권·뒤로 공중제비·다리찢기 등을 성공적으로 선보였다고 했다.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열린 '로봇 온 더 런웨이'에서 중국 애지봇의 'X2 울트라'가 팔을 벌려 동작을 시연하고 있다. 뒤에서는 중국 엔진AI의 휴머노이드 'T800'이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사람 키에 가까운 중국 엔진AI의 'T800'이 무대 위에서 상체를 크게 틀고 팔다리를 움직일 때는 관객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T800은 키 173㎝의 범용 휴머노이드다. 손을 제외한 전신에 최대 29개의 자유도를 적용하고 다리 관절을 능동 냉각해 장시간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중국 애지봇은 이보다 작은 키 1.31m, 무게 약 39㎏의 'X2 울트라'를 올렸다. X2 울트라는 30개의 자유도와 3차원(3D) 라이다·RGB-D 카메라 등을 갖추고 보행과 몸짓,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보여줬다.

강한 움직임만 경쟁한 것은 아니다. 중국 도봇은 판다를 본뜬 '판다보(PandaBo)'를 네 발로 움직이며 관람객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크기와 외형이 다른 여러 컴패니언 로봇도 한꺼번에 런웨이에 올랐다. 휴머노이드의 사람 같은 움직임과 동물을 닮은 로봇의 친근함을 한 무대에 배치한 것이다. 행사 뒤에는 관람객이 로봇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만남 행사도 이어졌다.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의 '로봇 온 더 런웨이'에서 반려·컴패니언 로봇들이 한꺼번에 무대에 올라 움직임과 상호작용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실시간 행사인 만큼 동작이 모두 계획대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족보행 로봇이 무대 아래로 떨어졌고, 어린아이 정도 크기의 휴머노이드가 중심을 잃자 사회자가 손으로 몸을 받쳐 다시 자세를 잡도록 돕는 장면도 나왔다. 그러나 관람객들은 실수에 야유하기보다 응원을 보냈다. 로봇이 다시 자세를 잡으면 환호하기도 했다.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열린 '로봇 온 더 런웨이'에서 중국 애지봇의 소형 휴머노이드 'X2 울트라'가 무대 이동 중 중심을 잃자 사회자가 잡아주는 모습./베를린=정두용 기자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열린 '로봇 온 더 런웨이'에서 바퀴가 달린 사족보행 로봇이 동작 시연을 마치고 뒤로 이동하다 무대 끝을 벗어나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한국 중소 제조업체 직원 이모(43)씨는 "실시간으로 진행된 행사인데도 로봇들이 큰 실수 없이 기술력을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사람 형태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로봇도 많아 피지컬 AI가 접목될 분야가 매우 넓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의 크리에이터 스테이지에서 열린 '로봇 온 더 런웨이'에서 중국 도봇의 판다형 로봇 '판다보(PandaBo)'가 네 발로 이동하며 동작을 시연하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열린 '로봇 온 더 런웨이'에서 참가 업체들의 휴머노이드·사족보행·컴패니언 로봇들이 한 무대에 모여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 로봇으로 가득찬 전시장

로봇 전시도 화려했다. 메세 베를린 25홀에서는 로봇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쟁이 벌어졌다. 휴머노이드가 춤을 추는 부스 옆에서 다른 로봇은 물류 작업을 가정해 물건을 다루고, 경사면과 모래밭을 오가거나 악기를 연주했다. IFA가 내세운 '피지컬 AI'가 단순히 두 발로 걷는 사람 모양의 기계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 25홀 'IFA 넥스트'에서 중국 푸두로보틱스의 바퀴형 사족보행 로봇 'PUDU D5-W'가 경사로와 모래가 마련된 장애물 코스를 이동하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중국 푸두로보틱스는 바퀴형 세미 휴머노이드 'PUDU D7'을 유럽에서 선보였다. D7은 키 175㎝, 무게 140㎏으로, 두 팔과 360도 전방향 이동 차체를 결합했다. 한 팔로 최대 20㎏을 다룰 수 있고 작동시간은 4시간 이상, 연산 성능은 276TOPS다. 두 다리로 사람처럼 걷는 대신 평평한 공장·물류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이동하면서 높은 선반의 물건을 꺼내거나 옮기고 조립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춘 구조다.

같은 부스에서는 중국 푸두로보틱스의 바퀴형 사족보행 로봇 'PUDU D5-W'가 경사로를 오르고 모래가 깔린 구간을 통과했다. 3D 라이다와 카메라로 주변을 인식해 사람이 이동하기 까다로운 시설을 점검·순찰하는 용도를 겨냥한 제품이다. 중국 딥로보틱스 역시 바퀴형 사족보행 로봇 '링스 M20S(Lynx M20S)'를 전시하며 전력 설비 점검과 재난 구조·보안 순찰 등 산업 현장을 적용처로 제시했다.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 25홀 'IFA 넥스트'에서 중국 터미테크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두 손으로 야마하 전자키보드를 연주하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로봇의 손을 보여주는 시연도 있었다. 중국 터미테크(TermiTech) 부스에서는 휴머노이드가 두 손을 움직여 야마하 전자키보드를 연주했다. 터미테크는 로봇의 판단·제어를 담당하는 '터미브레인(TermiBrain)'과 로봇 손 등을 개발하고 있으며 제조·순찰·점검 등을 적용 분야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 유니트리 부스에서는 휴머노이드 'G1' 세 대가 같은 동작을 맞춰 군무를 이어갔다. 중국 프라임봇은 키 88㎝의 개인용 휴머노이드 'Q1'과 사람형·사족 형태를 오갈 수 있는 'T1'을 내놓고 교육·촬영·동반 로봇 시장을 겨냥했다.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 25홀 'IFA 넥스트'의 중국 유니트리 전시관에서 휴머노이드 'G1' 세 대가 동시에 같은 동작을 수행하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은 2만2000대를 넘어 전년 동기보다 약 300% 늘었다. 중국 애지봇이 약 9700대로 43% 이상, 중국 유니트리가 7000대 이상으로 31%를 차지했다. 두 회사만으로 세계 출하량의 약 4분의 3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세계 휴머노이드 출하량은 5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 25홀 'IFA 넥스트'에서 소형 로봇들이 관람객과 상호작용하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출하된 휴머노이드 가운데 공연·엔터테인먼트와 데이터 생산·연구용이 여전히 60%를 넘는다. 제조용은 13%, 창고·물류는 5%다. 현재 시장에서는 런웨이에서 본 춤과 동작 자체도 실제 수요가 있는 상품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물류 비중이 커지면서 경쟁의 기준은 '얼마나 사람처럼 움직이느냐'에서 '그 움직임으로 얼마나 정확하고 반복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며 "다음 경쟁은 공중제비를 얼마나 멋지게 도느냐보다, 전시장에서 보여준 '일'을 구조와 상황이 계속 바뀌는 공장·매장·집에서도 얼마나 정확하게 반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26' 샤오미 전시관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사이버원(CyberOne)'이 관람객과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다. 샤오미는 사이버원을 전기차 공장의 제조 작업에도 시험하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