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시각) 유럽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26'이 열린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 13홀. 붉은빛을 내는 발광다이오드(LED) 마스크와 헤어드라이어, 체성분 측정기가 관람객을 맞았다. 파란색으로 꾸민 'IFA 뷰티 허브' 한쪽에서는 스타일리스트가 관람객의 머리를 직접 손질했고, 맞은편에는 얼굴 전체를 덮는 LED 마스크와 각종 개인관리 기기가 늘어서 있었다.
가전·기술 기업들은 기존 사업에서 쌓은 모터와 공기 흐름 제어, 센서, 카메라, 인공지능(AI) 기술을 머리·피부·치아를 관리하는 제품에 접목해 이번 IFA 전면에 내세웠다. 청소기에서 먼지를 빨아들이던 고속 모터는 머리를 말리는 데 쓰이고, 가전의 작동 환경을 파악하던 카메라와 센서는 치아 사이를 찾아내는 기술로 옮겨갔다. 주방과 거실을 중심으로 벌어지던 가전 기술 경쟁의 무대가 뷰티·퍼스널케어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로봇청소기로 이름을 알린 중국 스마트가전 업체 드리미(Dreame)는 청소·스마트홈 제품을 선보이는 대형 부스를 별도로 운영하면서 뷰티 허브에도 헤어드라이어와 스타일링 기기, LED 얼굴 마스크 '크로나 울트라(Chrona Ultra)'를 내놨다. 드리미는 고속 디지털 모터와 알고리즘, 모션 제어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한 업체다. 청소가전에서 확보한 기술을 토대로 제품군을 헤어·피부관리까지 넓히는 전략을 이번 IFA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IFA 공식 자료에서도 드리미의 뷰티 허브 참가와 헤어케어 제품·크로나 울트라 전시가 확인된다.
로봇청소기·무선청소기를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해 온 중국 가전 업체 모바(MOVA)도 제품 생태계를 퍼스널케어와 주방·정원으로 넓혔다. '샤인 10' 헤어드라이어에는 분당 11만회 회전하는 브러시리스 모터와 초당 1000회 온도를 감지하는 센서를 적용했다. 청소가전에서 성능을 좌우하던 고속 모터와 정밀 제어 기술이 머리를 관리하는 기기에서도 경쟁력이 된 셈이다.
IFA를 주최하는 IFA 매니지먼트는 이런 시장 변화를 전시 구성에 반영했다. 작년 처음 등장한 뷰티 허브는 피트니스·디지털헬스 전시 영역 안의 체험 공간 중 하나였다. 올해는 별도 대형 공간으로 옮겨 전시 면적을 크게 늘리고 '뷰티 랩(Beauty Lab)' 형태의 체험 공간으로 확대했다.
◇ 생활가전 기술을 머리로… LG 첫 헤어드라이어
LG전자도 이번 IFA에서 첫 헤어드라이어 'LG 에어듀(AirDew)'를 선보였다.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에서 다뤄온 모터와 센서, 공기 흐름 제어, 기기 연결 기술을 개인용 헤어케어 제품에 적용한 것이다. LG전자는 에어듀를 빠른 건조와 열로 인한 모발 손상 억제를 동시에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 개발된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에어듀에는 LG전자가 자체 개발한 공기역학 기술 '트리플 에어플루이딕스(Triple Airfluidics)'가 적용됐다. 이를 통해 분당 최대 5.8g의 수분을 제거한다. 센서가 제품과 모발 사이의 거리를 감지해 모발 온도를 약 55도로 유지하도록 조절할 수도 있다. 높은 열에만 의존하지 않고 풍량·풍속·풍압과 온도를 함께 제어해 건조 속도를 확보하면서 모발 손상을 줄이는 구조다.
무게는 365g이다. 패스트 드라이·컬 스타일러·볼류마이저·스무스 등 4종의 자석식 노즐을 제공한다. LG 씽큐와 연결하면 이용 이력을 관리하고 반려동물의 털을 말릴 때 쓰는 전용 모드도 내려받을 수 있다. 사용하다 제품을 내려놓으면 대기 상태로 전환되고, 5분간 다시 사용하지 않으면 전원이 꺼진다. LG전자는 가격과 구체적인 판매 시점·국가를 조율하고 있다.
◇ 청소기 기술 머리 거쳐 입안으로… 다이슨은 칫솔까지
영국 기업 다이슨은 진공청소기에서 축적한 고속 디지털 모터와 유체역학 기술을 선풍기·공기청정기에 이어 헤어드라이어와 스타일러로 순차 확장하면서 성과를 낸 기업이다. 이번에는 영역을 '머리'에서 '입안'까지 넓혔다.
다이슨은 지난 3일 베를린에서 '다이슨 언베일드(Dyson Unveiled)'를 열고 신제품 10종을 공개했다. 로봇청소기와 공기청정기뿐 아니라 첫 구강관리 제품과 새로운 헤어 스타일링 기기를 선보였다.
전동칫솔과 구강세정기를 합친 '다이슨 카메라젯(Dyson CameraJet)'은 10만 화소 카메라가 초당 28장의 이미지를 분석해 치아 사이 틈을 감지·추적한 뒤 필요한 위치에 세정액을 분사한다. 청소기와 공기관리 제품에서 다듬어온 센싱과 유체 제어 기술에 카메라·AI를 더해 구강관리라는 새로운 제품군을 만든 것이다.
기존 헤어케어 사업도 세분화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함께 선보인 '에어스무스(Airsmooth)'는 다이슨의 첫 스타일링 브러시다. 젖은 모발을 말리면서 펴고 형태를 잡을 수 있도록 공기 흐름과 두 종류의 브러시모, 정밀 열 제어 기술을 결합했다. 초당 100회 이상 바람의 온도를 측정해 과도한 열 노출을 줄인다.
제이크 다이슨 다이슨 수석 엔지니어는 "다이슨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제품이 기계적으로 최고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도록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며 "이제 하드웨어를 넘어 스스로 보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지능형 가전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강관리, 모발, 집 안 곳곳에서 작동하는 제품 모두에 AI, 비전 시스템, 머신러닝을 활용해 제품이 스스로 작동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시대를 열 것"이라고 했다.
시장조사업체 포천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헤어스타일링 기기 시장은 작년 144억4000만달러(약 19조4500억원)에서 올해 151억7000만달러(약 20조4300억원)로 성장하고, 2034년에는 225억7000만달러(약 30조4000억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유럽은 작년 이 분야의 40.88%를 차지한 최대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