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린트너(Leif Lindner) IFA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IFA 매니지먼트

"제품 상자에 단순히 '인공지능(AI)'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비자가 더 많은 돈을 지불하지는 않습니다. 몇 년 전에는 '이 제품에 AI가 들어 있는가'가 질문이었다면, 지금은 'AI가 실제로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는가'가 중요합니다."

라이프 린트너(Leif Lindner) IFA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는 유럽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26' 개막을 이틀 앞둔 2일 조선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AI가 가전·PC·스마트홈·로봇 등에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기술의 존재 자체가 제품을 선택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린트너 CEO는 삼성전자·LG전자를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기업으로 평가하면서도 "기술적 리더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중국 업체들이 제품 완성도를 높이며 빠른 속도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만큼, 한국 기업도 소비자에게 '왜 이 제품을 써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 가전 넘어 AI·로봇… "미래 기술, 이미 일상 가까이"

IFA 매니지먼트가 주최하는 IFA 2026은 4일 독일 메세 베를린에서 개막해 8일(현지시각)까지 열린다. 1900개 이상의 글로벌 브랜드가 참가한다. IFA는 올해 슬로건을 '미래는 지금'(The Future Is Now)으로 정하고 TV·생활가전 중심에서 AI·휴머노이드 로봇·모빌리티·디지털 헬스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작년에는 49개국 1900개 이상의 업체가 참가했고 약 22만명이 방문했다.

린트너 CEO는 올해 행사 주제를 '미래는 지금'이라고 잡은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미래의 개념으로 이야기했던 많은 기술이 일상에 훨씬 가까워졌다. AI는 PC·가전·스마트홈·웨어러블·모빌리티·엔터테인먼트 전반으로 확산됐고, 로봇도 인상적인 시연을 넘어 실제 활용을 위한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다."

IFA가 휴머노이드 로봇과 '피지컬 AI'를 전면에 세운 것도 이런 변화 때문이다. 미래 기술·스타트업 전시인 'IFA 넥스트'에는 약 300개 기업·기관이 참가하고 역대 가장 많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모습을 드러낸다. 린트너 CEO는 "로봇을 한 해만을 위한 화려한 주제로 만들려고 배치한 것이 아니다"며 "가정·서비스·헬스케어·산업에서 실제 활용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행사의 가장 큰 주안점으로는 외연 확대를 꼽았다. 그는 "IFA를 전통적인 제품 전시회에서 더 폭넓은 국제 기술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며 "소비자 기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IFA가 계속 의미 있는 행사로 남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일반 관람객에게는 기술이 퍼스널 케어·건강·웰빙을 어떻게 바꾸는지 체험할 수 있는 '뷰티 허브'를, 산업 관계자에게는 AI와 옴니채널 상거래 등 유통 변화를 다루는 '리테일 이노베이션 존'을 둘러보길 추천했다. 린트너 CEO는 "서로 매우 다른 경험이지만 소비자의 요구가 어떻게 변하는지, 그 변화가 사업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함께 보여준다"고 했다.

◇ 中 부상에 빨라진 경쟁… "韓, 기술 리더십만으론 부족"

올해 IFA에서 중국으로 등록한 기업·기관은 900곳을 웃돌았다. 작년 690곳 이상에서 1년 새 200곳 넘게 늘었다. 린트너 CEO는 "중국 기업의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며 "막대한 제조 규모와 강한 혁신 역량, 갈수록 정교해지는 제품,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중국 기업의 부상은 기존 글로벌 브랜드에도 더 빠른 시장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는 게 린트너 CEO의 진단이다. 그는 "혁신 주기가 짧아지고 새로운 경쟁자들은 정교한 제품을 빠르게 내놓고 있다"며 "기술적 리더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전자·LG전자의 강점으로는 브랜드와 엔지니어링 역량, 글로벌 유통망, 유럽 시장 경험을 꼽았다. AI 홈과 로봇에서도 한국이 강한 기반을 갖췄다면서도 "이것이 나에게 왜 유용한가, 왜 더 나은가, 왜 이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중국이 글로벌 기술 산업의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평가에는 거리를 뒀다. 그는 중국 기업의 혁신과 속도가 경쟁 환경을 바꾸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세계 기술 산업의 무게중심이 하나의 국가로 결정적으로 이동한다고 표현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히트펌프, 설치망·서비스까지 갖춰야"… 유럽 공략은 현지화부터

1924년 시작돼 올해 65회째를 맞은 IFA는 가전·IT 기업이 유럽의 유통업체와 바이어를 만나는 대표적인 시장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린트너 CEO는 "유럽은 매력적이지만 쉬운 시장은 아니다"라며 "좋은 제품은 출발점이지 완전한 전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지 유통망과 애프터서비스(AS), 규제 전문성, 유통업체와의 관계, 소비자의 생활·구매 방식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유럽에서 사업을 확대하는 히트펌프·냉난방공조(HVAC)에 대해 "제품을 보내 매장 선반에서 판매하면 되는 상품이 아니다"라며 "설치 네트워크와 에너지 기준, 서비스 인프라, 장기간에 걸친 고객의 신뢰가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시아에서 성공한 제품을 별도 현지화 없이 유럽에 그대로 가져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실수"라며 "시장에 투자하고 현지 관계를 구축하며 규제와 소비자의 기대를 이해하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더 강한 기반을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 삼성은 도심으로… "대형 부스만이 유일한 방식 아냐"

올해는 주요 기업의 IFA 참가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기업간거래(B2B)·미디어 행사의 중심을 메세 베를린에서 도심 훔볼트 카레로 옮겼다. 대신 메세 베를린에서는 IFA 크리에이터 허브의 메인 스폰서로 참여한다.

린트너 CEO는 "대규모 전시는 여전히 매우 큰 가치가 있지만 더 이상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며 "삼성전자는 여러 참가 형식이 공존할 수 있다는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는 크리에이터 허브의 메인 스폰서로 IFA 2026에 긴밀히 참여하고 있고, 훔볼트 카레에서 여는 B2B·미디어 행사도 IFA 공식 프로그램의 일부"라며 "IFA는 다양한 참가 방식을 수용하고 베를린 도심으로 선택적으로 영역을 넓히면서도 메세 베를린을 행사의 중심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일 메세 베를린 IFA 2026 전시장 배치도. 삼성전자가 메인 후원사를 맡은 'IFA 크리에이터 허브'는 팔레 암 풍크투름에 마련된다./ IFA 매니지먼트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 스페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와 함께 세계 3대 테크 전시회로 꼽히는 IFA는 산업 관계자와 일반 소비자가 한 공간에 참여한다는 점을 차별점으로 내세운다. 린트너 CEO는 "IFA는 B2B와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를 결합하고 가전·소비자가전·미래 기술을 한곳에 모은다"며 "제조사가 국제 유통업체와 언론을 만나는 동시에 실제 제품을 사용할 소비자의 반응까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