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IFA 2026 LG전자 전시장 입구에서 홈로봇 'LG 클로이드'가 양팔을 움직이며 'LG AI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LG전자는 클로이드를 중심으로 생활가전과 TV·공조제품 등이 하나로 연결되는 AI홈의 미래를 표현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의 LG전자 전시장 입구. 가로 16m, 세로 4m 크기의 거대한 화면에 붉은빛 공연장이 펼쳐졌다. '공연이 곧 시작됩니다'라는 문구가 사라지자 대형 디스플레이가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위로 움직였다. 무대의 막이 걷히듯 화면이 열리자 검은 턱시도와 나비넥타이를 갖춰 입은 휴머노이드 'LG 클로이드(LG CLOiD)'가 모습을 드러냈다.

클로이드는 양팔을 움직이며 지휘자가 됐다. 주변에는 냉장고와 세탁기뿐 아니라 TV·노트북·에어컨 등 LG전자 제품들이 오케스트라 연주자처럼 자리 잡았다. 통상 대형 가전 전시회에서 부스 입구는 가장 눈에 띄는 초대형 TV나 디스플레이를 배치해 관람객을 끌어들이고 기업의 기술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올해 LG전자 전시장의 '얼굴'은 달랐다. 가장 큰 화면은 로봇의 등장을 위한 무대가 됐고, 그 앞자리를 휴머노이드가 차지했다.

이날 독일 베를린에서는 유럽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26'이 개막했다. LG전자는 3745㎡(약 1133평) 규모 전시 공간을 '당신에게 맞춘 혁신(Innovation in tune with you)'이라는 주제로 꾸미고 약 150개의 핵심 제품을 선보였다.

LG전자는 입구 공간을 'LG AI 오케스트라'라고 이름 붙였다. 클로이드가 생활가전과 TV, 공조제품을 지휘하면 각 제품의 특징이 화면과 조명, 음악으로 이어진다. 집 안에 흩어진 기기와 서비스를 AI가 조율해 가사 노동을 줄이는 '제로 레이버 홈(Zero Labor Home)'의 미래를 압축한 것이다.

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IFA 2026 LG전자 전시장 입구의 가로 16m·세로 4m 키네틱 LED가 위로 움직이며 홈로봇 'LG 클로이드'를 드러내고 있다. LG전자는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가장 먼저 보는 공간에 클로이드를 배치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 휴머노이드로 그린 미래… 안쪽엔 '곧 쓸 AI홈'

클로이드가 LG전자가 궁극적으로 그리고 있는 집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전시장 안쪽에는 훨씬 가까운 미래가 구현돼 있었다. 거실과 주방, 욕실, 침실을 실제 집처럼 꾸미고 AI홈 허브 '씽큐 온(ThinQ ON)'과 실행형 AI 에이전트 '씽큐 클로(ThinQ Claw)'가 공간별 가전을 움직이는 과정을 보여줬다.

전시장에 놓인 씽큐 온은 손바닥보다 조금 큰 원형 기기다. 외형은 스피커와 비슷하지만 집 안의 가전과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연결하는 허브다. 여기에 씽큐 클로가 들어가면서 기존 음성 제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를 이용해 외부에서도 가전을 제어할 수 있고, 웹 검색이나 캘린더 등 다른 서비스의 정보까지 활용한다.

가령 외출한 이용자가 "나 이제 들어가"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현재 위치와 귀가 시간을 계산한다. 평소 에어컨을 26도로 맞춰 썼다는 사실까지 기억한 뒤 "50분 뒤 집에 도착할 때 쾌적하도록 에어컨을 26도로 켜고 공기청정기를 미리 가동할까요"라고 먼저 묻는다. 사용자가 승인하면 실제 기기를 작동한다. 며칠간의 여행 일정이 캘린더에 잡히면 집을 비우는 동안 TV와 조명을 끄고 빈집 보호 모드를 가동할지도 제안한다. LG전자는 이르면 이달 국내에서 씽큐 클로 베타테스트를 시작해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LG전자가 독일 베를린에서 4일(현지시각) 개막한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26'에 마련한 AI홈 전시 공간. 모델들이 AI홈 플랫폼 '씽큐'와 AI홈 허브 '씽큐 온', 실행형 AI 에이전트 '씽큐 클로' 등을 활용한 AI홈 솔루션을 살펴보고 있다./LG전자

AI홈의 범위를 LG전자 제품 밖으로 넓히는 역할은 2024년 인수한 네덜란드 스마트홈 플랫폼 기업 앳홈(Athom)이 맡았다. 앳홈의 '호미(Homey)'는 가전과 조명, 센서 등 IoT 기기 5만개 이상을 연결·제어할 수 있다. LG전자는 이번 전시에서 호미를 AI가전과 냉난방공조(HVAC), 태양광 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까지 묶는 홈 에너지 관리 시스템(HEMS)으로 활용했다. 집 안의 전기가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느 기기에서 소비되는지를 한 화면에서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를 기업간거래(B2B) 영역으로 확대한 것이 '씽큐 프로(ThinQ Pro)'다. 건물 관리자는 개별 가구를 찾아가지 않고도 가전의 작동 상태와 에너지 흐름, 고장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LG전자는 올해 전체 부스 면적의 46%를 거래선 상담 공간으로 마련했다. AI홈을 소비자용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건설사·빌딩·오피스 관리 사업으로 연결하려는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IFA 2026 LG전자 전시장에 놓인 AI홈 허브 '씽큐 온(ThinQ ON)'. LG전자는 씽큐 온에 실행형 AI 에이전트 '씽큐 클로'를 적용해 이용자의 생활 패턴과 상황을 이해하고 필요한 기능을 제안·실행하도록 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 헤어드라이어까지 만든 LG… 새 제품군도 눈길

전시장 안쪽에서는 기존 LG전자 제품군에서 보기 어려웠던 신제품도 눈에 들어왔다. 가장 인상적인 제품은 이번 IFA에서 처음 선보인 헤어드라이어였다.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대형 가전부터 TV까지 다뤄온 LG전자가 새 카테고리로 영역을 넓힌 제품이다. 출시 국가와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헤어드라이어는 센서가 제품과 모발 사이 거리를 감지하고 풍량과 풍속, 풍압을 조정한다. 모발 온도를 약 55도로 유지해 열에 따른 손상을 줄이면서 빠르게 말리는 방식이다. 제품을 내려놓으면 자동으로 대기 상태로 바뀌고 5분간 사용하지 않으면 전원을 끈다. 씽큐와 연결하면 이용 기록을 관리하거나 반려동물용 모드를 내려받아 사용할 수도 있다.

주방에서는 스팀에어오븐을 처음 공개했다. 전자레인지 기능을 빼는 대신 에어프라이와 찜 기능을 강화하고 기존 광파오븐보다 폭을 약 20% 줄였다. 별도의 설치 공사 없이 식탁이나 싱크대 위에 놓고 플러그를 꽂아 사용하는 1구형 포터블 인덕션도 전시했다. 좁은 공간과 에너지 사용에 민감한 유럽 주거 환경을 의식한 제품들이다.

LG 시그니처 공간에서는 내부 AI 카메라가 식재료를 인식해 적합한 조리 방식과 시간을 추천하는 30인치 월오븐도 시연했다. 조리하지 않을 때 후드가 상판 아래로 내려가는 후드 일체형 인덕션 등과 함께 배치해 제품 하나가 아니라 주방 전체를 하나의 솔루션처럼 꾸몄다.

LG전자가 독일 베를린 IFA 2026 전시장에 마련한 'LG 시그니처' 공간에서 모델들이 후드 일체형 인덕션을 살펴보고 있다. 조리하지 않을 때는 후드가 상판 아래로 내려가 주방 공간을 깔끔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LG전자

◇ 유럽 집 '600㎜'에 맞춰… 공간 줄여도 용량은 확보

기존 주력 제품에서는 유럽 시장을 겨냥한 변화가 뚜렷했다. LG전자는 냉장고에 적용하던 '핏 앤 맥스(Fit & Max)'를 식기세척기와 세탁기·건조기로 확대했다. 공간에 꼭 맞는 '핏(Fit)'과 용량·성능·효율을 극대화한다는 '맥스(Max)'를 합친 개념이다.

전시장에 놓인 세탁·건조 제품은 유럽 표준 가구 깊이인 600㎜에 맞췄다. 제품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줄이면서 내부 세탁·건조 용량을 최대한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위아래로 결합한 워시타워와 세탁·건조 일체형 워시콤보 등이 대표적이다.

냉장고 역시 문을 열 때 옆 가구와 부딪치는 문제를 줄였다. 벽이나 가구와 약 4㎜만 떨어뜨려도 설치할 수 있는 '제로 클리어런스' 구조를 적용했다. 작은 주방에서도 큰 용량의 냉장고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 장벽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에너지 효율도 유럽 공략의 핵심이다. LG전자는 최고 에너지 등급인 A등급 기준보다 에너지 사용량을 70% 더 줄인 세탁기와 각각 30%, 35% 추가 절감한 식기세척기·냉장고를 전시했다. 최고 효율 제품뿐 아니라 중간 가격대 제품에도 A등급 제품군을 늘려 고효율 기술의 적용 범위를 넓혔다.

◇ 입구 내준 TV… 안쪽에서는 '화질 이후' 보여줘

부스 입구의 상징적인 자리를 휴머노이드에 내줬지만 TV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안쪽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에보와 마이크로 RGB TV, 게이밍 모니터, 스탠바이미2 맥스 등이 별도의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채웠다.

백선필 LG전자 디스플레이 고객경험(CX)담당 상무가 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IFA 2026 LG전자 전시장에서 'LG 마이크로 RGB 에보 AI'를 소개하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전시는 단순히 더 밝고 선명한 화면을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았다. 벽과 한몸처럼 붙이는 월페이퍼형 TV, 액자처럼 콘텐츠를 보여주는 아트 TV, 집 안을 이동하며 사용하는 스탠바이미2 맥스를 한 공간에 배치했다. TV를 거실 한가운데 고정된 화면이 아니라 공간과 이용 방식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기기로 보여주는 구성이다.

백선필 LG전자 디스플레이 고객경험(CX)담당 상무는 "올레드와 마이크로 RGB 등 LG의 화질 기술력뿐 아니라 웹OS, 게이밍 모니터, 스탠바이미2 등 고객의 상황에 따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기기와 플랫폼을 전시했다"며 "보다 풍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솔루션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