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IFA 2026 개막 기조연설에서 잭 후인 AMD 컴퓨팅·그래픽 그룹 수석부사장 겸 총괄이 '개인 AI 시대'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후인은 AI가 PC를 단순한 도구에서 이용자의 맥락을 이해하고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두용 기자

4일(현지시각) 유럽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26'이 열린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의 이노베이션 스테이지. 잭 후인 AMD 컴퓨팅·그래픽 그룹 수석부사장 겸 총괄이 노트북을 들어 올리자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발표 후반 대형 인공지능(AI) 모델을 책상 옆에서 구동할 수 있는 워크스테이션이 공개되자 객석에서는 다시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올해 IFA 개막 기조연설의 주인공은 TV나 생활가전 업체가 아닌 반도체 기업 AMD였다. 후인 수석부사장은 약 45분간 '개인 AI의 시대: 상상력의 미래(The Era of Personal AI: The Future of Imagination)'를 주제로 발표했다. PC가 사람이 명령을 내리는 도구에서 이용자의 맥락과 의도를 이해하고 함께 일하는 AI 파트너로 바뀔 것이라는 게 AMD가 제시한 미래 청사진이다.

◇ "AI는 새로운 전기"… 개인 AI가 바꿀 PC

후인 수석부사장은 "AI는 새로운 전기(new electricity)"라고 말했다. 그는 "100년 전 전기가 어디서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하면서 우리가 일하고 생활하고 이동하는 방식을 바꿨다"며 "전기가 세상에 힘을 줬다면 AI는 지능을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AI는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을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넓힌다"고 덧붙였다.

후인 수석부사장은 PC와 인터넷, 스마트폰에 이은 컴퓨팅의 다음 변화가 AI에서 이뤄진다고 봤다. 그는 "PC는 수백만명의 손에 컴퓨팅을 가져왔고, 인터넷은 세계의 지식을 손끝에 가져왔으며, 스마트폰은 컴퓨팅을 주머니에 넣었다"며 "이제 AI가 컴퓨팅에 지능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AI 에이전트(자율형 비서)가 이런 변화를 앞당길 요인이라고 했다. 기존 생성형 AI가 질문에 답하는 데 그쳤다면 AI 에이전트는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사용하며 결과를 확인한 뒤 다음 작업까지 이어간다. 후인 수석부사장은 "하나는 조사하고, 하나는 글을 쓰고, 하나는 코딩하고, 또 다른 하나는 테스트할 수 있다"며 "AI는 더 이상 하나의 작업을 빠르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의 규모를 곱하고 있다"고 했다.

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IFA 2026 개막 기조연설에서 잭 후인 AMD 컴퓨팅·그래픽 그룹 수석부사장 겸 총괄(왼쪽)과 파반 다불루리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디바이스 담당 수석부사장이 AI PC와 로컬 AI의 발전 방향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후인 수석부사장은 또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보다 인간의 역량을 키우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AI는 인간의 야망을 줄이지 않고, 야망에 지렛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 위대한 기업은 한 사람과 한 대의 컴퓨터, 세상을 바꿀 만큼 큰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AMD가 제시한 개인 AI의 핵심은 ▲기기 내부에서 AI를 처리하는 로컬 컴퓨팅 ▲개인정보 보호와 이용자 통제 ▲개인 맥락이다. AI가 일정과 파일, 선호도를 이해하되 민감한 정보는 PC에서 처리하고 더 큰 연산 능력이 필요할 때 클라우드를 함께 쓰는 방식이다. 후인 수석부사장은 "당신의 데이터는 당신의 것이고, 무엇을 어디에 공유할지는 당신이 결정해야 한다"며 "지능이 클라우드가 아닌 당신에게서 시작하는 것이 변화의 핵심"이라고 했다.

사진1 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26 개막 기조연설에서 잭 후인 AMD 컴퓨팅·그래픽 그룹 수석부사장 겸 총괄이 라이젠 AI 헤일로 기반 차세대 노트북을 들어 보이고 있다. AMD는 개인용 기기에서 대규모 AI 모델을 구동하는 '개인 AI' 전략을 제시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 3000억개 모델 PC서 구동… MS·SUSE도 무대에

AMD는 개인 AI를 구현할 하드웨어도 공개했다. 라이젠 AI 헤일로(Ryzen AI Halo)는 최대 192GB 통합 메모리를 지원해 최대 3000억개 파라미터(매개변수) 규모의 AI 모델을 로컬에서 구동할 수 있다. 기존 128GB 메모리와 최대 2000억개 파라미터 지원에서 처리 가능한 모델 규모를 키웠다.

후인 수석부사장은 라이젠 AI 헤일로를 탑재한 차세대 HP Z북도 들어 보였다. 노트북에서 한 문장의 명령만으로 가상 세계를 생성하는 시연을 마친 뒤 "이것이 개인 AI의 미래"라고 말했다.

발표 후반에는 AMD가 설계한 '스레드리퍼 헤일로 스테이션(Threadripper Halo Station)'이 무대에 등장했다. 후인 수석부사장은 이를 "개인용 수퍼컴퓨터에 가장 가까운 시스템"이라고 소개했다. 인스팅트 MI350P 가속기 2개를 탑재하고 향후 4개까지 확장할 수 있다. 최대 2TB 시스템 메모리와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 576GB를 지원해 1조개가 넘는 파라미터의 AI 모델을 구동할 수 있다는 게 AMD의 설명이다.

파반 다불루리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디바이스 총괄 수석부사장도 무대에 올라 후인 수석부사장과 AI PC의 미래를 논의했다. MS는 개발 도구와 환경을 미리 구성해 대규모 AI 모델을 로컬에서 바로 다룰 수 있도록 한 '프로젝트 제니스(Project Zenith)'를 소개했다. 프로젝트 제니스는 라이젠 AI 헤일로에서 먼저 제공된다.

4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IFA 2026 개막 기조연설에서 잭 후인 AMD 컴퓨팅·그래픽 그룹 수석부사장 겸 총괄이 새 AI 워크스테이션 '스레드리퍼 헤일로 스테이션(Threadripper Halo Station)'을 공개하고 있다. AMD는 이 제품이 1조개가 넘는 파라미터의 AI 모델을 구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베를린=정두용 기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기업 SUSE의 더크-피터 판 레우벤 최고경영자(CEO)도 이번 무대에 함께했다. 그는 개인용 워크스테이션에서 개발한 AI를 데이터센터와 현장 단말, 클라우드로 확장하면서도 이용자가 소프트웨어와 인프라를 선택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가전·소비자전자 중심으로 성장한 IFA의 개막 기조연사로 반도체 기업이 오른 것 자체가 상징적이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AI가 냉장고·TV·PC 같은 완제품의 기능을 넘어 이를 움직이는 컴퓨팅 플랫폼 경쟁으로 번지면서 IFA가 다루는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30대 독일인 관람객은 "3년째 IFA를 구경하러 왔는데 반도체 회사가 기조연설을 한다는 점이 흥미로워 찾아왔다"며 "AMD 기술에 기반한 개인용 PC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고, 이를 통해 일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후인 수석부사장은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AI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것"이라며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돌파구는 아직 상상되지 않았고, 다음 위대한 발명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만들어라.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면 더 크게 상상하고 꿈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