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의 첨단 패키징 기술인 칩온웨이퍼온서브스트레이트(CoWoS)가 내년까지 공급 계약이 마감돼 추가 생산 여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빅테크·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들이 인텔의 임베디드 멀티다이 인터커넥트 브릿지(EMIB) 기술의 개량판 'EMIB-T' 도입을 검토하거나 이미 채택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의 공급 병목이 장기화하면서 인텔의 신기술이 대안으로 주목받는 모양새다.
◇ 미디어텍·브로드컴·메타 등 빅테크 러브콜
2일 업계에 따르면 미디어텍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CoWoS와 EMIB-T를 병행 활용해 초대형 인공지능(AI) 주문형반도체(ASIC)를 개발하겠다고 공식화했다. 브로드컴과 메타도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CoWoS에서 EMIB로의 전환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으며, 구글과 엔비디아 역시 EMIB-T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SK하이닉스의 행보가 눈에 띈다. 그동안 TSMC와 고대역폭메모리(HBM)·CoWoS 최적화를 긴밀히 협력해온 SK하이닉스가 최근 인텔로부터 EMIB가 적용된 기판을 받아 HBM과 시스템반도체를 함께 실장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TSMC에 쏠려 있던 패키징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따른 TSMC의 극심한 공급 부족이 자리 잡고 있다. TSMC의 CoWoS는 이미 2027년까지 예약이 마감된 상태로, 일부 고객사는 순서를 받기까지 1년 넘게 대기해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단의 웨이퍼 생산에는 문제가 없는데도 후공정 패키징 병목 때문에 완제품 출하가 지연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 인터포저 없이 필요한 곳만 실리콘으로… 원가 절반 수준
CoWoS와 EMIB의 가장 큰 차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연산 칩과 HBM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있다. CoWoS는 대형 실리콘 인터포저 위에 연산 칩과 HBM을 나란히 얹고, 그 아래 실리콘 판 전체를 배선으로 활용해 칩들을 잇는 방식이다. 반면 EMIB는 이런 대형 실리콘 판을 아예 쓰지 않는다. 연산 칩과 HBM이 실제로 맞닿는 부분에만 작은 실리콘 브릿지를 기판 안에 심어 연결한다.
최근 주목받는 것은 정확히는 기존 EMIB이 아니라 개량판인 EMIB-T다. 2017년부터 양산에 쓰여온 EMIB가 옆에 붙은 칩끼리만 가로 방향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구조였다면, EMIB-T는 브릿지 자체에 실리콘관통전극(TSV)을 추가로 뚫어 전력과 고속 신호를 수직 방향으로도 흘려보낼 수 있게 한 버전이다. 필요한 곳에만 값비싼 실리콘을 쓰다 보니 인텔 측은 제조 원가가 CoWoS 대비 최대 50%까지 낮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EMIB이 모든 면에서 CoWoS를 앞선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산 칩과 인접 칩 간 국지적 연결에는 EMIB이 유리하지만, GPU 하나를 중심에 두고 여러 개의 HBM 스택과 주변 칩렛까지 폭넓게 촘촘히 연결해야 하는 설계에서는 대형 인터포저를 쓰는 CoWoS의 배선 밀도와 확장성이 아직 앞선다는 분석도 있다.
◇ 수율 놓고 엇갈린 평가, TSMC도 맞불 기술 개발
EMIB-T의 완성도를 둘러싼 평가도 아직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EMIB-T의 최종 패키지 수율이 CoWoS와 대등한 98%까지 올라왔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실제로는 90% 안팎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패키지 조립 전 단계인 실리콘 브릿지 기판 자체의 제조 수율은 아직 50% 수준에 그쳐, 이 기판 공급이 EMIB-T 확산의 더 근본적인 병목으로 지목된다.
TSMC도 대응에 나선 모습이다. 대만 기판업체 킨서스와 함께 EMIB과 유사한 방식의 자체 패키징 기술을 개발 중이라는 현지 보도가 나온 뒤 TSMC 미국예탁증권(ADR)은 7%대, 인텔 주가는 12%대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EMIB-T 양산이 본궤도에 오르는 내년이 실질적인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내년 EMIB-T 양산 이후 실제 고객사 물량 이전 규모가 확인돼야 판도 변화 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CoWoS 공급난이 풀리지 않는 한 인텔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