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IT서비스 계열사 롯데이노베이트가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사업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면서 수익성 회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2021년 롯데이노베이트가 메타버스(Metaverse·가상융합세계) 사업 진출을 위해 인수한 '칼리버스'는 미래 핵심 사업에서 사실상 제외된 것으로 나타났다. 메타버스 열풍이 식으면서 칼리버스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사업 재편과 축소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이노베이트는 올해 반기보고서 주요 사업 개요에서 '메타버스'를 제외하고 '피지컬 AI'를 추가했다. 롯데이노베이트의 매출을 구성하는 3대 사업은 SM(시스템관리), SI(시스템통합), 전기차 충전인데 이 가운데 SI 사업 매출이 4199억원으로 전체의 76%를 차지한다. 올 1분기 사업보고서까지만 해도 롯데이노베이트는 SI 사업에 '메타버스와 AI 사업 등이 포함된다'고 기재했는데, 이번 반기보고서에는 메타버스는 빠지고 '피지컬 AI 등의 신기술 기반 사업이 포함된다'로 문구가 바뀌었다.
반기보고서의 SI 사업 판매전략 설명에도 롯데이노베이트는 AI·클라우드·데이터센터를 핵심 사업으로 정의하고 관련 분야를 키워 지속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직전 1분기 보고서에 신성장 분야로 지목했던 메타버스는 반기보고서에서 빠졌다.
메타버스 사업이 당초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롯데이노베이트도 관련 사업 재정비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전 세계 메타버스 시장은 코로나19 기간 비대면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이런 흐름에 발맞춰 지난 2021년 7월 가상현실(VR) 콘텐츠 기업 비전브이알을 120억원에 인수해 100%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후 칼리버스로 사명을 변경한 뒤 2024년 8월 메타버스 플랫폼을 출시했지만, 좀처럼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롯데이노베이트의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했다.
올 상반기 칼리버스의 매출은 16억8400만원, 영업손실은 6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8.6% 감소했고, 적자폭은 35% 줄었다.
그동안 롯데이노베이트는 칼리버스가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오르기까지 초기 투자 부담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국내 통신 3사와 게임사가 메타버스 사업에서 철수할 때도 칼리버스를 지켜왔다.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도 2년 연속 참가해 칼리버스의 메타버스 기술을 적극 홍보했다.
롯데이노베이트가 지금까지 칼리버스에 투입한 자금만 640억원에 달한다. 지난 2021년 120억원에 인수한 직후 70억원을 추가 출자했고, 이후 2023년에 250억원, 2024년 2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그러나 올 상반기 기준 칼리버스에 대한 투자금 가운데 359억원이 손상차손으로 반영된 상태다. 손상차손이란 자산의 실제 가치가 장부 가치보다 현저히 떨어졌을 때 재무제표에 손실로 반영하는 회계 처리를 말한다. 장부상 남아 있는 칼리버스의 투자 가치는 약 281억원 수준으로, 초기 투자금 대비 절반 이상 줄어든 셈이다.
이에 롯데이노베이트는 칼리버스를 고사양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키우는 대신, 롯데ON·롯데하이마트 등 그룹사의 기존 유통 사업과 접목해 AI와 3D 기술을 활용한 쇼핑 경험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업모델을 개편했다. 회사 관계자는 "칼리버스의 AI·3D 기술을 롯데그룹 계열사의 커머스 분야와 연계하고, 관련 역량을 고도화해 다양한 산업 분야의 AX(AI 전환)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메타버스 관련 수요와 투자가 식은 점도 롯데이노베이트의 사업 우선 순위 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으로 메타버스를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일념에 2021년 사명까지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변경한 메타는 관련 조직인 '리얼리티 랩스'가 설립 이후 누적 700억달러(약 103조원)의 대규모 적자를 내자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AI와 웨어러블(착용형) 기기에 사업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지휘 아래 전사적인 AI 전환과 수익성 중심의 경영 기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 6월 CEO AI 아카데미에 참석해 "AX는 선택이 아닌 그룹의 생존이 걸린 최우선 과제"라며 피지컬 AI를 포함한 AI 신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024년까지만 해도 메타버스는 신 회장이 꼽은 롯데그룹의 4대 미래사업 중 하나였지만, 올해는 메타버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에 따라 롯데이노베이트의 주력 사업도 AI·클라우드·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실제 회사의 수익성 회복으로 이어졌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올 상반기 매출이 555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47.5% 증가한 211억원을 기록했다. 데이터센터 설계·구축·운영(DBO) 등을 중심으로 사업성에 초점을 맞춘 선별 수주가 수익성 개선을 이끌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