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모델이 더 많은 연산을 요구할수록 소비 전력도 급격히 늘어납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게 기술적 과제인데, 3차원(D) 스케일링(scaling·반도체 구조를 수직으로 확장해 집적도와 연결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쿤드 스리니바산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그룹 부사장은 31일 서울 강남구 오크우드 프리미어 코엑스센터에서 열린 'AI 시대를 위한 D램·첨단 패키징'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행사는 스리니바산 부사장과 박광선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코리아 대표가 AI 반도체 산업의 병목과 기술 로드맵을 설명하는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어플라이드는 AI 성능 향상을 가로막는 핵심 병목으로 프로세서와 메모리의 성능 격차에서 생기는 '메모리 장벽(Memory Wall)'을 짚었다. 연산 칩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데이터를 저장·공급하는 메모리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시스템 성능과 전력 효율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어플라이드는 이를 풀기 위해 D램 소자부터 고대역폭메모리(HBM), 공동광학패키징(CPO)까지 데이터 이동 경로 전반을 고도화하는 기술 로드맵을 제시했다. 첨단 로직 반도체에 적용해 온 재료·공정 기술을 D램에 접목하고, HBM은 수직 적층과 접합 기술을 고도화한 뒤 메모리와 연산 칩을 더 가깝게 연결해 데이터 이동 거리와 전력 소모를 줄이는 방식이다.
어플라이드는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된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기업이다. 증착·식각·이온주입·화학적기계연마(CMP)부터 계측·검사, 첨단 패키징까지 반도체 핵심 공정 전반에 장비를 공급한다. 2026 회계연도 3분기(4~7월) 매출은 91억2000만달러(약 12조5000억원), 영업이익은 30억8000만달러(약 4조2200억원)로 모두 역대 분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 D램부터 HBM까지 '3D'…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가야"
스리니바산 부사장은 3D 반도체 구현의 핵심 과제로 ▲새로운 소재 ▲필요한 부분에만 소재를 쌓거나 깎는 정밀 공정 ▲옹스트롬(Å)급인 0.1㎚(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의 공정 제어 ▲공정 간 공동 최적화를 꼽았다. 로직 반도체는 2000개 이상, 메모리는 1200개 이상의 공정을 거치는 만큼 각각을 따로 개선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어플라이드는 D램에서도 특정 소재를 결정 구조에 맞춰 정밀하게 성장시키는 '에피택시'와 배선 고도화 등 첨단 로직 반도체 공정 기술이 주변 회로에 적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는 메모리 셀과 주변 회로를 별도 웨이퍼에서 만든 뒤 결합하거나, 트랜지스터를 수직으로 세워 더 좁은 면적에 메모리 셀을 집적하는 4F² 구조, 나아가 3D D램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고 관련 공정 기술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HBM에서는 칩 사이를 연결하는 미세한 돌기 형태의 전극인 마이크로범프를 없애고 구리 패드를 직접 붙이는 하이브리드 본딩을 핵심으로 제시했다. 적층 수가 늘어날수록 정해진 높이 안에 더 많은 D램을 쌓고 칩 사이 데이터 이동 거리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스리니바산 부사장은 "HBM을 에너지 효율적으로 계속 확장하려면 마이크로범프 기반 적층에서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이동해야 한다"며 "하이브리드 본딩은 다이 사이 간격을 사실상 0에 가깝게 줄인다"고 말했다. "열 성능과 입출력(I/O) 밀도를 높여 지연시간을 낮추고 대역폭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양산 도입 시점에 대해 "새로운 반도체 기술의 변곡점에서는 항상 학습 곡선을 거친다"며 "현재의 기술적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상용화 시점은 고객사가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 전기 배선을 빛으로… CPO까지 '데이터 이동' 공략
어플라이드는 칩 사이 거리를 줄이는 데서 더 나아가 신호 전달 방식 자체를 전기에서 빛으로 바꾸는 CPO도 AI 병목 해결의 차세대 해법으로 보고 있다. CPO는 전자 칩과 광학 칩을 하나의 패키지에 통합해 데이터를 광 신호로 전달하는 기술이다. AI 가속기와 데이터센터의 대역폭·전력 효율 한계를 낮추는 것이 목표다.
스리니바산 부사장은 "CPO는 매우 유망한 기술로, 패키지 내부의 일부 전기 배선을 대체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빛을 전달하는 광도파로(Waveguide·빛 이동 통로)를 구현하기 위한 신소재와 새로운 공정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CPO를 구현하려는 고객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HBM에서 개발 중인 하이브리드 본딩도 CPO의 기반 기술 가운데 하나"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어플라이드 전체 매출의 17%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2026 회계연도 3분기 한국 매출은 15억2100만달러(약 2조800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31% 증가했다. 매출 비중은 중국(28%)과 대만(22%)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어플라이드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장비·공정 혁신 및 상용화 센터(EPIC)를 기반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고객사와 차세대 반도체 기술 공동 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EPIC 창립 파트너다. 경기 오산에는 국내 고객과 공동 기술 개발·양산 검증을 진행할 '어플라이드 컬래버레이션 센터 코리아(ACC Korea)'를 건설 중이다.
박 대표는 "EPIC에서는 초기 단계의 기술과 소재부터 고객사와 협업하고, 한국에서는 이를 실제 디바이스 상용화에 더 빨리 적용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ACC 코리아가 완공되면 EPIC과 한국 연구 거점, 고객사를 연결해 혁신 속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