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급증하면서 인쇄회로기판(PCB) 공급 부담이 커지고 있다. AI 서버와 고속 네트워크 장비에 들어가는 고다층·고사양 PCB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국내 업체들이 잇달아 증설에 나서고 있지만 수요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도 공급이 빠듯해지면서 가격이 오르고 납기가 길어지고 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AI 서버용 고사양 PCB를 중심으로 수급이 빠듯해지면서 업체들의 증설과 제품 가격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서버업계에서는 이전부터 있었던 PCB 조달 병목이 최근 들어 한층 심해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PCB는 반도체와 각종 전자부품을 연결하는 기판이다. AI 서버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뿐 아니라 AI 가속기와 네트워크 스위치 등을 연결하기 위한 고다층 PCB가 사용된다. 서버 성능이 높아질수록 기판 층수가 늘고 구조가 복잡해져 생산 부담도 커진다.

초고다층 PCB 대표 업체인 이수페타시스는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용 고사양 PCB 수요 증가에 대응해 기존 4000억원 규모 증설과 별도로 1000억원대 중반의 추가 설비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이 회사는 AI 가속기와 서버, 네트워크 장비용 고다층 PCB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초고다층 PCB는 적층·도금·외층 등 여러 공정의 처리능력을 함께 늘려야 해 단기간에 생산량을 확대하기 어렵다.

수요 증가세도 가파르다. 이수페타시스의 올 2분기 말 수주잔고는 622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7% 늘었다. 2분기 매출은 3799억원, 영업이익은 771억원으로 각각 57.4%, 83.2% 증가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회사는 주요 고객사와 평균 15% 안팎의 판가 인상을 협의했으며 인상 가격은 8~10월 순차 적용되고 있다.

다른 PCB·기판 업체들도 AI 서버와 고성능 메모리 수요 증가의 영향을 받고 있다. 대덕전자는 2분기 매출 4010억원, 영업이익 70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63%, 3599% 증가했다. 심텍도 매출 5146억원, 영업이익 629억원으로 각각 51%, 1035% 늘었고, 서버용 메모리 PCB에 강점을 가진 티엘비는 매출 882억원, 영업이익 128억원으로 각각 38%, 86% 증가했다.

PCB 핵심 소재인 CCL에서도 공급 부담이 나타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CCL 수출액은 5억1733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41.6% 증가했고, 7월 한 달 수출액은 53.7% 늘었다. 국내 대표 CCL 업체인 두산 전자비즈니스그룹(BG)의 2분기 매출은 6760억원으로 42% 증가했다. AI 가속기와 네트워크, 고성능 메모리용 CCL 수요가 실적을 끌어올렸다.

고성능 CCL은 공급 확대가 쉽지 않다. 지난 5월 그로쓰리서치는 일부 고성능 CCL의 납기가 최대 6개월까지 늘었고, 3월 기준 CCL 수입단가가 전년 동월보다 74.5%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AI 서버용 고성능 CCL에는 저유전 유리섬유와 특수 동박 등이 필요해 생산 가능한 업체도 제한적이다.

실제 국내 PCB 업체 한샘디지텍은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용 고사양 소재 생산이 늘면서 일반 산업용 CCL 공급이 줄고 일부 CCL 가격은 기존 대비 두 배 이상 올랐다며 이달부터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대만 난야플라스틱도 유리섬유 공급 부족 등을 이유로 9월 출하분부터 CCL과 프리프레그 가격을 20~25% 올리기로 했다.

국내 서버 제조 현장에서도 PCB 수급 부담이 커지고 있다. 서버업계에 따르면 PCB 조달 문제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AI 서버 수요가 급증하면서 병목이 한층 심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고사양 PCB의 빠듯한 수급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PCB 업체들이 증설에 나서고 있지만 적층·도금 등 개별 공정의 생산설비와 CCL·유리섬유·동박 등 소재 공급이 함께 늘어야 해 단기간에 생산량을 크게 확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