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확산으로 기업마다 원하는 반도체가 달라지면서 맞춤형 반도체(ASIC)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설계를 지원하는 디자인하우스도 단순 외주업체를 넘어 고객과 함께 칩을 개발하는 핵심 파트너로 역할이 커지고 있다.
ASIC 플랫폼 기업 세미파이브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공식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로 출발한 회사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하려는 고객에게 설계와 검증, 양산 연계를 지원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반도체 설계자산(IP) 확보부터 SoC(System on Chip) 설계, 검증, 양산 지원까지 전 과정을 제공하는 턴키 플랫폼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고객이 반도체 아이디어만 갖고 있어도 실제 칩이 나오기까지 필요한 과정을 함께 수행하는 구조다. 현재 국내 약 270명, 해외 자회사를 포함하면 약 470명의 엔지니어가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자동차 등 다양한 ASIC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세미파이브의 올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은 94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97% 증가했다.
세미파이브 LD센터 SoC1팀을 이끄는 윤석현(46) 전무는 약 20년간 프론트엔드 로직 설계를 맡아온 SoC 전문가다. 아주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SoC·ASIC을 연구했으며, 차량용 SoC를 개발하는 텔레칩스에서 약 14년간 SoC 설계 경험을 쌓았다. 2021년 세미파이브에 합류했다.
지난달 27일 경기 성남시 본사에서 만난 그는 AI 시대 디자인하우스의 경쟁력은 '속도'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성능과 전력 효율이 우선이었다면 최근 고객들은 제품을 얼마나 빨리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는 것이다. 개발 기간이 짧아질수록 설계 초기부터 오류를 줄이는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됐다.
윤 전무는 좋은 SoC 엔지니어의 조건으로 '집요함'을 꼽았다. SoC는 한 번 테이프아웃(설계 완료)하면 수정이 어려운 하드웨어인 만큼 초기 설계 단계부터 작은 오류도 끝까지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설계와 검증을 최대한 앞단으로 당기는 '시프트 레프트(Shift Left)'가 중요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앞으로 ASIC 시장이 더욱 세분화되면서 디자인하우스의 역할도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칩렛과 3차원 집적(3D IC) 등 새로운 기술이 확산될수록 설계뿐 아니라 IP, 검증, 패키징까지 아우르는 플랫폼 역량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윤 전무는 "궁극적으로는 고객이 어떤 반도체를 요구하더라도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국내 SoC 산업도 고객과 설계사, IP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윤 전무와의 일문일답
―AI 시대가 되면서 SoC 설계 엔지니어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졌나.
"반도체는 하루아침에 바뀌는 산업이 아니다. AI도 갑자기 등장한 기술이 아니다. 다만 고객이 원하는 반도체는 훨씬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특정 제품군을 중심으로 설계했다면 이제는 AI와 데이터센터,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를 이해해야 한다. 여러 기술을 연결해 고객 요구사항을 해결하는 역량이 중요해졌다."
― 디자인하우스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제품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에서는 특정 제품군을 반복 개발하는 경우가 많지만 디자인하우스에서는 고객마다 만드는 칩이 모두 다르다. 다양한 산업의 고객과 협업하며 새로운 기술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 세미파이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기존 디자인하우스는 설계 일부를 지원하는 역할이 많았다. 세미파이브는 고객이 아이디어만 가져오면 IP 확보부터 SoC 설계, 검증, 양산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고객은 핵심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우리는 칩 개발 전반을 담당하는 구조다."
― 최근 고객들이 ASIC 개발에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은 일정이다. 과거에는 성능과 전력 효율이 중요했다면 최근에는 얼마나 빨리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됐다. AI 시장은 제품 개발 주기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아졌다."
― 같은 요구사항을 받아도 엔지니어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집요함의 차이다. 경험과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제를 어디까지 파고들고 끝까지 확인하느냐가 결과를 좌우한다. 같은 요구사항을 받아도 엔지니어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다."
― 좋은 SoC 설계 엔지니어의 조건은 무엇인가.
"업무적으로는 완벽주의 성향이 필요하다. SoC는 한 번 테이프아웃하면 수정이 어려운 하드웨어다. 칩 하나를 개발하는 데 1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프로젝트도 적지 않다. 설계 첫 단계부터 오류를 만들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업계에서 '시프트 레프트(Shift Left)'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설계와 검증을 최대한 앞단으로 당겨 처음부터 오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개발 문화가 바뀌고 있다."
― 최근 가장 도전적이었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칩렛과 3D IC 프로젝트였다. 기존 2차원 설계와 달리 여러 칩을 연결하고 적층하면서 메모리와 패키징, 후공정까지 함께 고려해야 했다. 새로운 기술뿐 아니라 다양한 협력사와의 협업도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 앞으로 ASIC 시장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나.
"ASIC는 더욱 세분화될 것으로 본다. 자동차도 하나의 칩으로 해결하는 시대가 아니라 용도별로 다양한 반도체가 필요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기업들이 자사 서비스에 최적화한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는 흐름도 계속 확대될 것이다. 이에 따라 디자인하우스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 앞으로 만들고 싶은 조직은 어떤 모습인가.
"고객이 어떤 반도체를 요구하더라도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조직이다. 다양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해 어떤 프로젝트든 자신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설계 조직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