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K-엔비디아'로 육성하겠다며 3000억원의 정책자금을 투입한 국내 인공지능(AI) 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 리벨리온이 엔비디아의 인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산 AI 반도체 생태계와 '소버린 AI(자주적 AI)' 구축을 명분으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지 약 5개월 만이다.

실제 인수 가능성은 아직 불투명하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리벨리온의 지분 구조와 정부의 AI 반도체 육성 정책 등을 고려하면 인수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가 최근 직접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수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양사는 인수설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리벨리온 제공

28일 업계 등에 따르면 황 CEO와 박 대표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엔비디아 본사에서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리벨리온은 두 CEO의 회동 사실은 인정했지만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양사가 기술 협력과 지분 투자부터 리벨리온 인수까지 다양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회동이 실제 인수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리벨리온이 현재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는 데다 정부 정책자금과 국내 기관투자자 등 다수의 주주가 얽혀 있어 경영권 매각이 단순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CEO 간 회동 역시 기술 협력이나 사업 제휴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만남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인수 가능성 자체가 거론된다는 점은 정부의 AI 반도체 육성 정책과 맞물려 논란의 소지가 있다. 리벨리온은 불과 5개월 전 정부가 국내 대표 AI 반도체 기업을 키우겠다며 추진한 'K-엔비디아 육성 프로젝트'의 첫 직접투자 대상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리벨리온에 2500억원을 직접 투자했고 산업은행도 500억원을 별도로 투입했다. 리벨리온이 유치한 6400억원 규모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가운데 정책자금만 3000억원이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국산 AI 반도체 육성과 소버린 AI 확보다. 금융위는 당시 'K-엔비디아를 향한 위대한 도전에 국민성장펀드가 함께합니다'라는 제목의 자료를 내고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 양산과 차세대 AI 반도체 개발을 지원해 국내 AI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리벨리온이 실제 엔비디아에 인수될 경우 정책 취지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엔비디아 중심의 AI 반도체 생태계에 대응할 국내 기업을 육성하겠다며 정책자금을 투입한 회사가 엔비디아에 편입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직접 'K-엔비디아'를 내세워 국산 AI 반도체 기업 육성을 강조했던 만큼 해외 기업으로의 경영권 매각이 현실화하면 정책자금 투입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쟁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책자금 처리도 쟁점이 될 수 있다. 국민성장펀드의 2500억원은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인수하는 직접 지분투자 방식이다. 경영권 매각이 추진될 경우 국민성장펀드와 산업은행이 보유한 지분 처리와 투자계약상 경영권 변경·해외 매각 관련 조건 등이 변수가 될 수 있다.

리벨리온은 2020년 설립된 AI 팹리스로 AI 추론에 특화된 NPU를 개발하고 있다. 2024년 SK텔레콤의 AI 반도체 계열사 사피온코리아와 합병했으며, 올해 3월 6400억원 규모의 프리IPO를 마무리했다. 현재 IPO를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