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까지 고환율 수혜를 누리던 국내 주요 게임사들이 최근 원화 강세라는 역풍을 맞았다. 최근 두 달 새 원화 가치가 달러·엔·위안 등 주요 통화 대비 10% 안팎 오르면서 해외 매출의 원화 환산액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 데다, 크래프톤·펄어비스 등 대규모 외화금융자산을 보유한 기업들은 자산의 원화 환산가치가 수백억원 이상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외화로 지출하는 비용이 함께 줄고, 외화 자산·부채 규모나 환헤지 전략도 회사마다 달라 실제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차이가 날 전망이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월 30일 1549.4원에서 이달 27일 1380.9원으로 10.9% 하락했다. 같은 기간 원·엔 환율은 100엔당 954.95원에서 866.58원으로 9.3%, 원·위안 환율은 228.18원에서 205.45원으로 10.0% 각각 내렸다. 원화 가치가 주요 통화 대비 두 달 새 10% 안팎 오른 셈이다.
◇ 해외 매출 90% 넘는데… 고환율 수혜서 '역풍'으로
국내 게임업계는 해외 매출 비율이 높아 환율 변동에 민감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시프트업의 해외 매출 비율은 99.4%에 달했다. 크래프톤(93.6%)과 펄어비스(93.5%) 역시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상대적으로 해외 비중이 낮은 엔씨도 전체 매출의 약 27%가 해외에서 발생했다.
그동안 원화 약세는 게임사들의 실적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다. 해외에서 같은 규모의 매출을 올리더라도 이를 원화로 환산할 때 매출액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2024년 8월 28일 1339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은 올해 6월 말 1549원대까지 올랐다. 그러나 원화 강세로 돌아서면서 현지 매출 규모가 같더라도 원화 환산 매출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불가피해졌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최근 게임사들의 해외 매출 비율이 더욱 커지고 있는 만큼 환율 변화가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 외화자산 1.7조 크래프톤… 원화 5% 절상에 707억 감소
원화 강세의 영향을 보다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게임사들이 보유한 외화표시 금융자산이다. 기업들은 해외에서 발생한 매출을 즉시 원화로 환전하진 않는다. 해외 사업 운영과 투자, 유동성 관리 등을 위해 외화를 현금·예금·매출채권 등의 형태로 보유하기도 한다.
각사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올해 6월 말 기준 외화금융자산을 총 1조7561억원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달러(USD) 표시 외화금융자산이 약 1조6199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크래프톤은 다른 모든 변수가 일정한 상황에서 원화가 5% 절상될 경우 환율 변동이 법인세비용차감전순손익에 미치는 영향도 공시했다. 원화 절상으로 외화금융자산에서 약 878억원의 감소 효과가 발생하는 반면, 외화금융부채에서는 원화 환산액이 줄면서 약 171억원의 증가 효과가 발생한다. 이를 합치면 법인세 비용 차감 전 순손익은 약 707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펄어비스도 6월 말 기준 외화금융자산 4704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는 원화 대비 주요 외화 환율이 5% 하락할 경우 총포괄손익이 약 227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실제 환율 변동 폭은 두 회사가 민감도 분석에서 가정한 5%를 크게 넘어섰다는 점이다. 6월 말 외화자산과 외화부채 규모가 그대로 유지됐다고 가정하고 최근 환율 하락 폭을 적용하면, 외화자산 가치 하락과 외화부채 감소 효과를 합친 결과 크래프톤은 약 1500억원, 펄어비스는 약 480억원의 원화 환산 가치 감소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 외화자산 줄인 엔씨·시프트업… 환율 영향도 낮아져
반면 상반기 중 외화자산 규모가 줄이면서 최근 원화 강세에 대한 위험도를 낮춘 곳도 있다. 엔씨는 연결 기준 외화표시 화폐성자산에서 외화표시 화폐성부채를 뺀 금액이 지난해 말 약 1조236억원에서 올해 6월 말 6769억원으로 약 34% 감소했다. 특히 달러 표시 화폐성 자산이 같은 기간 약 9008억원에서 5426억원으로 3582억원 줄었다.
시프트업도 외화 표시 화폐성 자산이 지난해 말 약 3396억원에서 올해 6월 말 2275억원으로 감소했다. 이에 원화가 10% 절상될 경우 세전 손익에 미치는 감소 효과도 지난해 말 약 323억원에서 올해 6월 말 약 210억원으로 줄었다.
한편, 원화 강세가 게임사 실적에 일방적인 악재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 법인의 인건비와 현지 마케팅비 등 외화로 지출하는 비용도 원화로 환산하면 감소한다. 외화부채를 보유한 기업은 원화 강세 때 갚아야 할 금액의 원화 환산액이 줄고, 선물환 등 환헤지 수단을 활용하면 외화자산의 환산가치 하락에 따른 영향을 일부 상쇄할 수도 있다.
또 다른 게임업계 관계자는 "기업마다 해외 매출과 외화자산·부채 구조가 다른 만큼 환율 변화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도 다르다"며 "외화자산과 부채 비율을 조정하거나 환헤지 수단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환율 변동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