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모델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앞서 있지만 한국은 피지컬 AI의 실제 배치 측면에서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아비나브 굽타 스킬드 AI 공동창업자)
"한국이 AI에서 조금 더 야심 차게 1등을 목표로 잡는 게 좋을 것 같다.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김태수 마이크로소프트 보안담당 부사장)
2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국내 최대 테크 콘퍼런스 '스마트클라우드쇼 2026'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AI, 세상을 움직이다(AI: Shaping the World)'를 주제로 열린 올해 행사에는 피지컬 AI와 보안, 로보틱스, 반도체, 우주 분야의 세계적 석학과 산업계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이 AI 3강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미래 산업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조선비즈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현장에 마련된 300여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참관객이 몰렸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조·IT 강국인 한국이 산업 생태계를 활용하면 피지컬 AI 시대 1강도 가능하다"고 했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2차관은 "AI 주도권 확보를 위해 우수한 모델과 함께 대규모 컴퓨팅·데이터 등 안정적인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 피지컬 AI 벨트'를 중심으로 기업·인재·기술이 모이는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고, 도시 전역을 신기술 실증 무대로 만들겠다"고 했다.
◇ "韓 제조 강국인 만큼 피지컬 AI서 기회 찾을 수 있어"
정부가 'AI 3강'과 '피지컬 AI 1강' 달성을 목표로 속도전을 펼치는 가운데, 국내 제조업 경쟁력을 피지컬 AI의 강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기조연설에 나선 아비나브 굽타 스킬드 AI(Skild AI) 공동창업자 겸 미국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미국에도 실제 배치된 피지컬 AI 로봇이 많지 않고, 중국에서도 주로 엔터테인먼트용 로봇이 보인다"며 "필요와 기회를 결합한다면 한국이 피지컬 AI 실험에 먼저 참여해 다른 국가가 쌓기 어려운 배치 경험을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규제를 완화하고 실제 현장 투입까지의 절차를 빠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2023년 설립된 스킬드AI는 기업가치 약 20조원으로 평가받는 로봇 AI 기업으로, 다양한 형태의 로봇에 적용할 수 있는 '로봇의 두뇌'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을 핵심 기술로 개발하고 있다. 임효준 LG전자 차세대컴퓨팅연구소장도 "한국은 제조업이 워낙 강하고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데이터가 있어 피지컬 AI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AI 경쟁에서 한국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김태수 마이크로소프트(MS) 보안 담당 부사장(조지아공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은 "오픈소스 모델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중에는 20~30명의 뛰어난 인재가 모인 회사도 많다"며 "3등이 아닌 1등을 하기 위한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정석근 SK하이퍼 대표는 "3등이라도 제대로 전략을 세워 빨리 3등이 되자는 생각"이라며 "미국과 중국 외 제3의 플레이어에 대한 수요는 굉장히 강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글로벌 AI 표준을 주도하고 중국이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상황에서, 두 국가의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어려운 국가를 중심으로 소버린 AI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 "AI 시대 공격은 화살 아닌 폭탄… 무조건적 도입은 지양해야"
AI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업의 보안 환경과 인프라를 둘러싼 위협도 급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가 사이버 공격의 파괴력을 키우는 동시에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는 만큼, 기업들이 보안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효준 LG전자 CTO부문 차세대컴퓨팅연구소장(전무)은 "AI 시대의 공격은 화살이 아니라 폭탄이 날아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박송 SK쉴더스 사이버보안 AI랩 총괄은 "맹목적으로 성벽을 높게 쌓던 방어의 시대는 끝났다"며 "공격을 받아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사이버 회복 탄력성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AI는 기존 AI 모델이 풀지 못했던 고난도 모의 해킹 과제의 74%를 해결한 사례도 소개됐다. 톰 스컬리 팔로알토 네트웍스 아시아·태평양·일본 지역 정부·핵심 기반 시설 부문 디렉터는 "실시간 AI를 활용한 사이버 공격에 대응할 유일한 방법은 AI로 맞서는 것"이라며 AI 에이전트에 필요한 시스템과 데이터에만 접근 권한을 부여하는 등 통제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팔로알토 네트웍스 위협 인텔리전스 조직 유닛42(Unit 42)에 따르면 주요 취약점이 공개된 뒤 공격자가 이를 겨냥한 대규모 스캔에 나서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15분이다.
AI를 무조건적으로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준식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한국지사장은 "휴머노이드의 모든 판단을 중앙 AI 프로세서에 맡겨서는 안 된다"며 분산 지능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성배 메가존클라우드 최고AI책임자는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는 하네스(harness)를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며 "무턱대고 AI를 전사에 적용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네스는 AI 모델을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제어·관리하기 위한 실행 환경을 뜻한다.
AI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인프라 확보도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이일준 NHN클라우드 기술사업부장 이사는 "AI 개발자는 성능을 고민하지만 인프라 담당자는 이제 전력을 걱정하고 있다"며 "AI 경쟁은 결국 데이터센터와 전력 확보 경쟁"이라고 말했다. 신정규 레블업 대표는 "현재 사람 1명당 에이전트 AI가 20개 정도 돌아가고 있지만 내년에는 100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며 "AI 인프라 병목이 GPU에서 CPU·메모리·스토리지·전력 등 전체 컴퓨팅 자원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에이전트 확산은 관련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변화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해석 폴라리스오피스 부사장은 "AI 에이전트가 일을 더 잘하도록 지원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의 활용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위성에 AI 결합하면 의미 있는 정보 추출… 데이터·보안 문제 함께 풀어야"
위성 분야에서는 AI가 위성 영상과 지구 관측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기후·재난·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2015년 설립된 핀란드 우주 기업 아이싸이(ICEYE)의 페카 라우릴라 공동 창업자 겸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위성 활용처가 재난을 넘어 국가 안보와 공공 안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며 "AI를 적용하면 영상 속 물체와 움직임을 자동으로 분석해 의미 있는 정보를 추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AI와 위성 기술의 결합을 위해서는 데이터와 보안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원규 쎄트렉아이 전무는 "AI의 가능성을 실제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려면 데이터와 보안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자체 위성 기술과 AI를 결합한 'K스페이스 AI 주권'을 확보하려면 양질의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와 보안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