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D램 1㎏이면 금 620g을 살 수 있게 됐다. D램 수출단가는 저점을 기록한 3년 7개월 전보다 12.5배로 높아졌다. 미국 국채금리 하락과 달러 약세로 최근 가격이 크게 오른 금도 같은 기간 2.4배가 됐지만 D램 상승 폭에는 못 미쳤다. 현재 D램 1㎏당 수출단가는 같은 무게의 백금 가격의 1.53배, 은 가격의 41.7배 수준이다.
가격이 전례 없는 수준까지 올랐지만 메모리 쇼티지(공급 부족)는 오히려 내년에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D램 공급 부족률이 올해 5.0%에서 내년 5.9%로 확대될 것으로 봤다. 기존 전망치와 비교하면 올해는 0.1%포인트(P), 내년은 3.4%P 높여 잡은 것이다. 인공지능(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고용량 서버 D램이 한정된 생산능력을 흡수하면서 범용 D램까지 공급이 빠듯해지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 한국무역통계진흥원(TRASS)에 따르면 이달 1~20일 D램(D램 모듈 제외) 수출단가는 1㎏당 9만2183달러(약 1억2740만원)로 전년 동기보다 401.0% 상승했고, 같은 기간 수출액은 98억662만달러(약 13조5600억원)로 504.8% 증가했다. 투자 리서치업체 시트리니리서치가 한국 D램 수출 통계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23년 1월 1㎏당 약 7400달러(약 1020만원)까지 떨어졌던 것과 비교해 현재 D램 수출단가는 약 12.5배로 높아졌다.
◇ "주류 D램 용량 두 배 증가 고려해도 가격 상승 가팔라"
D램을 금·은과 같은 원자재처럼 무게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D램은 제품 세대와 데이터 전송속도, 저장용량 등 성능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공정 미세화와 고집적화가 진행되면서 비슷한 크기의 칩에 담을 수 있는 데이터 용량도 늘었다.
수출단가가 저점을 기록했던 2023년 초와 비교해 현재 주류 제품의 저장용량도 커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당시 현물시장의 주류 제품으로 추적한 제품은 DDR4 8Gb(기가비트)였다. 현재 트렌드포스가 '주류 D램 현물가격'의 기준으로 삼는 제품은 DDR5 16Gb(2G×8) 4800·5600이다. 대표 제품 한 개가 담는 용량이 8Gb(1GB)에서 16Gb(2GB)로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다만 최근 D램 수출단가 상승을 제품 고도화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공정 미세화와 고집적화가 진행되면 비슷한 크기의 칩에 더 많은 데이터를 담을 수 있어 제품 고도화 자체가 중량당 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3~4년 전과 현재의 무게당 저장용량을 정확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최근 메모리 가격 상승세는 가파르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D램 수출가격은 전년 동월보다 270.3% 상승했다. 미국 마이크론도 2026 회계연도 3분기 D램 평균판매가격(ASP)이 전 분기보다 60%대 초반 올랐다고 밝힌 바 있다.
◇ 가격은 치솟는데… 공급 부족 내년 더 심해진다
글로벌 IB와 메모리 제조사들은 D램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풀리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보다 내년 수급이 더 빠듯해지고 2028년에도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메모리 쇼티지 원인으로는 HBM 수요 급증이 꼽힌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글로벌 HBM 시장이 올해보다 108%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AI 가속기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메모리 업체가 HBM에 배정해야 하는 D램 생산능력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HBM은 여러 개의 D램 칩을 쌓아 만드는 데다 범용 D램보다 같은 용량을 생산하는 데 더 많은 웨이퍼 생산 능력이 필요하다. AI 가속기용 HBM 생산을 늘릴수록 PC·스마트폰과 일반 서버용 D램에 배정할 생산 여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구조다.
트렌드포스는 내년 말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상위 3개 업체의 전체 D램 웨이퍼 투입량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달하는 반면 비트 기준 공급 비중은 13%에 그칠 것으로 봤다. 많은 생산능력을 투입해도 실제 공급되는 비트 증가 폭은 상대적으로 작은 셈이다.
메모리 업체들이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지만 신규 공장이 실제 공급 확대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트렌드포스는 신규 팹 가동과 공정 안정화에 시간이 걸리는 데다 HBM과 서버용 D램 수요가 계속 증가해 내년에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메모리 제조사들의 전망도 비슷하다. 마이크론은 지난 6월 AI발 수요와 구조적인 공급 제약으로 D램과 낸드플래시의 빠듯한 수급이 2027년 이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도 지난달 공급 측면에서 2027년이 메모리 업계 역사상 가장 심각한 부족의 해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공급 부족이 심해지면서 엔비디아와 일부 클라우드서비스사업자(CSP)가 차세대 AI 가속기의 HBM 구성이나 탑재량을 조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HBM 증산이 범용 D램 공급을 얼마나 제약하는지와 신규 생산능력이 실제 출하로 이어지는 시점, 높은 가격에 따른 수요 둔화 여부가 공급 부족의 지속 기간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