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이 밀려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 최대 1000억달러(약 138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부채 조달에 나서는 등 공격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자체 현금흐름만으로는 고객사에 필요한 반도체·인프라 조달 속도를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의미다. TSMC 단일 공급망의 한계와 맞물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린다.
◇ 1000억달러 부채 조달, 삼성 파운드리 수혜론 부상
25일 업계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앤트로픽·오픈AI 등 AI 기업에 공급할 반도체 설계·인프라 자원 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최소 600억달러, 최대 1000억달러에 달하는 부채 조달을 협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요 파트너로 부상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첨단 공정 수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브로드컴의 부채 조달 구조는 약 300억달러 규모의 후순위 부채와 600억~700억달러 규모의 선순위 담보부채로 구성된다. 브로드컴이 선순위 부채 일부에 보증을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특수목적법인(SPV)을 통해 발행될 전망이며 블랙스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등이 대주단으로 참여했다.
브로드컴은 지난 4월 구글과 2031년까지 차세대 AI 랙용 맞춤형 반도체·부품을 공급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앤트로픽에는 2027년부터 구글 AI 프로세서 기반 약 3.5기가와트(GW) 규모 컴퓨팅 용량을 제공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수주 잔고는 1620억달러, 이 중 AI 칩용 물량만 730억달러에 달하며 경영진은 이를 향후 6개 분기 내 소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분기당 120억달러 이상을 매출로 전환하는 속도다.
브로드컴의 올해 2분기 AI 반도체 매출은 108억달러로 전년보다 143% 증가했고, 3분기 가이던스는 160억달러(전년 대비 200%)로 증가 폭이 더 커졌다.
◇ "TSMC 병목, 삼성 2나노 수주 확대 가능성도"
이 정도 물량을 특정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한 곳에서 전량 소화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 브로드컴은 지난 3월 로이터 인터뷰에서 "TSMC 생산능력이 더 이상 무제한이 아니다"라며 공급 병목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이후 브로드컴은 올해 7월 삼성전자와 2000억달러(약 292조원) 규모의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 통합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브로드컴의 차세대 통신용 반도체(WBC)에 2나노(nm) 이하 공정을 적용하고 HBM4(6세대 HBM)·HBM4E(7세대 HBM)도 공급받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0일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브로드컴 등 주요 고객사와 차세대 프로젝트를 논의 중"이라며 올해 2nm 수주 과제가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브로드컴이 자금까지 끌어다 쓰면서 고객사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야 할 만큼 주문이 밀려 있다는 건 파운드리 생산능력 확보가 매출 성장의 실질적 병목이 됐다는 뜻"이라며 "TSMC 한 곳으로 이 물량을 다 받아내기 어려운 만큼 삼성전자의 2나노 라인 가동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