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출시로 성장을 꾀해 온 게임사들이 기존 게임의 수명을 늘리는 데 힘을 싣고 있다. 게임 엔진을 교체해 그래픽을 개선하거나 이용자 간 전투(PK)를 금지하는 등 게임 규칙을 바꿔 신규·복귀 이용자를 불러들이는 방식이다. 신작 흥행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기존 게임의 제품수명주기(PLC)를 늘려 꾸준한 매출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넷마블은 최근 기존 라이브 게임의 엔진과 플레이 방식을 손보는 대규모 개편에 나서고 있다. 2018년 출시돼 서비스 8년 차를 맞은 '블레이드&소울 레볼루션'은 지난 5월 'NEXT' 업데이트를 통해 게임 엔진을 언리얼 엔진4에서 언리얼 엔진5로 전면 업그레이드했다. 단순히 신규 캐릭터나 던전을 추가하는 수준을 넘어 환경 표현과 텍스처, 라이팅 등 그래픽 전반을 개선했다. 서비스 중인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 게임 엔진 자체를 교체하는 것은 업계에서도 드문 사례다.
같은 달에는 '레이븐2′의 플레이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넷마블은 기존 서버보다 경험치 획득량과 장비 드롭률을 높이고 사냥터 내 PK를 금지한 특화 서버 'ZERO'를 열었다. 성장 속도와 PK 등 MMORPG의 핵심 규칙을 기존 서버와 달리 적용해 경쟁과 성장에 부담을 느끼는 이용자까지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선택지를 넓혔다.
◇ 173위→68위·141위→22위… 개편 뒤 매출 순위 반등
대규모 개편 이후 두 게임의 매출 순위는 반등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블레이드&소울 레볼루션'은 업데이트 직전인 5월 24일 구글플레이 매출 173위에서 6월 5일 68위까지 올랐다. '레이븐2′ 역시 5월 28일 141위에서 6월 2일 22위까지 상승했다. ZERO 서버에는 이용자가 몰리면서 서버를 추가로 만들기도 했다.
넷마블은 앞으로도 기존 게임을 다시 키우는 데 힘을 싣겠다는 계획이다. 김병규 넷마블 대표는 이달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신작 라인업을 조금 타이트하게 가져가면서도 기존 라이브 게임의 운영 PLC를 확장하는 것이 하반기 주된 전략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넷마블은 그동안 여러 신작을 잇달아 출시해 매출을 끌어올리는 방식에 강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게임의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김 대표는 "다작 론칭을 통해 성장을 견인한다는 것의 이면에는 상대적으로 이미 론칭한 게임들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다는 우려가 깔려 있었고, 이러한 우려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다"며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시장의 기대에 궁극적으로 부합하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 장수작에 투자 이어가는 게임사
스마일게이트 역시 지난해 서비스 7년 차였던 모바일 RPG '에픽세븐'에 대규모 '오리진' 업데이트를 실시했다. 신규 에피소드를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장 가이드와 장비 관리 시스템을 신설하고 장비 획득·육성 방식과 각종 편의 기능도 손봤다. 신규·복귀 이용자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덕분에 구글플레이 매출 100위권 밖까지 밀렸던 '에픽세븐'은 업데이트 이후 최고 31위까지 올라왔다. 스마일게이트는 서비스 8주년을 맞은 올해도 이날 쇼케이스를 통해 향후 대규모 업데이트와 기념 이벤트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넥슨도 오래 서비스한 게임에 꾸준히 개발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넥슨은 2024년 투자자 서한에서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 등 기존 핵심 게임을 계속 키우는 것을 주요 성장 전략으로 제시한 뒤 대규모 업데이트를 이어왔다. 지난 7월에는 출시 21주년을 맞은 '서든어택'도 업데이트를 통해 최대 84FPS였던 게임 내 프레임 제한을 최대 200FPS까지 높이는 등 이용 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다.
◇ 신작보다 부담 적지만 '반짝 역주행' 넘는 게 관건
게임사 입장에서 기존 게임을 다시 키우는 것이 신작 개발과 비교해 투자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작은 수년간의 개발비에 더해 출시 전후 대규모 마케팅과 운영 자원이 필요하지만 흥행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 반면 기존 게임은 이용자층과 지식재산권(IP) 인지도, 개발 자산과 서비스 경험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과거 게임을 즐겼다가 떠난 휴면 이용자를 다시 불러들일 수도 있다.
다만 대규모 업데이트 직후 매출 순위가 뛰었다고 실제 게임의 수명이 늘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업데이트 직후에는 복귀 이용자가 몰리고 신규 서버나 캐릭터·상품 판매 효과가 집중되면서 매출이 단기간 급증할 수 있으나, 새 콘텐츠를 소진한 이용자가 다시 이탈하면 순위가 다시 떨어질 수 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업데이트 한 번으로 수명을 계속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복귀 이용자가 다시 이탈하지 않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