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이 올해 들어 수익성이 떨어지는 장수 게임을 잇따라 정리하고 있다. 한때 '국민 게임'으로 불렸던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25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고, '바람의나라: 연'도 내년 초 서비스를 접는다. 올해 3월 취임한 패트릭 쇠더룬드 회장 체제에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글로벌 게임 산업이 제작비 급등과 이용자 감소로 부침을 겪고 있는 가운데 넥슨은 성공이 보장된 주력 지식재산권(IP)을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해 위기를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21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넥슨은 쇠더룬드 회장이 선임된 3월을 기점으로 비용 효율화에 중점을 둔 사업 구조 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기가 많았더라도 이제는 이용자 기반이 약해진 장수 게임들이 정리 대상에 올랐다.
지난 2008년에 출시된 넥슨의 온라인 슈팅게임 '크레이지슈팅 버블파이터'가 17주년을 앞둔 지난 6월 서비스를 종료했고, 2000년대 국내 온라인 게임 문화를 대표한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이달을 마지막으로 서비스를 접었다.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경우 한때 국내 최고 동시접속자 35만명, 전 세계 동시접속자 100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서비스를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익성이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바람의나라' IP를 활용한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바람의나라: 연'도 서비스 종료를 예고했다. 넥슨은 내년 2월부로 '바람의나라: 연'의 서비스를 마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카트라이더: 드리프트'까지 넥슨이 최근 1년 사이 정리한 장수 게임만 4종에 달한다.
이는 쇠더룬드 회장이 밀어붙이고 있는 비용 효율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쇠더룬드 회장은 지난 3월 열린 자본시장 브리핑(CMB)에서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핵심 IP 투자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넥슨의 전체 게임 포트폴리오(제품군)를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현재 넥슨이 지원하는 작품 포트폴리오가 지나치게 넓다"며 "새로 정한 이익 하한선을 충족하는 프로젝트만 살리겠다"고 말했다. 최근 서비스 종료를 알린 게임들은 넥슨이 제시한 이익 하한선에 부합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신 넥슨의 3대 IP로 꼽히는 '메이플스토리·던전앤파이터·FC' 프랜차이즈를 확장해 수익성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넥슨 실적의 일등공신도 효자 IP인 '메이플스토리' 프랜차이즈와 지난해 하반기 출시 이후 누적 1600만장 이상 팔린 신작 '아크 레이더스'였다. 넥슨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약 2조5603억원, 영업이익은 8379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7%, 13%씩 늘었다.
넥슨이 이처럼 검증된 IP에 힘을 싣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선회한 데는 글로벌 게임산업 침체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쇠더룬드 회장은 최근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게임산업은 지난 30년 사이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서구권 게임 산업은 치솟는 제작비와 콘솔 기기 구매 심리 위축 등으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실제 AAA급 대형 게임을 개발하려면 수억달러를 투입해야 하지만, 서구권에서는 콘솔 게임 수요가 줄면서 평균 60~100달러대 패키지 게임을 일회성으로 판매하는 방식으로는 제작비를 회수하기 어려워졌다.
그는 "그 결과 수많은 게임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개발사들이 연달아 문을 닫으면서 수만명의 개발자들이 해고되고 있다"고 했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대규모 제작비와 인력을 투입해 흥행 유무를 가늠할 수 없는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이미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장수 IP를 재활용해 수명을 늘리는 전략이 안전한 선택지가 된 셈이다. 과거에는 게임이 타사 게임과 경쟁하는 구도였지만, 최근에는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와 유튜브·인스타그램·틱톡 등의 숏폼까지 경쟁하면서 신작의 실패 가능성이 이전보다 커진 점도 넥슨이 핵심 프랜차이즈 중심의 신작 개발에 주력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다.
쇠더룬드 회장은 '아크 레이더스' 개발사인 스웨덴 소재 엠바크 스튜디오의 창업자로, '아크 레이더스'의 흥행 성과를 인정받아 넥슨 회장으로 선임됐다. 창업 전에는 일렉트로닉아츠(EA) 총괄 부사장을 지내며 '배틀필드' 등 세계적인 인기작의 개발을 이끌었다. '아크 레이더스'의 경우 70명의 개발자가 3년 동안 약 7500만달러(약 1000억원)를 들여 개발했다. 일반적인 AAA 게임 대비 비용이 약 4분의 1 수준이다. 2분기 기준 '아크 레이더스' 누적 매출은 880억엔(약 7800억원)을 넘어선 상태다.
그는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과 시간으로 '아크 레이더스'를 제작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활용한 자동화 도구와 소규모 팀 중심의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을 꼽았다. 쇠더룬드 회장은 "이는 의도한 것으로, 엠바크 스튜디오에서 사용한 공식을 넥슨에도 적용하고자 한다"고 했다.
넥슨이 보다 적은 인원으로 제작비를 절감하고 개발 속도를 높이는 시도를 이어가면서 신규 채용을 최소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쇠더룬드 회장은 해고를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향후 몇달간은 비용 관리에 집중하고, 올해 연간 인건비를 전년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