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경쟁축이 미세공정에서 첨단 패키징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향후 5년간 AI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주문형반도체(ASIC) 1억3000만개 이상이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가깝게 연결하는 첨단 패키징을 적용해 출하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향후 5년간 첨단 패키징 방식으로 메모리를 연결한 AI 서버용 GPU와 ASIC 출하량은 1억3000만개를 웃돌 것으로 20일 전망했다. 카운터포인트는 AI 컴퓨팅 수요에서 약 2조달러 규모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카운터포인트는 최근 발표한 리서치 노트에서 AI 하드웨어의 주요 병목이 반도체 회로를 미세하게 만드는 '로직 스케일링'에서 첨단 패키징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산 성능이 빨라지는 속도를 메모리와 칩 간 데이터 전송 성능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카운터포인트는 이를 '메모리 벽(Memory Wall)', '성능 벽(Performance Wall)', '구리 벽(Copper Wall)' 등 세 가지 한계로 구분했다. 메모리 벽은 연산장치의 처리 속도에 비해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가져오는 속도가 부족해지는 현상이다. 구리 벽은 칩 사이를 구리 배선으로 연결할 때 전송 속도와 거리가 늘어날수록 전력 소비와 신호 손실이 커지는 문제를 뜻한다.
현재 AI 가속기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연산칩 가까이에 배치하는 방식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카운터포인트는 HBM과 대형 실리콘 인터포저를 결합하는 TSMC의 'CoWoS(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 방식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비용과 생산능력, 대형 패키지의 결함 위험 등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터포저는 여러 반도체 칩을 하나의 패키지에서 연결하는 중간 기판이다.
인텔은 이 같은 패키징·메모리 연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EMIB와 ZAM, XBM으로 이어지는 기술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EMIB(Embedded Multi-die Interconnect Bridge)는 여러 개의 반도체 칩을 작은 실리콘 연결부를 통해 하나의 패키지 안에서 고속으로 연결하는 인텔의 첨단 패키징 기술로 이미 상용화됐다. 전체 패키지 크기의 대형 실리콘 인터포저를 사용하는 대신 칩 사이에 필요한 부분만 연결하는 방식이다.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인텔은 중기적으로 'ZAM'을 HBM4급 메모리 연결 대안으로 개발하고 있다. 2028~2030년께 상용화가 목표다. ZAM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아닌 소프트뱅크 자회사 'SAIMEMORY'와 공동 개발하고 있다.
SAIMEMORY는 2024년 12월 설립됐다.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인텔이 기술 부문, 소프트뱅크가 재무 부문을 맡고 도쿄대 교수가 과학 부문을 총괄하는 구조다. 2027회계연도까지 시제품을 내놓고 2029회계연도 상용화를 추진한다. 일본 정부기관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의 지원도 받고 있다.
2030년 이후에는 'XBM'도 추진한다. 카운터포인트는 XBM을 반도체 후공정 단계에서 박막트랜지스터를 활용하는 장기적인 메모리 구조 재설계 기술로 분류했다. 다만 인텔의 기술이 기존 HBM과 TSMC의 첨단 패키징 체계를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게 카운터포인트의 분석이다. TSMC는 대량생산 경험과 공정 성숙도,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 표준을 기반으로 한 생태계에서 앞서 있다. 인텔이 시장을 확대하려면 구글·미디어텍 등 고객과 협력사를 확보하고 열관리와 패키지 통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인텔은 지난 6월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를 파운드리 부문 수석부사장으로 영입해 첨단 패키징과 후공정 기술 개발·제조를 맡겼다. 인텔은 직접 메모리 웨이퍼 생산에 다시 뛰어들기보다 첨단 패키징과 칩 간 연결 기술을 통해 메모리와 연산 반도체 사이에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HBM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의 점유율이 높다.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8%, 삼성전자 21%, 마이크론 21%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합치면 약 80%다. 삼성전자는 HBM과 파운드리를 함께 공급하는 방식으로 AI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는 AI 반도체에서 연산칩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메모리와 연산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하는지가 중요해지면서 첨단 패키징을 둘러싼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