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이노텍 구미사업장./LG이노텍

LG그룹의 전자부품 계열사인 LG이노텍의 올 상반기 재고자산이 1년 새 1조원 넘게 불어나 2조50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생산을 마친 제품과 판매 목적으로 확보한 상품이 123.8% 늘어 전체 증가액의 88.7%를 차지했다. 제품·상품의 재고 급증은 통상 판매 부진이나 운전자금 부담을 나타내 경영 악화의 신호로 여겨진다. 그러나 LG이노텍처럼 고객사 생산계획에 맞춰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간거래(B2B) 업체에서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고객사의 수요 전망과 생산 일정에 맞춰 납품 물량을 미리 준비하기 때문에 실적 개선의 선행 지표로 보기도 한다.

LG이노텍의 올 상반기 전체 매출 가운데 애플 비중은 80.3%에 달한다. 전체 매출 11조621억원 중 8조8882억원이 애플에서 나온 것이다. 올 하반기 애플의 신제품 공급을 앞두고 물량을 먼저 준비하면서 재고자산이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이노텍의 올 상반기 말 연결기준 재고자산은 2조486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1조4605억원보다 70.2%, 금액으로는 약 1조256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상반기 매출은 8조9174억원에서 11조621억원으로 24.1% 늘었다. 매출보다 재고 장부가액이 훨씬 빠른 속도로 커진 것이다.

증가분의 대부분은 '제품·상품'에서 나왔다. 이 항목은 7346억원에서 1조6444억원으로 123.8% 뛰었다. 1년간 늘어난 제품·상품 재고는 9098억원으로 전체 재고 증가분의 88.7%를 차지했다. 전체 재고에서 제품·상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50.3%에서 66.1%로 15.8%포인트(P) 높아졌다. 이를 작년 비중 50.3%를 기준으로 상대 비교하면 제품·상품 비중 자체가 31.4% 확대된 것이다.

이 밖에도 같은 기간 제조 과정에 있는 재공품은 3146억원에서 3704억원으로 17.7%, 생산에 투입할 원재료는 3702억원에서 4335억원으로 17.1% 증가했다. 아직 운송 중인 미착품은 410억원에서 378억원으로 7.9% 감소했다. 원재료나 공정 중인 물량보다 실제 납품에 가까운 단계의 자산이 집중적으로 불어난 구조다. LG이노텍 관계자는 "광학·패키지 등의 사업에서 늘어나는 고객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제품 및 원재료를 비축하면서 재고자산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광학솔루션 재고는 1조9426억원으로 전체의 78.1%를 차지했다. 작년 6월 말 1조210억원보다 90.3% 많다. 패키지솔루션 재고도 같은 기간 1843억원에서 2405억원으로 30.5% 늘었다.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와 함께 패키지솔루션 사업의 외형이 커진 점도 재고 증가에 일부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손민균

◇ 3분기에 쌓던 재고, 올해는 2분기부터 확대

시장에서는 LG이노텍이 재고를 늘리기 시작한 시점이 예년과 달라진 점에 주목한다. LG이노텍은 애플 신제품 공급이 집중되는 하반기에 실적이 커지는 '상저하고' 흐름을 보여왔고, 재고 역시 이에 맞춰 3분기를 전후해 크게 증가하는 패턴이 나타났다.

작년에는 1분기 말 1조5260억원이던 재고가 2분기 1조4605억원으로 줄었다. 이후 3분기 2조3657억원으로 62.0% 급증한 뒤 연말에는 1조7888억원까지 낮아졌다. 하반기 신제품 공급을 앞두고 보유량을 늘렸다가 출하가 진행되면서 다시 감소한 것이다.

올해는 이런 흐름이 앞당겨졌다. 1분기 말 재고자산은 작년 말보다 28.2% 증가한 2조2933억원에 달했고, 2분기에도 8.4% 더 늘었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주요 부품 고객사의 생산 전략 변화로 계절성이 둔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올 2분기 광학솔루션 매출이 기존 전망치를 크게 웃돌았고 신제품 생산을 위한 고정비도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생산 지표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올 상반기 카메라모듈 생산 실적은 2억4174만3000개로 전년 동기 1억9160만1000개보다 26.2% 많았다. 생산설비 평균 가동률은 76.0%에서 85.2%로 9.2%P 높아졌다. 광학솔루션 매출도 7조1911억원에서 9조1285억원으로 26.9% 증가했다.

◇ 스마트폰 수요는 역풍… 메모리값 급등이 변수

LG이노텍이 예년보다 빨리 재고자산을 늘리면서 실적 확대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칩플레이션'(칩+인플레이션)에 따른 스마트폰 수요 감소는 변수로 꼽힌다.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스마트폰용 D램과 낸드의 공급이 빠듯해졌다. 메모리 가격이 오르자 스마트폰 제조 원가도 높아졌고, 완제품 가격 인상과 수요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2억7200만대로 전년 동기보다 6% 감소했다. 옴디아는 높은 메모리 가격으로 부품 비용이 오르면서 제조사들이 제품 가격과 라인업, 유통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애플이 강점을 보이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은 상대적으로 견조하다. 옴디아와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모두 올 2분기 애플의 세계 스마트폰 출하 점유율을 20%로 집계했다. 전체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애플이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LG이노텍 실적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재고자산이 70.2% 증가했다고 해서 출하 물량도 같은 폭으로 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카메라모듈의 올 상반기 평균판매가격(ASP)은 작년 연평균보다 4.5% 올랐고, 핵심 원재료인 이미지센서 가격도 같은 기준으로 4.1% 상승했다. 제품 사양과 부품 단가 변화가 재고 장부가액에도 반영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B2C 기업은 최종 소비자의 수요를 예측해 제품을 생산하지만, LG이노텍 같은 B2B 부품사는 고객사와 생산계획·예상 수요를 사전에 논의한 뒤 필요한 물량을 준비한다"며 "재고가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판매 부진이나 수요 악화로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관계자는 "애플 신제품 판매가 예상대로 이뤄지면 LG이노텍이 확보한 제품 재고가 하반기 매출로 빠르게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