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국가 연구비를 받아 원자현미경을 연구했다. 논문과 특허만 남기는 것보다 이 기술을 산업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남들이 이미 잘하는 장비를 따라가기보다 세상에 없던 장비를 만들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

지난달 23일 서울 구로구 멀티스케일인스트루먼트(MSI)본사에서 만난 제원호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겸 MSI 대표./최효정 기자

지난달 23일 서울 구로구 멀티스케일인스트루먼트(MSI) 본사에서 만난 제원호(66) 대표는 창업 배경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인 그는 수정진동자 기반 센서와 원자현미경(AFM)을 30년 가까이 연구해온 학자다. 연구실에서 축적한 기술을 산업 현장으로 가져가겠다는 목표로 창업에 뛰어들었고, 현재 반도체 양산 공정용 차세대 계측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MSI가 내세우는 핵심은 '멀티헤드 원자현미경'이다. 기존 AFM은 탐침(헤드) 하나가 표면을 순차적으로 스캔하는 방식이어서 원자 단위의 정밀한 3차원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속도가 느려 연구용 장비에 머물렀다. MSI는 여러 개의 헤드가 동시에 서로 다른 영역을 측정하는 구조를 적용해 한계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8개 헤드가 동시에 작동하는 시제품을 구현했으며, 향후 16개, 32개 이상으로 확장 가능한 아키텍처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기술은 이미 산업 현장에서 검증 절차에 들어갔다. MSI는 삼성전자와 샘플 테스트를 진행했으며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메모리 업체와 반도체 장비사들을 대상으로 기술 검증과 사업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 고객사 양산 검증(PoC) 이전 단계지만 연구실을 넘어 실제 고객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제 대표는 단순히 기존 전자현미경(SEM)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목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AI 시대 들어 반도체는 3차원 구조가 복잡해지고 미세화되면서 계측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AFM은 정밀한 3차원 정보를 얻는 데 강점이 있지만 속도가 한계였다. 그는 "양산에서는 잘 보이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며 "속도와 반복성, 안정성, 제어성을 모두 확보해 실제 생산라인에서 수율을 높이는 장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는 식각과 증착, CMP 등 공정장비 내부에 소형 계측기를 탑재하는 '인테그레이션 메트롤로지(Integration Metrology)'를 새로운 시장으로 보고 있다. 공정 직후 장비 안에서 결함을 확인하면 불량 누적을 줄여 수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 대표는 "스탠드얼론 계측장비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지만 공정장비 안으로 계측이 들어가는 시장은 이제 시작 단계"라며 "기존 시장의 점유율을 빼앗기보다 새로운 블루오션을 만드는 것이 MSI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현재 약 40억~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 사이 고객사 PoC를 추진하고, 이를 거쳐 약 2년 내 양산 장비를 출시하는 것이 목표다. 제 대표는 "MSI를 단순한 장비회사가 아니라 반도체 제조 방식을 바꾸는 계측 플랫폼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다음은 제원호 대표와의 일문일답.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30년 가까이 국가 연구비로 원자현미경을 연구했다. 논문으로 끝내기보다 산업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기술집약도가 높고 파급력이 큰 반도체에서 가장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MSI 기술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기존 AFM의 한계는 속도다. 여러 개의 헤드가 동시에 측정하는 멀티헤드 구조를 개발해 현재 8헤드 시제품을 구현했다. 양산에 필요한 속도와 반복성,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사업화는 어디까지 왔나.

"삼성전자와 샘플 테스트를 진행했고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업체, 장비사들과도 논의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고객사 PoC를 추진하고 약 2년 내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정장비 시장을 먼저 공략하는 이유는.

"독립형 계측장비보다 공정장비 안에 계측을 통합하는 시장이 더 큰 기회라고 본다. 공정 중 바로 결함을 확인할 수 있어 수율 향상 효과가 크고 아직 경쟁도 많지 않다."

-창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좋은 장비는 돈만으로 만들 수 없다. 기계와 전자, 소프트웨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팀이 돼야 한다. 작은 일론 머스크 같은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세상에 없던 장비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