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반도체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장비 TC 본더./한미반도체 제공

고대역폭메모리(HBM) 필수 장비인 열압착본더(TC본더) 시장에서 앙숙 관계인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의 올 상반기 성적표가 엇갈렸다. 두 회사 모두 SK하이닉스향 발주가 HBM3E(5세대 HBM)에서 HBM4(6세대 HBM)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시적 수주 공백을 겪었지만, 위기를 버텨내는 체력과 재무 안정성에서는 뚜렷한 격차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한미반도체의 경우 주 고객사인 SK하이닉스에 이어 미국 마이크론까지 주요 고객사로 확보하며 특정 거래처 의존도를 낮춘 반면, 한화세미텍은 여전히 SK하이닉스 단일 고객 구조에 머물러 있는 데다 재무구조 취약성까지 드러나면서 향후 경쟁 구도에서 약점을 노출했다.

◇ 한미반도체, 매출 줄었지만 고객 다변화로 수익성 방어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미반도체의 올 상반기 매출은 3021억원, 영업이익은 138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7%, 11.0% 감소했다. 다만 세부 흐름을 뜯어보면 얘기가 다르다. 올 1분기에는 영업이익이 85억원(영업이익률 17%)에 그치며 시장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어닝 쇼크'를 기록했지만, 올 2분기에는 매출 2511억원, 영업이익 1303억원(영업이익률 51.9%)으로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썼다. 1분기 부진을 2분기에 곧바로 메꾸며 상반기 누계 영업이익률을 46%대까지 끌어올린 셈이다.

수주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수익성을 방어한 배경으로는 고객 다변화가 꼽힌다. 최대 고객사인 SK하이닉스뿐 아니라 마이크론에 대한 납품 규모를 함께 늘리며 파트너십을 강화했고, 그 결과 특정 고객사 발주 지연이 회사 전체 실적을 흔드는 위험을 상당 부분 분산시켰다는 분석이다.

성장 기반을 넓히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이달 이사회에서 150만달러(약 21억원)를 출자해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현지법인 '한미USA'를 설립하기로 의결했다. 국내 고객사 의존도가 높은 다른 장비업체들과 달리, 미국 현지에서 밀착 대응 체계를 갖추고 해외 수주 기반을 선제적으로 넓히고 있는 셈이다.

◇ 매출 늘어도 이익은 제자리, 재무 리스크까지 겹친 한화세미텍

한화세미텍 전시 부스. /한화세미텍 제공

반면 한화세미텍은 올 상반기 매출 2308억원, 영업이익 3억원(영업이익률 0.13%)에 그쳤다. 올 2분기 매출은 전분기 대비 77.6% 급증한 1477억원을 기록했다. 모회사 한화비전 연결 기준으로는 시장 컨센서스 대비 매출 8.2%, 영업이익 34.0%를 웃돌았지만, 세미텍 부문 자체는 매출 증가폭 대비 이익 개선 속도가 더뎠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분기(영업이익률 0.7%)에 이어 '매출은 느는데 이익은 제자리'인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모습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재무구조에 있다. 한화세미텍은 지난해 자본잠식을 면하기 위해 916억원 규모의 이연법인세자산을 계상했는데, 이 자산가치를 실제로 인정받으려면 앞으로 약 3800억원의 누적 과세소득을 벌어들여야 한다. 영업활동현금흐름도 2년 연속 마이너스(2025년 -175억원)를 기록하면서 외상매입금을 늘려 당장의 현금유출을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장비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세미텍은 생산능력(CAPA) 확장이나 신규 고객사 개척에 나서야 할 시점에 이연법인세자산을 지키기 위한 재무 리스크 관리가 우선순위로 걸려 있어, 투자 여력과 속도 면에서 한미반도체를 따라가기엔 아직 한계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두 회사의 온도차가 하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차용호 LS증권 연구원은 "주요 고객사들의 HBM4 장비 발주가 재개되고 있다"며 한미반도체의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실제로 한미반도체의 SK하이닉스향 TC본더 점유율은 2025년 50%에서 올해 60%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관측되는 등 발주 회복이 가시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