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전자기기에 탈착식 배터리 구조를 채택하도록 압박한 유럽연합(EU) 배터리 규정이 대부분의 스마트폰과 웨어러블을 예외로 빼줘, 삼성·애플 등 제조사에 미칠 부담이 예상보다 가벼워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내년 2월 법이 시행되더라도 실제 영향권에 남는 건 휴대용 게임기와 전자책 등에 불과해, 당초 예상보다 파급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10일 EU에 따르면, EU는 2023년 배터리 규정을 신설하며 휴대용 전자기기에 내장된 배터리를 소비자가 직접 분리·교체할 수 있도록 강제했습니다. 배터리가 수명을 다하면 멀쩡한 기기까지 통째로 버려지는 관행을 끊어 전자폐기물을 줄이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규정은 전자기기에 탑재되는 무게 5㎏ 이하 배터리는 모두 교체가 쉬운 설계를 갖추도록 합니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제품은 내년 2월 이후 EU 시장에 신규 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행을 앞두고 소비자 관심이 가장 큰 스마트폰과 웨어러블이 규제망을 빠져나가게 됐습니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스마트워치, 스마트 글라스 등 웨어러블 기기를 배터리 규정에서 예외로 둔다고 발표했습니다. 스마트워치는 피부 접촉과 외부 환경 노출에 견디려면 밀폐형 설계가 필요하며, 무선 이어폰이나 스마트링과 같은 웨어러블은 내부 공간이 협소해 배터리 교환 설계를 할 여유가 없다는 제조사 주장을 받아들인 겁니다. 애플워치·에어팟, 갤럭시 워치·갤럭시 버즈, 레이밴 메타 등은 EU 시장을 위해 제품의 설계를 뜯어고쳐야 하는 부담을 덜었습니다. 이 규정은 특히 EU 출시를 앞둔 레이밴 메타의 진출 장벽으로 꼽혀,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웨어러블을 규제에서 제외한 것이 아니다"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스마트폰도 규제에서 대부분 벗어납니다. EU 집행위원회가 배터리 규정과 스마트폰 에코디자인 규정이 부딪칠 때 후자가 우선한다는 가이드라인을 2025년 발표하면서, 내구성·방수 기준을 충족하는 스마트폰이 탈착식 배터리 채택 의무에서 빠지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 에코디자인 규정에 따라 '1000회 충전 사이클 후에도 초기 용량의 80% 이상을 유지하는 내구성을 갖춘 배터리'를 채택하고 IP67 이상 방진·방수 기준을 충족하면, 탈착식 설계 의무에서 제외됩니다.
대부분 스마트폰은 '1000회·80%' 기준을 충족합니다. 2025년 6월 이후 EU는 스마트폰 배터리의 판매 최소 기준을 '800회·80%'로 설정해, 이후 신규 출시된 스마트폰은 최소 800회를 넘겨야 팔 수 있습니다. 애플은 아이폰15 이후 모델, 구글은 픽셀 8a 이후 모든 모델이 '1000회·80%' 기준을 충족합니다. 삼성전자도 EU 에너지 등급 등록 시스템(EPREL)에 등록된 제품 중 기준을 못 넘는 기기가 없습니다. 갤럭시 S25 등 일부 제품은 '2000회·80%'로 문턱을 여유롭게 넘고, 갤럭시 A16·A26 등 보급형 제품군도 '1200회·80%'로 기준을 뛰어넘습니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스마트폰은 모토로라 모토 G55(800회) 정도로 손에 꼽습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쪽은 따로 있습니다. 휴대용 게임기와 전자책 단말기 등 다른 휴대용 전자기기입니다. 해당 제품군은 '스마트폰 에코디자인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배터리의 내구성이 좋더라도 예외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닌텐도는 사용자가 직접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 EU 전용 스위치2를 내놓기로 했습니다. 닌텐도는 "내년 2월 중순 발효될 EU 배터리 규정에 대비해, 유럽 내 닌텐도 스위치2 등 게임기는 탈착식 배터리 제품으로 순차적으로 교체될 예정"이라고 지난달 발표했습니다. 아마존도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배터리 탈착식 구조로 변경을 검토 중입니다.
정보기술(IT) 매체 테크이코노미는 "언뜻 보면 EU 배터리 규정은 스마트폰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만, 많은 최신 스마트폰은 이미 면제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면서 "웨어러블 규제도 완화돼, 가장 큰 장벽이 제거됐다"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