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오모테산도에 있는 애플 매장./트위터 캡처

애플이 일본에서 아이폰 가격을 인상하자 현지 중고 스마트폰 판매량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소비자들이 새 제품 대신 중고·리퍼폰 제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리퍼폰은 리퍼비시(재정비)와 스마트폰을 합친 합성어다. 반품된 정상 제품이나 초기 불량품, 전시품을 재정비해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부품 공급망까지 바꾸고 있다. 올 1분기 리퍼폰 시장으로 공급된 디스플레이 패널 출하량은 스마트폰 신제품 제조용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은 지난달 18일 일본에서 아이폰 가격을 모델별로 8000~2만5000엔(약 7만2000~22만4000원) 인상했다. 가격 인상 직후 온라인 중고 스마트폰 업체 니코스마는 정오 기준 주문량이 전날과 일주일 전 같은 시간대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주문량은 이후 다소 안정됐지만 최근 몇 달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빌롱(Belong)의 토미타 유 최고마케팅책임자는 "신형 아이폰 가격이 인상되면서 새 제품을 살지 중고 제품을 살지 고민하던 사람들 중 일부가 중고 제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중고 모델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있어 중고 제품 구매를 고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급등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비슷한 사례로는 4년 전 아이폰 가격 인상 때 정도를 꼽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애플이 지난해 9월 아이폰17 출시 이후 가격을 인상한 국가는 일본과 튀르키예다. 일본 현지에서는 이번 가격 조정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엔화 약세를 꼽기도 했다. 도쿄 소재 MM리서치연구소의 하라 겐스케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9월 이후 달러 대비 가치가 10% 이상 하락한 통화는 일본 엔화와 튀르키예 리라 정도"라며 "최근 메모리와 저장장치 가격 급등이 아직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에서 아이폰 가격이 추가 인상될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MM리서치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중고 스마트폰 시장은 7년 연속 성장해 2025 회계연도에는 361만대, 시장 점유율 10%를 기록했다. 연구소는 2029 회계연도에는 시장 규모가 500만대를 넘어 전체 스마트폰 시장의 15%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고폰 시장 확대는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개인 중고폰 거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국내 개인 중고폰 거래 규모는 2023년 620만대에서 2025년 681만대로 증가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CS인사이트는 올 1분기 중고 기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 증가했지만, 2026년 전 세계 중고폰 시장은 전년 대비 15.4%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CCS인사이트는 보상 판매(Trade-in)가 발달한 국가일수록 중고폰 시장 성장세가 더 클 것으로 봤다. 벤 해튼 CCS인사이트 분석가는 "메모리 칩 위기가 가까운 시일 내에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더 많은 사람이 저렴한 스마트폰을 찾아 중고 시장으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다음 달 공개될 차세대 아이폰 역시 가격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는 만큼 중고·리퍼폰 수요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료=옴디아, 그래픽=챗GPT

중고폰 시장 확대는 부품 공급망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시장정보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 1분기 리퍼폰 시장으로의 디스플레이 패널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한 2억9800만대를 기록하며, 같은 기간 스마트폰 제조업체로의 출하량(2억8900만대)을 넘어섰다. 리퍼폰용 디스플레이는 소비자의 고장 난 스마트폰 수리용, 리퍼비시 전문 업체의 재생 스마트폰 생산용, 애프터마켓 교체 부품용 등으로 사용된다. 공급망이 복잡해 최종 수요를 정확히 집계하기는 어렵지만, 리퍼폰용 패널 출하량이 신제품 제조용을 앞질렀다는 것은 리퍼비시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메모리 가격 급등으로 신제품 스마트폰 생산이 둔화된 반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생산 능력을 쉽게 조정하기 어려운 산업 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조이궈 옴디아 디스플레이 부문 수석 분석가는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LCD 및 OLED 디스플레이 수요가 크게 감소하면서 공급업체들은 더 많은 패널을 리퍼 시장으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OLED 패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올 1분기에는 OLED 패널이 리퍼 스마트폰 시장 디스플레이 패널 출하량의 7%를 차지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2%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는 리퍼 시장에서 고급 디스플레이의 공급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