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이 개발한 최첨단 폐쇄형 인공지능(AI) 모델만 출시 전 안전성 검토 대상으로 삼고, 미국산 오픈웨이트 모델은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중국산 오픈웨이트(가중치 공개) 모델의 빠른 추격에 맞서 미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육성하고, 스타트업의 AI 접근성을 보장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또 과도한 규제가 오픈웨이트 개발사의 시장 진입을 막아 소수 대형 폐쇄형 모델 기업의 독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일(현지 시각) 주요 AI 기업 관계자들에게 최근 마련한 AI 안전성 검토 지침을 공유했습니다. 새 지침에 따르면 오픈AI, 앤트로픽 등 미국 기업이 개발한 폐쇄형 모델 가운데 벤치마크(성능 평가) 기준 최첨단 사이버 보안·해킹 역량을 보유한 모델은 정부의 사전 안전성 검사 대상에 포함됩니다.
이번 제도는 지난 4월 앤트로픽이 고도의 해킹 능력을 갖춘 '미토스'를 일반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뒤 최첨단 AI 모델의 해킹 역량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마련됐습니다. 이후 지난 7월 오픈AI와 앤트로픽의 최첨단 모델이 시험 과정에서 외부 시스템에 무단으로 접근한 사실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사전 검토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됐습니다.
WSJ은 폐쇄형 모델을 개발해 온 오픈AI와 앤트로픽, 구글이 향후 최신 모델을 발표하기 전에 검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정부가 전체 지침과 적용 기준이 되는 벤치마크를 공개하지 않아 실제로 어떤 모델이 기준을 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오픈웨이트 모델 역시 향후 사이버 역량이 더욱 강해질 경우 사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도 전했습니다.
◇中 오픈모델 추격에 자국산 생태계 육성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조치가 미국 기업들의 오픈웨이트 모델 투자를 촉진해 자국 AI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특히 지난달 출시된 중국 AI 스타트업 문샷AI의 오픈웨이트 모델 '키미 K3'도 오픈웨이트 규제에 반대하는 논리에 힘을 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키미 K3는 블라인드 프런트엔드 코딩 평가에서 앤트로픽의 페이블 5와 오픈AI의 'GPT-5.6 솔'을 앞섰고, 일부 종합 텍스트 평가에서도 미국 최첨단 모델에 근접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미국이 강한 사전 심사 제도를 도입할 경우 중국 기업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채 미국 기업만 불리해질 수 있다는 데이비드 삭스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의 주장에 힘이 실렸다고 평가했습니다.
숀 케언크로스 미 국가사이버국장도 최근 열린 해킹 콘퍼런스에서 "미국산 오픈 시스템을 전 세계가 가장 선호하는 선택지로 만드는 것이 행정부의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오픈웨이트 규제가 대형 폐쇄형 모델 기업의 시장 지위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규제 반대 논거로 제기돼 왔습니다. 오픈웨이트 모델에 대한 심사가 강화되면 경쟁 기업의 모델 출시가 어려워져 기존 대형 폐쇄형 모델 기업의 시장 지배력만 고착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픈웨이트 모델을 내려받아 자체 서비스에 맞게 수정하는 스타트업과 연구 기관의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美 오픈웨이트 모델은 제외…中 모델은 별도 대응
'라마'와 '네모트론' 등 오픈웨이트 모델을 각각 개발한 메타와 엔비디아는 이번 결정으로 규제 부담을 상대적으로 덜게 됐습니다. 두 회사의 오픈웨이트 모델은 출시 전 정부에 모델 접근 권한을 제공하고 검증 받는 절차에서 제외됩니다. 스타트업과 기업, 연구기관도 오픈웨이트 모델을 내려받아 자체 시스템에 맞게 저비용으로 수정·운영할 수 있습니다.
한편, 중국산 오픈웨이트 모델에 대한 대응 방향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전 검토 체계는 미국 정부와 협력할 유인이 있는 AI 개발사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중국 모델을 직접 통제하는 수단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악시오스는 "미국 정부가 중국 기업의 증류를 통한 지식재산권 탈취 의혹과 관련해 수출 통제 명단(Entity list) 등재, 공급망 제한, 중국 모델 사용 자제 권고 등 별도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워싱턴의 정책 컨설팅 기업 모뉴먼트 어드보커시의 조지프 회퍼 AI 부문 책임자는 "중국 모델 사용 제한은 접근 및 조달과 관련된 문제로 별도로 협의되고 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