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사업장별로 따로 운영하던 노사협의회를 하나의 전사 기구로 통합해 운영하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디바이스경험(DX·완제품) 부문 조합원의 대규모 이탈로 전사 과반 노조 지위를 잃은 삼성그룹 초기업 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초기업 노조)는 새 협의회의 근로자위원 선거에 조직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줄어든 영향력을 만회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6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전사 노사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동안 근로조건을 다루는 노사협의회를 10개 안팎 사업장에서 운영해 왔는데, 이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 기존 사업장별 근로자위원의 임기는 유지하되 임기가 끝나는 대로 개별 협의회 운영을 종료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전날 직원 공지를 통해 "사업장 단위로 노사협의회를 운영해 왔으나 고용노동부 권고 사항을 반영해 전사 단위 노사협의회를 설치·운영한다"며 "전사적 기구에서 노사 협의 사항을 다룸으로써 모든 임직원의 목소리를 더욱 넓게 수렴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사 노사협의회에는 사업장별 대표들이 근로자위원으로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업 노조는 앞서 DS 정책위원회 산하에 평택·기흥·화성·DSR·천안·온양 등 사업장별 대표를 구성했으며, 이 조직을 활용해 전사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거에 참여할 계획이다. 디바이스솔루션(DS·반도체) 부문의 조직력을 발판으로 소속 조합원을 근로자위원에 당선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최승호 초기업 노조 위원장도 평택 사업장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다만 초기업 노조가 근로자위원 다수를 확보하더라도 회사를 총파업 직전까지 몰고 갔던 과반 노조의 영향력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노사협의회는 인사·보상·복지·인력 운영 등에 관한 공식 협의 창구지만, 노사 관계의 핵심인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임단협을 노사협의회가 아닌 교섭대표노조와 진행하고 있는 만큼, 초기업 노조가 노사협의회 위원 자리를 다수 확보하더라도 실질적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 초기업 노조 "노사협의회 장악"… DS 조직 앞세워 선거 참여
초기업 노조는 전사 노사협의회 구성이 확정된 뒤 조합원에게 "과반수 노동조합 달성 이전 노사협의회 장악으로 근로자대표 지위 확보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전사 과반을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렵다고 보고, 직원 투표로 구성되는 노사협의회부터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구상이다.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노사협의회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을 각각 3명 이상 10명 이하의 같은 수로 구성한다. 전사 과반 노조가 없으면 근로자위원은 근로자 과반수가 참여한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선출한다. 사업장 특성상 필요하면 부서별로 위원선거인을 먼저 뽑고 이들이 근로자위원을 선출하는 간접 선거도 가능하다.
과반 노조가 있으면 해당 노조 대표와 노조가 위촉한 사람이 근로자위원을 맡는다. 초기업 노조는 전사 과반 지위를 잃으면서 근로자위원을 직접 위촉할 권한을 상실했다.
◇ 인사·성과배분 협의 가능하지만 임금협상 권한 없어
노사협의회는 생산성 향상과 성과배분, 인사·노무관리 제도 개선, 인력 배치와 고용조정의 일반원칙, 임금 지급 방법·체계, 안전·보건, 근로자 복지 등을 회사와 협의할 수 있다. 회사는 경영 계획과 실적, 분기별 생산계획, 인력계획, 경제·재정 상황을 정기 회의에서 보고하거나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노사협의회는 노동조합을 대신할 수 없다. 근로자참여법에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과 그 밖의 활동이 노사협의회 제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무노조 경영 시절 노사협의회 사원대표와 전 직원의 임금 인상률을 협의해 왔다. 2024년 노조 설립 이후에도 이런 관행이 이어져 노사협의회와 협의한 인상률을 먼저 발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는 교섭대표노조와 임금교섭을 진행하면서 노사협의회의 역할이 과거보다 축소됐다. 초기업 노조도 조합원들에게 "전사 노사협의회가 구성되더라도 협의회는 교섭에 참여할 수 없다"며 이미 합의한 2026년 임금협약을 뒤집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 DS 사업장 안전·보건 대표도 추진… 전사 권한과는 별개
초기업 노조는 전사 노사협의회 선거와 별도로 평택·기흥·화성 등 DS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대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회사와 협의하고 있다. 삼성전자 전체에서는 과반이 아니지만, 조합원이 몰린 개별 반도체 사업장에서는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초기업 노조에 가입했다는 주장이다.
과반 지위가 확인되면 초기업 노조는 해당 사업장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근로자 측 위원 구성을 주도할 수 있다. 반도체 생산 시설의 유해·위험 요인과 작업환경, 산업재해 예방계획, 사고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심의·의결하는 데도 참여한다. 다만 권한은 해당 사업장의 안전·보건 현안에 한정된다. 과반 노조로서 전사 근로자대표 지위를 갖고 취업규칙 변경이나 근로시간제도, 임금·성과급, 고용 조정 등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초기업 노조는 조합원이 한때 7만6000명을 넘어서며 지난 4월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과반 노조가 됐다. 5월 임금협약에는 DS 부문에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특별경영성과급을 지급하는 반면, DX 부문에는 1인당 600만원 상당의 자사주를 주는 내용이 담겼다. 보상 격차에 반발한 DX 직원들의 이탈이 이어지면서 조합원 수가 빠르게 줄었고, 과반 노조 선언 약 한 달 반 만에 지위를 잃었다. 지난 4일 기준 초기업 노조 가입자는 5만3825명으로 축소된 상태다.
반면 DX 직원 중심의 삼성전자노동조합 동행은 이날 3만130명으로 늘었다. 초기업 노조는 내년 DS와 DX의 교섭 단위를 분리하고, 분리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교섭 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단독 교섭대표노조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