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AI 반도체(NPU) 스타트업 퓨리오사AI가 올해 연매출 1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며 본격적인 사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퓨리오사AI는 생성형 AI 서비스의 추론 연산에 특화된 AI 가속기(NPU)를 개발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으로, 2세대 AI 추론 가속기 '레니게이드(RNGD)' 양산과 해외 공급을 확대하며 기술력을 실제 사업 성과로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퓨리오사AI를 비롯한 국내 AI 반도체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데스밸리(Death Valley)' 구간에 진입했다는 신중한 평가도 나온다. 데스밸리란 스타트업이 기술 개발과 제품 양산에는 성공했지만, 고객 확보와 반복 수주, 추가 자금 조달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시기를 의미한다. 칩 성능을 입증하는 것과 실제 시장에서 지속적인 매출을 창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라는 지적이다.

퓨리오사AI RNGD(레니게이드) 기반 추론 전용 서버/퓨리오사AI 제공

◇ 퓨리오사AI "올해 2만장 양산…1000억원 매출 목표"

퓨리오사AI는 지난 5일 언론과의 라운드테이블에서 올해 레니게이드 2만장을 생산해 연매출 800억~1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재 확보한 구매주문(PO)은 약 200억원 규모다. 회사는 올해 양산 물량 가운데 7000~8000장은 고객사에 공급하고, 나머지는 자체 생태계 구축과 레퍼런스 확보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퓨리오사AI 관계자는 "양산 개시 5개월 만에 200억원 규모의 PO를 확보했다"며 "올 하반기에는 보다 의미 있는 상용화 성과를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객사 외연도 확대하고 있다. 삼성SDS 클라우드, LG CNS, LG유플러스, 다음 AI 요약 서비스 등에 레니게이드가 적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스웨덴 15MW 규모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참여도 발표했다.

회사는 "AI 인프라 확대 속도가 반도체 공급 능력을 앞지르면서 고성능·고효율 추론 솔루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레니게이드는 GPU급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전력 효율을 높여 총소유비용(TCO)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차세대 제품 개발도 진행 중이다. 퓨리오사AI는 브로드컴과 협력해 TSMC 2나노 공정과 HBM4를 적용한 3세대 AI 가속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2028년 상반기 샘플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퓨리오사AI 관계자는 "생산 캐파(CAPA)가 확보되지 않았다면 개발 자체를 시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TSMC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파트너와의 협력 기반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브로드컴과의 협력에 대해서는 "단순 IP 공급이 아니라 시스템 레벨 솔루션을 공동 개발하는 형태"라고 밝혔다.

퓨리오사AI가 공개한 2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 레니게이드./퓨리오사AI 홈페이지

◇ "기술보다 사업성이 관건"…반복 수주가 시험대

다만 시장의 시각은 다소 신중하다. AI 반도체 산업은 칩을 개발하고 양산하는 것보다 실제 고객이 지속적으로 구매하도록 만드는 과정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공개된 PO 규모는 약 200억원으로, 회사가 제시한 연매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추가 수주 확대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부터 패키징, 고객 인도까지 약 10개월이 소요되는 구조인 만큼 실제 매출 인식도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레니게이드의 성능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면서도 "기업 입장에서는 엔비디아의 CUDA 기반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개발 환경이 이미 구축돼 있는 만큼 이를 대체할 유인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과제나 초기 실증 사업을 통한 공급은 가능하겠지만 민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대규모 도입에 나설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며 "AI 반도체의 경쟁력은 첫 공급보다 반복 발주에서 드러난다. 재주문이 이어져야 비로소 사업성이 입증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고민은 퓨리오사AI만의 문제가 아니다. 리벨리온, 딥엑스, 모빌린트 등 국내 NPU(신경망처리장치) 기업들도 잇달아 양산 단계에 진입했지만 공통적으로 사업화라는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은 하드웨어 성능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생태계, 개발도구, 고객 지원, 서버 최적화, 장기 공급 능력까지 종합적인 경쟁력이 요구된다.

◇ 추론 시장 확대는 기회…결국 사업화 성과가 관건

반면 기회 요인도 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AI 학습보다 추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와 운영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전력 효율성이 핵심 경쟁 요소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를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쉽지 않지만, 추론 시장이 확대될수록 특정 워크로드에서는 전문 AI 가속기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한편 퓨리오사AI는 국민성장펀드를 통한 총 8000억원 규모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회사는 프리IPO 라운드를 조만간 마무리하고 확보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3세대 제품 개발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투자 과정에서는 민간 투자 확약이 목표 규모에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정책자금이 먼저 승인되면서 형평성 논란도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AI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지원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투자의 성패는 실제 사업화 성과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간에 엔비디아를 대체하기는 어렵겠지만 추론 시장이 커질수록 고효율 NPU의 기회도 함께 확대될 것"이라며 "결국 시장이 판단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반복 수주와 매출"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