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사들이 게임 개발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가운데, 캐릭터와 일러스트, 콘텐츠에 AI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이용자들이 반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다른 산업에서는 AI 이미지와 콘텐츠 활용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창작물이 아닌 AI로 생성된 이미지에 대한 저항이 크다는 지적이다.
6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시프트업은 지난달 말 차기작 '스텔라 블레이드: 블러드레인'의 사운드 트랙 '워너 비 인 러브(Wanna be in LOVE)'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는데, 해당 영상이 게임 이용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AI를 활용해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 영상은 캐릭터의 동작과 표정, 화면 전환 등에 AI 특유의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공개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댓글 8300여 개가 달릴 정도로 논란이 확산했다. 이용자들은 완성도가 낮은 AI 생성 콘텐츠를 뜻하는 'AI 슬롭(AI slop)'이라며 혹평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영상 중심에 있는 캐릭터 '이비'는 우리 아티스트와 모델러들이 1년 이상 헌신해 창조한 캐릭터로, AI가 처음부터 만든 것이 아니다"며 "AI는 회사가 만든 데이터와 디자인,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그려내는 (렌더링) 도구로 사용됐다"고 해명했다. 창작자의 의도가 개입된 보조적 수단으로 AI를 사용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취지다.
올해 들어 생성형 AI로 제작한 콘텐츠가 늘면서 게임업계에서는 AI 활용 여부가 민감한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펄어비스의 '붉은사막'은 지난 3월 출시 후 게임 속 말의 다리가 세 개로 보여 AI를 활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회사는 이용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관련 요소를 수정했다. 넥슨 산하 엠바크스튜디오가 개발한 '아크 레이더스'는 이미지가 아닌 음성 생성 AI(TTS)를 활용한 사실이 알려지며 역풍을 맞았다. 이에 엠바크스튜디오는 일부 대사를 실제 성우의 목소리로 재녹음했다.
업계에서는 게임 이용자들이 AI 창작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단순한 완성도 문제를 넘어 창작 가치에 대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AI 특유의 부자연스러운 표현뿐 아니라 인간 창작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결과물이라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게임처럼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팬덤이 형성되는 콘텐츠는 캐릭터와 일러스트 등 창작 요소의 비중이 큰 만큼, AI가 제작에 참여한 디자인에 대한 반감도 다른 분야보다 크다.
생성형 AI의 학습 방식을 둘러싼 부정적인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이미지 생성 AI는 기존 작품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구조여서 저작권 침해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게임 이용자들은 캐릭터와 일러스트, 보이스를 하나의 창작물로 인식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만큼, AI가 제작한 결과물에는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특히 생성형 AI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서구권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거부감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에 신작이 공개될 때마다 이용자들이 AI 활용 여부를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게임사들은 해명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의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와 넷마블의 '신의 탑: 새로운 세계'는 공개된 일러스트가 AI로 제작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개발사가 직접 AI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용자들이 AI를 개발 도구로 활용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지 않지만, AI가 인간 창작 영역을 대체하는 경우 반발이 크다"며 "초기에는 AI가 게임 디자인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캐릭터와 일러스트 등 이용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창작물은 앞으로도 사람이 직접 제작하는 방식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