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가 미국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사들여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광반도체를 생산한다. 통신장비사가 부품 조달을 넘어 반도체 공장을 인수해 직접 생산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노키아는 AI 시대를 맞아 통신장비사에서 데이터센터 인프라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 AI가 부른 광반도체 수요 폭증
5일 노키아에 따르면, 노키아는 최근 올해 2분기 실적 발표를 하며 "NXP반도체가 소유한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 반도체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노키아는 이 공장을 인듐인화물(InP) 반도체 생산 라인으로 전환한 뒤, 내년 초부터 공장 일부를 임차하는 방식으로 양산에 돌입한다. 공장 인수는 2029년 1분기에 최종 마무리할 계획이다. 노키아는 "챈들러 공장 인수를 통해 반도체 제조 역량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InP는 실리콘처럼 반도체 소재 중 하나다. 실리콘 반도체가 연산 및 저장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달리, InP 반도체는 전기 신호를 빛으로,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광반도체로 불린다. 광통신 장비의 핵심 부품인데, 데이터센터 내부 통신 방식이 구리(Cu)에서 광(光)으로 바뀌며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은 값싼 구리가 데이터를 전송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AI 확산으로 전송량이 폭증해 대역폭과 속도에서 앞서는 광통신이 부상했다.
노키아가 InP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이유는 대신 만들어줄 곳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InP 반도체는 팹(공장)이 미국 코히런트, 루멘텀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AI 데이터센터 물량을 안정적으로 감당할 만큼 규모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이 없다. InP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고객사의 광통신 장비 주문을 해소할 수 없어 생산 능력을 직접 확보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저스틴 호타드 노키아 최고경영자(CEO)가 이번 인수를 두고 "자체 수요를 뒷받침할 추가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시장의 공급 제약을 감안해 더 큰 선택지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조사 업체 퓨처럼에 따르면 현재 광트랜시버(광 송·수신기) 수요는 InP 공급난 탓에 공급의 두 배를 웃돈다. 이에 엔비디아는 지난 3월 코히런트, 루멘텀에 각각 20억달러(약 2조8500억원)를 투자해 구매 계약을 맺었다. 마이클 헐스턴 루멘텀 CEO는 최근 "InP 반도체 공급난은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공급난보다 훨씬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존 고객사인 통신 장비 기업이 광통신용 반도체 레이저를 수백 개 단위로 주문했다면, 엔비디아와 하이퍼스케일 클라우드 기업은 수억 개를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 광통신 기업으로 바뀌는 노키아
노키아의 챈들러 공장 인수는 부품 내재화를 넘어 회사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휴대전화 사업 부문을 매각한 이후 통신 장비로 주력 업종을 전환한 노키아는 AI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 인프라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노키아는 작년 광통신 장비사 인피네라를 인수했고, 이때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인피네라 InP 팹을 손에 넣었다. 이번에 챈들러 공장을 인수한 데 이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패키징(후공정) 공장의 생산 능력을 10배로 증설하는 투자를 진행 중이다. 패키징 공장 역시 인피네라를 인수하며 획득한 것이다.
실제 광통신 사업은 노키아 실적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노키아는 올해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9%(이하 환율 변동 제외 기준) 증가한 48억1500만유로의 순매출을 기록했는데, 광통신 순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 AI 및 클라우드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순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5% 늘었다. 이에 힘입어 뉴욕 증시에서 노키아 주가는 연중 52.4% 상승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노키아의 북미 광 네트워크 시장 점유율은 2024년 6.3%에서 2025년 27.3%로 성장했다"며 "인텔에서 데이터센터 및 AI 사업부를 총괄한 호타드가 노키아의 신임 CEO로 임명되며 노키아의 AI 인프라 사업 확장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아만다 라이언스 에너지그룹캐피털 리서치 책임의 발언을 인용, "노키아는 현재 AI 기업처럼 평가받고 있지만, 아직 AI 기업에 기대되는 수익성을 입증하지는 못했다"며 투자자들은 높은 금리가 데이터센터 구축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