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HBM4 제품 사진./삼성전자

한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설비투자를 바탕으로 2031년까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선두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다만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심에서 구글 등 빅테크의 자체 인공지능(AI) 가속기로 빠르게 분산될 것으로 예상됐다.

프랑스 시장조사업체 욜그룹의 조지핀 라우 산업분석가는 4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FMS(Future of Memory and Storage) 2026'에서 한국이 2031년까지 메모리 산업의 선두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라우 분석가는 한국 정부가 향후 5년간 웨이퍼 생산 능력을 두 배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투자를 확대하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을 비롯한 차세대 D램과 낸드 분야에서 생산 능력과 기술 개발을 동시에 확대하면서 한국의 우위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메모리 소비 지역은 미국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라우 분석가에 따르면 세계 메모리 소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37%에서 작년 52%로 15%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중국 비중은 35%에서 29%로 6%포인트 하락했다.

미국과 중국의 합산 비중은 72%에서 81%로 높아졌다. 미국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메모리 수요를 끌어올린 반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가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과 소비를 제한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라우 분석가는 메모리 시장이 AI 모델 학습 중심의 'AI 1.0'에서 추론 수요가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AI 2.0'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AI 서비스가 실제 산업과 소비자 제품에 적용되면서 데이터 처리량과 메모리 용량·대역폭 요구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품 개발 속도도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기존에는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약 18개월이 걸렸지만, AI 가속기의 출시 주기가 짧아지면서 메모리 기업도 약 12개월 안에 새 제품을 공급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HBM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의 영향력이 점차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의 에이브릴 우 수석연구부사장은 전체 HBM 수요에서 엔비디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년 66%에서 올해 58%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를 비롯해 아마존·메타 등 클라우드서비스사업자(CSP)가 자체 개발한 주문형반도체(ASIC) 도입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ASIC은 특정 기업의 AI 서비스와 연산 방식에 맞춰 설계한 반도체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AI 서버 출하량 가운데 ASIC 기반 제품 비중이 27.8%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GPU가 여전히 69.7%를 차지하지만, 구글과 메타 등의 자체 AI 칩 확대로 ASIC 서버의 증가율이 GPU 서버를 웃돌 것으로 분석했다.

HBM 수요 자체는 엔비디아의 비중 하락과 무관하게 확대될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엔비디아가 최대 HBM 수요처 지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구글 TPU 등 빅테크의 자체 AI 가속기가 새로운 수요처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 수석연구부사장은 FMS에서 소비자용 메모리 생산 능력이 HBM4·HBM4E와 고용량 낸드로 이동하면서 2026~2028년 공급 병목이 이어지는 '구조적 슈퍼사이클'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AI용 고부가 제품이 웨이퍼 투입량을 흡수해 범용 D램과 낸드 공급까지 제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 메모리 기업의 기술 추격도 변수로 제시됐다. 욜그룹은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D램을 분석한 결과 10나노급 3세대인 1z 공정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했다. 업계 선두 기업들이 2019년 확보한 기술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