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1000만명을 초과하는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하이퍼클로바X 시드(HyperCLOVA X SEED)를 상업 목적으로 이용하려면, 네이버에 라이선스를 요청해야 합니다."
"카나나-2(Kanana-2)를 온디바이스(내장형) 형태로 판매하거나, 고객사에 온프레미스(구축형) 솔루션으로 판매하려면, 카카오의 별도 라이선스가 필요합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경량 언어 모델(SLM)을 오픈소스(개방형)로 공개하며 내건 단서 조항입니다. 카카오는 최근 카나나-2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상업 활용 가능한 라이선스를 적용해 개발자, 스타트업, 연구 기관 등 누구나 별도의 제약 없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네이버는 작년 4월 하이퍼클로바X 시드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상업 목적으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국내 인공지능(AI) 생태계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습니다. 두 회사 모두 '상업적 활용이 가능한 오픈소스'를 표방하지만, 각자 단서 조항을 뒀습니다. 네이버는 경쟁사를 콕 집어, 카카오는 온디바이스 등 사업 영역을 콕 집어 상업적 활용을 잠갔습니다.
◇대부분 동일한 라이선스 조항, '상업적 활용 조건'에서 갈렸다
4일 조선비즈가 오픈소스 AI 플랫폼 허깅페이스에 게시된 하이퍼클로바X 시드와 카나나-2의 라이선스 조항을 분석한 결과, 두 모델의 조항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파생 모델을 어디까지로 볼지 정의한 조항부터, 모델을 재배포할 때 지켜야 할 의무, 모델이 내놓은 결과물의 권리 귀속, 분쟁이 생겼을 때의 처리 방식까지 두 문서는 사실상 같은 틀로 쓰였습니다.
'상업적 이용을 위한 추가 조건' 조항에서 두 문서는 갈라집니다. 네이버는 경쟁사의 활용을 막았습니다. 첫 번째로 MAU가 1000만명을 초과하는 기업 또는 해당 기업의 계열사는 하이퍼클로바X 시드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카카오, 구글, 인스타그램,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과 같은 플랫폼 기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로 네이버가 제공하는 제품·서비스와 직접 경쟁하거나 실질적으로 유사한 제품·서비스를 배포할 때 상업적 활용이 불가능합니다. 이들은 네이버에 별도로 라이선스를 요청해야 하며, 부여 여부는 네이버의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
카카오는 사업 영역을 지목해 상업적 활용을 막았습니다. ▲카나나-2에 접근하는 권리를 판매하거나 ▲카나나-2를 온프레미스나 시스템 통합(SI) 솔루션으로 고객사에 판매하거나 ▲카나나-2를 온디바이스 형태로 판매하는 사례를 제한합니다.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면 카카오로부터 별도 상업적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합니다. 부여 여부는 카카오의 재량에 따릅니다.
예를 들어 배달의민족이 'AI 리뷰 요약' 기능을 구현해 애플리케이션(앱)에 적용하려는 상황을 가정하면, 카나나-2는 무료로 쓸 수 있지만 하이퍼클로바X 시드는 'MAU 1000만명' 조항에 걸려 무료로 쓸 수 없습니다. 반대로 하이퍼클로바X 시드는 일부 플랫폼 기업 및 경쟁사에만 선을 긋고 나머지 영역은 열어둬, 특정 사업 영역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습니다.
◇네이버가 지킨 건 경쟁 구도, 카카오가 지킨 건 수익 경로
단서 조항을 살펴보면, 네이버와 카카오가 경량 언어 모델(SLM)을 오픈소스로 풀면서도 무엇을 방어선으로 지키려 했는지 드러납니다. 두 회사 모두 모델을 개방해 개발자 저변과 국내 AI 생태계 기여라는 명분은 챙기면서도, 정작 자사 사업의 핵심만은 라이선스 조문으로 지켜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이버는 자사가 만든 모델이 경쟁 서비스 엔진으로 쓰이는 상황을 차단할 필요를 조문에 반영했습니다. 네이버는 국내 검색을 장악한 데 더해, 커머스에서는 스마트스토어와 네이버쇼핑, 콘텐츠에서는 웹툰·시리즈·치지직, 기업 인프라에서는 네이버클라우드까지 영역마다 상위권 서비스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경쟁 전선이 넓은 만큼, 지키려는 것은 '경쟁 구도' 자체입니다.
카카오 역시 커머스, 콘텐츠, 클라우드 등을 두루 거느리지만 이 사업들은 대체로 카카오톡이라는 단일 수퍼 앱에 얹혀 있습니다. 이용자를 붙드는 힘은 개별 서비스 경쟁력보다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 자체에서 나오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카카오가 경계하는 것은 경쟁사가 자사 모델로 유사 서비스를 만드는 일보다, 자신이 개방한 모델이 남의 돈벌이가 되는 '수익 경로'입니다. 카카오의 현재 AI 전략은 오픈AI 제휴 등 소비자 서비스에 무게가 실려 있지만, 기업 수요가 큰 온디바이스·온프레미스 시장으로 움직일 여지를 확보해 둔 장치로 풀이됩니다. 카카오는 카나나-2를 온디바이스 환경에 최적화해 설계했다고 소개합니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두 모델이 지향하는 사업 모델이 다르기 때문에 단서 조항도 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교수는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 시드를 인터페이스(API) 형태로 서비스하는 것을 지향해 트래픽을 뺏는 경쟁사를 막았다"면서 "카카오는 카나나-2의 온디바이스 최적화를 지향해, 비상업적으로 시제품을 만들어보는 단계까지는 열어두되 본격적으로 사업을 할 때 돈을 내는 구조를 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두 회사의 단서 조항이 다른 것은 양사의 AI 역량 차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위 교수는 "네이버 조항은 '국내에서 AI 역량에 자신 있으니 주요 경쟁자만 빼고 많이 써달라'는 의미를 내포한다"며 "경쟁사만 제거한 건 공세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카카오 조항은 '돈이 될 만한 사업은 우리가 하겠다'고 선을 그은 것이라, 훨씬 수세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