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전산실'로 불렸던 국내 IT서비스 기업들이 산업 현장에 적용되는 피지컬 인공지능(AI) 시장 선점에 나섰다. 로봇, 대형 설비 등 피지컬 AI의 하드웨어는 제조사가 담당하지만, 차세대 공장의 두뇌에 해당하는 데이터와 로봇·AI 플랫폼은 IT서비스 기업이 강점을 지닌 분야로 꼽힌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래 로봇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삼성·LG·SK·포스코 등 국내 대표 제조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들 그룹 산하 IT서비스 기업들도 로보틱스와 피지컬 AI를 차세대 먹거리로 삼고 관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산업 현장의 로봇과 설비가 스스로 업무를 판단해 사람과 일을 효율적으로 나눠 수행하는 공장 운영체제(OS)를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율형 '지능형 공장'을 구축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AI 기반 '지능형 공장'에서는 다양한 로봇을 하나의 통합 체계에서 관리·운영하고, 로봇을 생산설비와 공장 제어시스템, 데이터 플랫폼 등에 연결해 공정 흐름을 최적화해야 한다. IT서비스 기업들은 20년 이상 그룹사의 제조 시스템을 구축 경험을 토대로 구축한 생산 현장 데이터를 활용해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운영체제를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포스코DX는 제철소의 주요 공정을 AI로 제어하고, 대형 설비가 사람 없이 스스로 작동하는 '인텔리전트 팩토리'를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회사는 은퇴를 앞둔 숙련공이 보유한 암묵지를 피지컬 AI의 핵심 데이터로 변환해 고난도 반복 작업을 자동화·자율화하고, 기존에 사람이 수행하던 판단과 제어를 AI가 담당하는 제조 AI 기반 체계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광양 제철소나 포항 제철소에는 핵심 공정마다 대형 설비를 사용하는데, 대부분 고난도에 위험한 작업이라 이를 무인화해서 현장 안전성과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포스코DX는 철강재를 옮기는 대형 크레인, 야드(작업장)의 원료를 이송하는 리클레이머 장비, 선박 원료 하역기 등 수십 톤에 달하는 설비에 피지컬 AI를 접목해 스스로 판단하고 제어하도록 하는 '설비 로봇화'를 추진 중이다. 이들 설비는 현재 시운전 단계이며, 이르면 올해 하반기 상용화해 제철소에 도입할 예정이다.
SK AX는 지난달 제조 현장을 로봇 중심으로 전환하는 '제조 RX 풀스택 서비스'를 본격화한다고 발표했다. 디지털 트윈(현실 공간을 가상 공간에 구현하는 기술)과 피지컬 AI를 결합해 공장 전체가 스스로 판단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자율형 제조 공장을 구현하는 게 목표다. 이 서비스는 로봇을 도입하기 전 가상 환경에서 위험 요소를 검증하고, 공장에서는 로봇과 생산관리시스템(MES), 설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결해 공장 전체를 통합 관제하는 게 특징이다.
SK AX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에서 현장 데이터 축적과 관련 시스템과 실증 모델을 검증 중이며, 이를 조선 산업으로도 확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LG CNS는 지난 5월 로봇 학습부터 통합 관제까지 전 주기를 관리하는 로봇전환(RX) 플랫폼 '피지컬웍스'를 선보였다. 지능형 로봇을 AI로 빠르게 학습시켜 기존 수개월씩 걸리던 산업용 로봇의 현장 투입 기간을 1~2개월로 단축하는 게 목표다. 또 제조사가 서로 다른 로봇과 다양한 형태의 로봇을 하나의 체계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회사는 국내 제조·물류 현장에 적용해 피지컬웍스를 고도화한 뒤 다른 분야로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현재 LX판토스, 컬리 등 주요 산업 분야 고객사 20곳 이상과 로봇 개념검증(PoC)을 진행 중이거나 마친 상태다.
최근에는 LG전자와 1897억원 규모의 피지컬 AI 인프라 구축 계약을 맺고, 피지컬웍스와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AI 인프라를 공급하기로 했다. 양사는 국내 첫 대규모 지능형 로봇 학습 인프라인 '로봇 데이터 팩토리'를 계획이다.
LG CNS 관계자는 "스마트팩토리와 로봇 투자는 단기적인 생산설비 증설이 아니라 인건비 상승과 생산인력 부족, 품질·안전 기준 강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라며 "피지컬 AI 상용화의 새 표준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로봇 중심의 자율 운영 체계를 구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삼성SDS도 산업 현장에 투입되는 로봇을 제어하는 플랫폼을 준비 중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국내외 전 생산 공장을 'AI 자율공장'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삼성SDS가 공장의 'AI 두뇌'를 구축하는 핵심 역할을 맡을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삼성SDS는 로보틱스와 피지컬 AI 사업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지난달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미국 월든 로보틱스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삼성SDS는 지난달 실적 발표 이후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월든 로보틱스 투자를 시작으로 글로벌 로봇 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다양한 로봇을 통합·제어해 제조실행시스템과 연계하는 '로봇 오케스트레이션'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