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 인공지능(AI) 기업과 월가 퀀트 운용사들이 우수한 20대 수학 인재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몸값 경쟁을 벌이면서 신입 연봉이 100만달러(약 14억2000만원)를 넘어서는 사례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오픈AI·앤트로픽 등 주요 AI 기업과 정교한 수학적 모델로 거래하는 제인스트리트, 옵티버 등 퀀트 트레이딩 업체들은 극소수의 명문대 출신 수학 인재들을 두고 경쟁하면서 초임이 치솟고 있다.
일반적으로 최상위 퀀트 기업의 신입 보상 패키지는 35만∼50만달러(약 5억∼7억1000만원) 수준이다. 이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경우도 흔하며,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연봉으로 시작하더라도 입사 후 몇 년만 지나면 연봉 100만달러를 넘어서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AI 열풍이 신입 연봉의 출발점을 바꿨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뉴욕 헤드헌팅 회사 스테이블 서치의 설립자 맷 스테이블은 WSJ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신입사원 연봉이 7자리(100만달러 이상)에 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지만, 이제는 100만달러 제안을 해도 누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변화에 대해 "업계가 '오픈AI 이전'과 '오픈AI 이후'로 나뉜다"며 오픈AI가 2022년 챗GPT로 생성형 AI 시대의 포문을 연 이후부터 수학 인재 영입 경쟁도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역량은 퀀트 분야에서 요구하는 능력과 상당 부분 겹친다. 여기에 퀀트 기업들이 최근 머신러닝과 AI를 적극 도입하면서 두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가 사실상 동일해졌다. 이에 퀀트 기업들은 극소수의 수학 천재와 박사급 인재를 놓고 경쟁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이런 채용 환경을 '프로 운동선수 영입전'에 비유한다.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은 뛰어난 인턴들이 타사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급여 체계를 무시하고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해 인재를 조기에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양적 금융 전문 헤드헌터 케빈 카사타는 "드물게는 신입 첫해 보상이 150만달러(약 21억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최근 퀀트 기업들이 역대급 실적을 내면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는 점도 신입 초봉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퀀트 금융의 대표 주자인 제인스트리트는 올해 1분기 순이익 103억달러(약 14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소수의 직원으로 대형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순이익을 낸 것이다.
퀀트 기업들은 금융 시장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차세대 수학 천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인재를 선점하기 위해 고교 수학 경시대회 후원, 체스·큐브 대회 개최, 대학 캠퍼스 초청 행사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해 '너드 문화'에 친숙한 젊은 수학자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지난 2021년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한 퀀트 회사 연구원으로 입사한 대니얼 우는 WSJ에 "당시에는 퀀트 기업들이 가장 높은 보상 조건을 제시해 입사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의 동료 대부분은 최첨단 AI 기술 개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앤트로픽이나 오픈AI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월가와 실리콘밸리의 보상 경쟁으로 대학 연구소나 순수 학문 분야에 남아있어야 할 유능한 인재들이 고액 연봉에 이끌려 업계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