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이 올해 2분기 적자로 돌아섰다. 스마트폰과 TV, 생활가전 등 주력 제품에 들어가는 메모리와 주요 부품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글로벌 소비 수요까지 둔화하면서 매출 증가가 이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다만 상반기 매출은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판매와 TV·가전 외형 확대, 전장 자회사 하만의 실적 개선 등이 매출을 지탱한 결과다. 부품 가격 상승과 수요 위축이 동시에 나타난 상황에서 외형을 방어했다는 점에서는 선방했지만, 제품 판매량과 평균판매가격 상승만으로 원가 부담을 상쇄하기 어려운 사업 구조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DX부문은 올해 2분기 매출 48조원, 영업손실 8000억원을 기록했다. 상반기 누적 매출은 100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6% 증가했다. DX부문이 상반기 기준 매출 1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형 성장과 수익성 악화가 동시에 나타난 것은 주요 제품의 판매가 늘거나 가격이 높아졌지만, 이를 웃도는 수준으로 원가와 비용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인공지능(AI) 서버용 수요 증가로 메모리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스마트폰과 TV, 가전 등 세트(완제품) 사업의 부품 조달 비용이 높아졌다. 소비 둔화로 제품 가격에 원가 상승분을 모두 전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신제품 마케팅과 유통 비용까지 겹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가 올해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이탈리아 법인 내 쇼룸에서 현지 주요 미디어와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기술 세미나 '더 브리프 밀란'을 개최했다./삼성전자 제공

◇ 갤럭시 판매 늘었지만 원가 부담

모바일경험(MX)사업부도 메모리 가격 상승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갤럭시S26 시리즈 판매 호조로 올 2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를 유지했고, 고가 제품 비중 확대에 힘입어 스마트폰 평균판매가격과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상승했다. 통상 신제품 출시 효과가 약해지는 2분기에 매출을 늘렸지만, 부품 원가 상승폭이 판매단가 상승 효과를 웃돌면서 수익성은 악화됐다.

하반기에는 지난 22일 공개한 갤럭시 Z8 시리즈가 실적 반등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국내 사전예약 첫날 라이브 방송 판매량은 전작보다 2배 이상 늘었고, 갤럭시 Z 폴드8이 초기 판매를 이끌었다. 삼성전자는 울트라와 폴더블 등 고가 제품 비중을 확대하고 판매 채널과 제품 구성을 조정해 수익성을 방어할 계획이다.

그러나 폴더블 신제품 흥행이 곧바로 이익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폴더블은 일반 스마트폰보다 디스플레이와 힌지 등 고가 부품이 많이 들어가 원가 부담이 크다. 메모리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판매량이 늘어도 수익성 개선 폭은 제한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중심의 모바일 생태계를 다른 기기로 확장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젠틀몬스터, 워비파커와 협력한 '인텔리전트 아이웨어'를 연내 출시해 스마트폰에 집중된 AI 경험을 새로운 폼팩터로 넓힐 방침이다. 다만 스마트 안경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단기간에 실적을 좌우하기보다는 중장기 성장 기반을 확보하는 성격이 강하다.

삼성 TV 전용 아트 구독 서비스인 '삼성 아트 스토어'에서 선보인 모나리자./삼성전자 제공

◇ TV는 광고·콘텐츠로 수익 다변화

TV를 담당하는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는 판매량 증가에 힘입어 전년 동기보다 매출이 성장했다. 다만 TV 시장이 장기간 정체된 데다 패널과 메모리 등 부품 가격이 상승하면서 하드웨어 판매만으로 수익성을 높이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TV 판매 이후에도 광고와 콘텐츠, 운영체제(OS)를 통해 수익을 얻는 서비스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무료 광고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인 삼성 TV 플러스는 현재 30개국에서 4300여개 채널을 제공하고 있으며 월간 이용자는 1억명을 넘어섰다. 삼성 게이밍 허브는 엑스박스와 지포스 나우 등과 협력해 별도의 콘솔 없이 TV에서 수천개의 게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광고와 OS 라이선싱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세계 TV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제품 교체 수요에만 의존하기보다 이미 판매한 TV에서 반복적으로 매출을 창출하려는 전략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앱과 콘텐츠, 광고 등 생태계 수익이 중요해진 것과 같은 변화가 TV 시장에서도 나타나는 셈이다.

하드웨어 경쟁력도 함께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를 'AI TV 대중화의 원년'으로 정하고 프리미엄 제품부터 보급형까지 AI 기능을 확대했다. '비전 AI 컴패니언'을 통해 음성 명령과 이용자 취향에 기반한 맞춤형 시청 경험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기준 29.1%의 점유율로 20년 연속 세계 TV 시장 1위를 유지했다. 다만 중국 업체들이 미니 발광다이오드(LED) TV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시장까지 빠르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점유율 방어를 위해 마케팅과 판촉 비용을 늘릴 경우 수익성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서비스 매출이 하드웨어 사업의 수익성 저하를 얼마나 보완할지가 향후 VD사업부 실적의 관건이다.

◇ 가전은 HVAC·AI 제품에 승부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DA사업부는 소비자용 가전의 성장 정체를 냉난방공조(HVAC)와 기업간거래(B2B) 사업으로 보완하고 있다. 가전은 부동산 경기와 소비심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 반면, 공조 사업은 데이터센터와 호텔, 주거단지 등 대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장기간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삼성전자 무풍에어컨은 지난 6월 글로벌 누적 판매 2000만대를 넘어섰다. 남부 유럽의 프리미엄 호텔과 베트남 호찌민 주거단지 3000세대, 파라과이 랜드마크 '파세오55' 등으로 공급처도 확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고효율 히트펌프 수주를 늘리고 있다. 영국 콘월의 1500세대 규모 재개발 사업과 폴란드 4개 도시의 370개 동 주거단지에 히트펌프와 통합 제어 솔루션 '스마트싱스 프로'를 공급하기로 했다. 유럽이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화석연료 보일러를 히트펌프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 수요 확대가 기대되는 분야다.

지난해 인수한 유럽 공조업체 플렉트그룹을 기반으로 데이터센터와 대형 산업시설용 중앙공조 시장에도 진출했다. 지난 5월에는 플렉트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국내 상업·산업용 공조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증가로 서버 냉각과 전력 효율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공조 사업이 삼성전자 DX부문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소비자용 가전에서는 AI 기능을 적용한 고가 제품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올인원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는 국내 누적 판매량 30만대를 넘었고, 삼성전자 전체 세탁기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0% 이상으로 올라섰다. 로봇청소기 '비스포크 AI 스팀'은 지난 2월 출시 이후 월 판매량이 5월 2만대에서 6월 5만대로 증가했다.

AI 가전 판매 증가는 제품 평균판매가격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생활가전 시장의 전반적인 수요 둔화를 완전히 상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프리미엄 제품 판매 확대와 함께 HVAC 등 B2B 사업이 실제 이익 기여도를 높여야 DA사업부의 체질 개선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준호 삼성전자 미래로봇추진단장이 지난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콘퍼런스 온 로봇 러닝(CoRL)2025에서 키노트를 하고 있다./뉴스1

◇ AI·로봇 투자도 지속

삼성전자는 실적 부진에도 AI와 로봇 등 미래 사업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DX부문은 상암 데이터센터에 고성능 서버 517대를 구축해 TV 낙하 검증에 걸리는 시간을 기존 15일에서 2일로 줄였다. 설계와 품질 검증, 생산관리 등 기존 제조 과정에 AI를 적용해 개발 기간과 비용을 절감하려는 것이다.

2030년까지 국내외 모든 생산시설을 'AI 자율공장'으로 전환한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단순 자동화를 넘어 AI가 생산 과정의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설비와 공정을 스스로 조정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 같은 투자는 당장 매출을 늘리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고정비와 품질 비용을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로봇 사업도 조직을 재정비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1일 대표이사 직속 'RX사업추진실'을 신설해 사업부별로 흩어져 있던 로봇 관련 역량을 모았다. 구미에는 로봇 학습용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데이터 팩토리를 구축했으며, 제조용 휴머노이드부터 단계적으로 사업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로봇은 기술 개발과 양산 체계 구축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데다 본격적인 매출 발생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DX부문의 기존 사업 수익성이 약화된 상황에서 미래 투자를 지속하려면 스마트폰과 TV, 가전 사업에서 현금을 안정적으로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장과 메디테크 등 비주력 사업 확대도 이어지고 있다. 자회사 하만은 인텔리전트 콕핏을 비롯한 전장 제품 공급 확대와 소비자 오디오 수요 증가에 힘입어 2분기 매출 4조6000억원, 영업이익 40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전 분기보다 개선되면서 DX부문의 실적 하락을 일부 보완했다.

◇ 하반기 관건은 수익성 회복

하반기 DX부문의 실적은 갤럭시 Z8 시리즈를 비롯한 프리미엄 제품 판매와 연말 TV·가전 성수기 수요, 부품 가격 흐름에 좌우될 전망이다. 원가 부담이 완화되면 상반기 외형 성장과 제품 구성 개선이 이익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메모리 가격 상승과 소비 둔화가 장기화하면 매출 증가에도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DX부문은 스마트폰과 TV, 생활가전 판매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광고·콘텐츠 등 서비스와 HVAC·전장 등 B2B, AI·로봇 등 미래 사업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사업 구조를 바꾸고 있다. 상반기 매출 100조원 돌파는 기존 사업의 판매 경쟁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신호지만, 2분기 적자는 사업 다각화 성과가 아직 원가 상승 충격을 상쇄할 만큼 크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프리미엄 제품 판매와 TV 서비스, 공조·전장 사업 확대가 실제 영업이익 개선으로 연결되는지가 삼성전자 DX부문 체질 개선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