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은 정보통신기술(ICT) 기금의 연간 외부차입 규모 감소를 '부채 감축' 성과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KCA가 관리하는 방송통신발전기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의 연말 차입금 잔액은 3년 새 78.6% 증가해 5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이자비용도 2년 만에 73.1% 늘었습니다. KCA는 '부채 감축'이 누적 차입금 감소가 아니라 연도별 차입 규모 축소를 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전체 차입금 잔액과 이자 부담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증가 폭이 줄었다는 사실만 강조한 표현이 실제 기금 재정 상태를 오인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ICT 기금 차입금 잔액 3년 새 2조2427억원 증가… 이자비용 1378억원
29일 조선비즈가 KCA가 관리하는 방송통신발전기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합산 차입금 잔액은 2022년 말 2조8531억원에서 2025년 말 5조958억원으로 늘었습니다. 3년 동안 78.6% 증가한 규모입니다. 기금별로 보면 방송통신발전기금 차입금은 같은 기간 9993억원에서 1조8399억원으로 84.1% 늘었습니다. 정보통신진흥기금 차입금도 1조8538억원에서 3조2559억원으로 75.6% 증가했습니다.
두 기금은 방송통신과 정보통신산업 진흥, 관련 기술 개발 등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설치한 국가기금입니다. 5조원이 넘는 차입금은 KCA 자체 회계상 부채가 아니라 KCA가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관리하는 국가기금의 회계상 부채입니다.
이자 부담도 커졌습니다. 두 기금의 합산 이자비용은 2023년 796억원에서 2025년 1378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2년 만에 582억원, 73.1% 늘어난 것입니다. 이자비용 증가는 차입금 잔액 확대와 금리 변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자 부담이 커질수록 AI·소프트웨어·정보보호 등 ICT 핵심 분야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기금의 재정 운용 여력도 제약될 수 있습니다.
◇ 연간 차입액 감소를 '부채 감축'으로 홍보… 누적 잔액 5조원은 빠져
그런데 KCA는 홈페이지에서 '부채 감축'과 '외부차입금 역대 최고 감축'을 주요 성과로 게시했습니다. 해당 자료에는 ICT 기금 외부차입금이 2022년 1조3984억원에서 2023년 8859억원, 2024년 7933억원, 2025년 5635억원, 2026년 1918억원으로 감소한 것으로 표시돼 있습니다. 부채 총액은 계속 늘었지만, 한 해 동안 추가로 증가한 차입 규모는 감소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빚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다소 둔화한 셈입니다. KCA는 이 수치가 누적 차입금 잔액이 아니라 "연도별 차입금 규모"라고 답했습니다.
따라서 연도별 외부차입금이 감소했다는 것은 전체 부채가 줄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부채가 전년보다 더 늘었지만, 증가 폭이 전년보다 작아졌다는 뜻입니다. KCA는 누적 차입금 현황을 사업성과 자료에 함께 표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연도별 차입 규모 축소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누적 차입금은 KCA 홈페이지 경영공시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게시된 외부회계감사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일반 이용자가 접하는 사업성과 화면에는 연도별 차입 규모 감소만 강조돼 있고, 같은 기간 누적 차입금 잔액이 5조원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함께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부채 감축'이라는 표현만 보면 전체 부채가 감소한 것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는 대목입니다.
◇ 구체적인 원금 상환 계획 없어… 2026년 감축 실적도 아닌 계획치
이번 사안의 핵심은 연간 차입 규모를 줄인 성과 자체가 아닙니다. 차입금 잔액과 이자비용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연간 증가 폭 감소를 '부채 감축'으로 표현한 것이 적절하냐는 점입니다. 부채 관리 성과를 정확히 알리려면 연간 신규 차입 규모뿐 아니라 누적 차입금 잔액, 원금 상환액, 이자비용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실제로 빚이 줄고 있는지, 단지 늘어나는 속도만 늦춰진 것인지를 외부에서 정확히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KCA는 향후 원금 상환 계획과 차입금 잔액을 감소세로 전환할 목표 시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KCA는 두 기금의 외부차입금을 만기 일정에 맞춰 상환할 예정이며, 차입금 잔액은 기금별 수입과 지출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의 차입 감소 정책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도 밝혔습니다.
이자비용 절감 방안으로는 주파수 재할당 대가 일시납 등으로 기금에 여유재원이 발생할 경우 공공자금관리기금 차입금을 우선 조기 상환하겠다고 했습니다. 주무부처와 재정당국은 사업 이관과 개편 등을 통해 ICT 핵심 분야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고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다만 실제 조기 상환 실적과 향후 연도별 상환 규모, 이자 부담이 개별 사업 예산에 미친 영향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KCA 홈페이지에 게시된 2026년 외부차입금 1918억원은 확정 실적이 아니라 계획치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KCA는 "2026년 계획(국회 심의 의결 확정된 기금운용계획)상 외부차입금이 2025년 대비 66%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직 집행이 끝나지 않은 연간 계획치를 이미 달성한 성과처럼 제시한 것이 적절한지도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