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인 제이콥 치머만 토론토대 교수가 이달 챗GPT 개발사 오픈AI에 합류한다고 발표하면서 수학계가 술렁이고 있다. 그는 지난 23일 청년(만 40세 미만) 수학자의 최고 영예로 꼽히는 필즈상을 공동 수상한 뒤 열린 간담회에서 "순수 수학 연구 중심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안전 연구에 주력하기 위해 오픈AI에서 근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치머만 교수는 AI의 수학 문제 해결 능력이 2년 뒤 대부분의 수학자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수학자라는 직업은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며 연구 분야를 AI 안전으로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오픈AI의 최신 모델 'GPT-5.6 솔'의 AI 에이전트가 성능 시험 도중 격리 환경에서 벗어나 탈옥한 뒤 오픈소스 AI 플랫폼 허깅페이스를 해킹하는 사고를 일으키면서, AI 시스템에 대한 통제력 강화와 안전성 검증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세계 최고 수학자 중 한명인 치머만 교수의 합류로 오픈AI의 AI 모델 안전장치 구축 작업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글로벌 AI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오픈AI, 앤트로픽, 구글 딥마인드, 메타 등의 인재 확보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28일 테크 업계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올해 들어서만 스탠퍼드대, 하버드대, UC버클리 등 미국 명문대 교수 20명 이상을 채용했다. 이들의 전공 분야는 물리학, 경제학, 통계학, 수학, 철학 등으로 다양하다.
AI 기업이 다루는 AI의 범위가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생성형 AI를 넘어 스스로 업무를 수행하는 자율형 AI 에이전트, 과학·의료·법률 등 산업별 특화 AI,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피지컬 AI 등으로 넓어지면서 인재 영입 대상도 단순히 AI 모델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를 넘어 기초 학문 전 분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앤트로픽은 이달 초 젤라니 넬슨 UC버클리 전기공학·컴퓨터과학과장을 영입했다. 넬슨 교수는 스트리밍 알고리즘과 데이터 처리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낸 저명한 이론 컴퓨터과학자다. 하비 레더먼 텍사스대 철학과 교수와 채드 존스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도 올 상반기 앤트로픽에 합류했다.
이들 석학의 영입은 AI 연구가 더 이상 생성형 AI 모델 개발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AI가 특정 상황에서 인간의 의도에 맞게 행동하고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설계하는 'AI 정렬(Alignment)'과 안전성 연구를 이끌 철학자와 AI 확산이 경제와 노동 시장에 미칠 영향을 연구할 경제학자, 피지컬 AI의 기반을 다질 물리학자도 필요해진 것이다.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 문제 등을 다룰 에너지 전문가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정책 등 기술 외 다른 분야 인재 채용도 확산하는 추세다. 오픈AI는 지난달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에서 수석 AI 정책 고문을 지낸 딘 볼을 영입해 전략미래 총괄로 임명했다. 최신 AI 모델 심사와 데이터센터 건립 등을 둘러싼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계 로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실제 오픈AI는 올 상반기 워싱턴 정계 로비에 222만달러(약 32억5000만원)를 지출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날 보도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배 늘어난 수치로, 역대 최대 금액이다. 앤트로픽도 같은 기간 정계 로비에 353만달러(51억7000만원)를 썼다.
이밖에 구글 딥마인드도 올해 3월 통계학자인 재스짓 세크혼 예일대 교수를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임명했고, 머신러닝 분야 석학인 라훌 자인 USC 교수와 알렉스 이마스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도 채용했다. 메타의 초지능 연구소에도 지난달에만 최소 3명의 컴퓨터공학 전공 교수가 합류했다고 디애틀랜틱이 보도했다. 오픈AI, 앤트로픽, 메타, 구글 딥마인드가 최근 몇 년 사이 영입한 전·현직 대학 교수만 8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고 연구자들이 대학을 떠나 AI 기업으로 향하는 이유는 높은 연봉과 연구 환경이다. AI 기업은 대학 교수 평균 연봉의 약 10배가 넘는 보상과 스톡옵션을 제공하는 데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은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어 경쟁사 대비 더 큰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기업은 최첨단 AI 연구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막대한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도 갖추고 있다.
AI 기업의 공격적인 인재 확보 전쟁이 대학가 '두뇌 유출'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도교수의 휴직 또는 이직으로 후학 양성에 차질이 생기고, 기업에 몸담은 교수들이 보안 등을 이유로 공개 논문 발표를 줄이면서 사회 전반의 AI 연구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AI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미국 소재 AI 기업들은 경쟁 우위를 지키기 위해 연구 결과를 예전처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시카고대 연구에 따르면 AI 전문가가 대학에서 기업으로 이직하면 연간 논문 발표 건수가 평균 약 6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미국에서는 대학 교수가 기업으로 적을 옮기거나 창업을 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AI 시대에는 그 속도가 빨라졌고 채용 규모도 짧은 기간 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