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챗GPT 달리

검색·쇼핑·결제로 성장한 네이버가 최대 100억달러(약 14조6820억원) 규모의 인공지능(AI) 인프라 사업에 승부수를 던졌다. 엔비디아가 10억달러(1조4682억원)를 투자해 네이버 지분 4.5%를 확보하고, 글로벌 대체자산 운용사 브룩필드는 최대 90억달러(13조2174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이를 발판으로 네이버를 인터넷 플랫폼에서 글로벌 AI 인프라 기업으로 확장하려 한다. 다만 100억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을 현실화하고, 수백메가와트(MW)급 설비를 안정적으로 가동할 장기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두나무와의 결합과 대규모 AI 투자까지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을지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 엔비디아 10억달러도 '조건부'… 100억달러 조달이 첫 관문

네이버는 지난 27일 엔비디아를 대상으로 약 10억달러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신주 724만1564주를 인수해 네이버 지분 4.5%를 확보할 예정이다. 납입일은 오는 10월 30일이다. 네이버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것은 22년 만이며, 2008년 코스피 이전 상장 이후 처음이다.

엔비디아의 투자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라기보다 네이버의 AI 인프라 확대를 지원하면서 장기적인 장비·소프트웨어 수요를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네이버는 브룩필드를 독점 자본 파트너로 정하고 세종 데이터센터 '각 세종'의 AI 팩토리를 2027년 상반기 55MW에서 2028년 200MW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200MW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약 10만개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장기적으로는 1기가와트(GW)급 인프라를 구축해 국내외 기업과 정부의 소버린 AI 수요를 공략한다.

투자가 완료되면 엔비디아는 네이버의 주요 주주인 동시에 AI 팩토리에 GPU와 네트워크 장비,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핵심 파트너가 된다. AI 팩토리가 확대되면 신규 GPU 도입뿐 아니라 장비 교체와 소프트웨어 이용 수요도 지속해서 발생할 수 있다. 엔비디아로서는 지분 가치 상승을 기대하면서 장기 매출처를 확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비슷한 이해관계는 미국 AI 클라우드 업체 코어위브와의 거래에서도 확인된다. 엔비디아는 올해 1월 코어위브 주식 20억달러어치를 추가로 인수했고, 양사는 2030년까지 5GW 이상의 AI 팩토리를 구축하기로 했다. 엔비디아는 코어위브가 외부 고객에게 판매하지 못한 클라우드 용량을 구매하는 63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코어위브의 가동률 위험을 낮추면서 엔비디아 기반 컴퓨팅 공급을 확대하는 구조다.

그러나 네이버의 경우 코어위브와 같은 수요 보강 장치가 공개되지 않았다. 엔비디아가 네이버의 미판매 클라우드 용량을 구매하거나 일정 규모의 GPU 구매를 보장한다는 내용도 확인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엔비디아의 10억달러 투자는 네이버가 별도로 최소 90억달러의 확정 금융을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브룩필드의 최대 90억달러 지원 역시 비구속적 조건합의서 단계다. 조달 금리와 담보, 상환 조건, 위험 분담 방식은 향후 본계약에서 정해진다. 현재로서는 100억달러가 모두 확보된 것이 아니라 대규모 자금 조달 협상이 시작된 단계에 가깝다.

◇ 200MW 설비 채울 고객사 확보가 관건… 자체 운영과 외부 판매는 달라

AI 데이터센터의 수익성은 GPU 보유량보다 가동률에 달려 있다. 장기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면 막대한 설비 투자비와 금융비용, 전력비가 부담으로 남는다.

네이버는 자체 GPU 클러스터와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AI 플랫폼과 자체 AI 모델을 운영해왔다. 검색과 쇼핑, 광고, 클라우드 등 대규모 내부 수요를 처리해온 경험도 있다. 그러나 자체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능력과 외부 고객에게 AI 인프라를 판매하는 능력은 다르다. 기존 국내 기업 고객만으로 200MW를 넘어 1GW급 설비를 채울 수 있을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글로벌 기업이나 해외 정부기관과 장기 계약을 맺고 안정적인 가동률을 확보해야 한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세계 각지에 데이터센터와 대형 고객을 보유한 사업자와 경쟁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네이버가 대안으로 선택받으려면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 공급, 데이터 주권과 보안, 해외 영업망, 장기 운영 실적을 입증해야 한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AI 팩토리 고객사 유치도 속도감 있게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것도 핵심 고객 확보 작업이 진행 중임을 시사한다.

IT업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글로벌 고객에게 기존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와 차별화된 대안으로 선택받으려면 가격뿐 아니라 전력 확보와 서비스 안정성, 현지 규제 대응 능력까지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 AI 팩토리·두나무 결합 동시 추진… 실행 역량 분산 리스크

네이버는 AI 인프라 투자와 함께 네이버파이낸셜·두나무 결합도 추진하고 있다. 두나무와의 결합은 결제와 금융, 가상자산을 아우르는 디지털 금융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선택이다. 두 사업의 부담은 성격이 다르다. AI 팩토리는 데이터센터 건설과 GPU 도입, 전력 확보, 장비 교체에 장기간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인프라 사업이다. 반면 두나무 결합은 주식교환 방식이어서 같은 수준의 설비 자금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대신 금융당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 가상자산 규제 대응, 지배구조 정리와 조직 통합이라는 과제가 따른다.

자본 부담은 AI 팩토리에 집중되지만, 두나무 결합까지 동시에 추진하면 경영진의 집중력과 조직의 실행 역량이 분산될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 조달 비용과 감가상각비가 예상보다 커지는 가운데 두나무 결합이 지연되면 네이버는 서로 성격이 다른 과제를 한꺼번에 떠안게 된다.

두나무의 자금력과 고객 기반을 AI 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는 있다. 그러나 핀테크와 가상자산 사업이 1GW급 AI 데이터센터의 직접적인 수요처가 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두나무가 AI 팩토리의 장기 고객이 되거나 양사가 공동 AI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네이버가 두나무와의 결합을 AI 인프라 사업을 위한 시너지로 설명하려면 내부 연산 수요뿐 아니라 공동 서비스와 고객 확보, 매출 창출 모델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업의 동시 추진은 시너지보다 실행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해진 의장의 승부수는 세 가지 답을 요구한다. 조건부로 제시된 100억달러 자금을 실제로 확정할 수 있는지, 200MW에서 1GW로 확대되는 설비를 채울 장기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지, 두나무와의 결합과 AI 인프라 사업을 동시에 추진할 경영 체계를 갖출 수 있는지다.

김경원 세종대 경영학과 석좌교수는 "엔비디아와 브룩필드라는 이름은 출발점일 뿐"이라며 "실제 자금 집행과 장기 고객 계약, 높은 가동률을 입증하지 못하면 100억달러 AI 팩토리는 새 성장 동력이 아니라 막대한 비용을 떠안는 승부수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엔비디아라는 브랜드를 활용해 아시아 시장을 뚫어야 활로가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