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이동통신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폐지된 지 1년을 맞았지만, 시장에서는 보조금 경쟁과 통신비 인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통법 폐지보다 해킹 사태로 인한 위약금 면제 조치가 지난 1년 통신 시장을 뒤흔들었다. 통신사가 고가 요금제에 지원금을 집중해 비싼 요금제나 부가 서비스 가입을 유도하는 판매 방식이 강화됐다는 불만도 나온다.
◇ 통신 3사 경쟁 촉발한 건 단통법 폐지보단 해킹 사태
24일 업계에 따르면, 작년 7월 22일 단통법이 폐지되며 통신 시장은 지원금 자율 경쟁 체제로 복귀했다. 단통법은 정보력을 가진 일부 소비자만 혜택을 챙기는 것을 막고 투명한 시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2014년 도입됐다. 통신사가 지급하는 공시 지원금과 유통점이 주는 추가 지원금에 상한을 뒀다. 그러나 경쟁이 줄어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작동하고 통신사 마케팅비만 줄여주는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결국 도입 11년 만인 작년에 폐지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단통법을 폐지하며 "유통점 경쟁이 활성화돼 이용자 혜택이 늘어날 것"이라면서 "통신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가계 통신비 부담을 완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단통법 폐지에 대한 공감대는 높았지만, 정부 기대만큼 통신 시장 경쟁이 나타나진 않았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자료에 따르면, 2025년 8월~2026년 6월 통신 3사 간 번호 이동은 월평균 26만985건으로, 전년 동기(25만2033)대비 3.6%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올해 1월 KT의 위약금 면제 조치로 번호이동이 두 배 이상인 54만5188건 발생하며 전체 평균을 끌어올린 탓이다. 이 수치를 제외하면 해당 기간 월평균 번호이동 건수는 23만2565건으로 낮아진다. 단통법으로 경쟁이 활성화하며 통신사 간 번호 이동이 증가하는 효과는 없었다는 얘기다.
앞서 단통법 폐지 이전인 작년 4월엔 SK텔레콤의 유심 해킹 사태가 발생하며 번호이동 건수가 31만2804건으로 치솟았고, SK텔레콤이 위약금 면제 조치를 시행한 2025년 7월엔 번호이동이 52만46건 발생하기도 했다. 단통법 규제를 푼 효과보다 해킹 사고가 시장을 뒤흔들었다.
◇ 지원금은 고가 요금제로 쏠려
단통법 폐지에도 보조금 경쟁이 덜한 이유는 통신 시장의 구조 변화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통법이 처음 시행된 2014년만 해도 오프라인 유통점이 사실상 유일한 단말 유통 경로였지만, 지난해 자급제 단말기 이용률은 32.6%까지 올랐다. 단말기 3대 중 1대는 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팔렸다는 의미다. 또 유무선 결합 상품 가입률이 높아지고 단말 교체 주기가 길어지며 지원금을 올려도 반응하지 않는 고객층이 두꺼워졌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애플의 양강 구도가 굳어지며, 과거 보조금 대란의 한 축이었던 제조사 장려금 경쟁도 줄었다.
반면 더 많은 지원금을 미끼로 고가 요금제와 부가 서비스 가입을 유도하는 판매 방식은 오히려 강화됐다는 불만이 나온다. 여기에 제휴 카드 사용 등 조건까지 붙기도 한다. 통신사가 대리점을 평가하는 기준에 고가 요금제 가입 건수를 포함시키고, 고가 요금제 이용자의 월 통신료가 대리점 매출로 잡히는 구조가 맞물린 결과다. 중저가 요금제 이용자가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았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지난 22일 입장문을 통해 "단통법 폐지는 소비자 선택권 확대와 가계 통신비 절감, 공정한 경쟁을 통한 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시행됐지만 시행 1년이 지난 현재 소비자 혜택은 감소했다"며, 원인으로 고가 요금제 가입 유도 정책을 꼽았다. 협회는 "단통법 폐지 이후에도 이동통신사가 고가 요금제 중심 장려금 정책을 내놓으며 소비자의 자유로운 요금제 선택권이 제한되고 있다"고 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단통법 폐지로 경쟁 환경은 만들어졌지만, 통신 산업의 성장 축과 경쟁 축은 본업이 아닌 인공지능(AI)에 가 있다"면서 "통신사들은 AI 투자에 자원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마케팅 경쟁을 벌이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해킹 사태 이후 가입자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보조금을 늘린 것 외에는, 지원금이 올라 단말기 구입 부담이 줄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통신사들이 가입자를 늘려 수익성을 높이기보다 새로운 AI 서비스 투자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마케팅 차원의 보조금 경쟁은 많이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